구제금융을 구제금융이라고 못하는 바이든

15년 전의 교훈?…오바마 행정부 시절 글로벌 금융위기 대책, 비판 여론 초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에 신속하게 대처하면서도 ‘구제금융’이라는 표현 자체를 거부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기억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뉴욕타임스(NYT)는 14일 바이든 대통령이 전날 대국민 연설에서 SVB에 대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혈세가 낭비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 배경과 관련해 이 같은 분석을 전했다.

2009년 출범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당면 과제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은행은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 탓에 위기에 빠져도 ‘대마불사’라는 이유로 혈세가 투입돼 생존한다는 것이 비판 여론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 경영진은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은 반면, 평범한 소시민은 금융위기의 연쇄효과로 직장과 집을 잃는 경우가 속출했다는 분노가 미국 곳곳에서 분출했다.

뉴욕에서 시작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퍼졌고, 오바마 행정부의 핵심 지지자 중에서도 등을 돌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야당인 공화당 지지층 내에서도 구제금융에 대한 불만은 극단적인 보수 유권자 단체인 ‘티파티’ 태동과 보수파 정치인 교체의 불씨로 작용하는 등 워싱턴 전체가 유탄을 맞았다.

NYT는 당시 부통령이었던 바이든 대통령이 15년 전의 상황을 확실하게 기억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그는 SVB와 시그니처은행에 맡긴 예금을 전액 보증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손실을 세금으로 메우지 않겠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는 한편, ‘구제금융’이라는 단어 자체를 언급하는 것도 피했다는 것이다.

또한 바이든 대통령은 SVB 경영진을 해고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는 등 경영진에 대한 책임 문제도 부각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 집권 시절 초대 백악관 대변인이었던 로버트 기브스는 “바이든 대통령이 은행 경영진에 책임을 묻고 은행을 구하는 데 세금이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부각한 것은 올바른 판단”이라며 15년 전에 배운 중요한 교훈”이라고 말했다.

다만 공화당 진영에선 바이든 행정부의 조치를 구제금융으로 규정하며 공세에 나섰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는 성명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은 구제금융이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제론 구제금융이 맞다”고 비판했다.

ko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