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미주 한인사회에서 가장 모범적인 한인 커뮤니티로 칭찬받던 애틀랜타 한인사회가 최근 애틀랜타한인회와 동남부한인회연합회, 민주평통 협의회 등의 잇딴 추문으로 “미주 최악의 한인사회”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애틀랜타 한인들의 자존심을 훼손하는 지역 한인단체들의 문제점을 5회의 시리즈로 점검한다. /편집자주
▶ 시리즈
① 누구를 위한 한인회관?
② 재정 투명성은 기대 마세요
③ 리더 사라진 동남부연합회
④ 민주평통 더 이상 필요한가?
⑤ 총영사관의 역할은?
“40년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편찬하고, 미래 지도자를 양성하는 장학사업을 실시하고, 주류사회와 전략을 공유하는 싱크탱크를 만들며, 한인 유권자 등록운동을 펼쳐 100%의 투표율을 확보하겠다”
지난 2022년 11월 취임식을 가진 제30대 동남부한인회연합회 홍승원 회장이 임기 내에 하겠다고 밝힌 중점사업이다. 이 밖에도 5개주의 K 문화축제 후원과 한국학교 정체성 확립 지원에도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지켜진 약속은 단 하나도 없고 이를 위해 추진되고 있는 움직임도 전무한 상태다. 한 전직 연합회장은 “사실 동남부체전만 잘 치러도 다행인데 여러가지 말이 너무 앞서는 바람에 오히려 신뢰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 차세대 자취 감춘 동남부연합회
제30대 동남부연합회는 출범 당시 이민 1.5세를 위주로 구성된 ‘젊은 집행부’를 내세우며 차세대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부회장단과 사무총장 등이 대부분 홍 회장과의 갈등으로 연합회를 떠나 현재는 은퇴한 지역 회장이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등 가장 연령대가 높은 집행부가 됐다.
이러한 홍승원호의 모습은 지난 3일 조지아주 둘루스에서 열린 2024년 동남부체전 발대식에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행사 3일 전에 개최여부를 기자들에게 통보한 이날 행사에는 홍 회장과 어거스타 출신의 송승철 부회장 외에는 임원들이 참석하지 않았고 여성 자원봉사자들이 빈 자리를 채웠다. 동남부 체전 발대식은 3월 열리는 회장단 연수회 이후 개최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이날 행사는 바로 구설에 올랐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락힐에서는 캐롤라이나한인회연합회 하도수 회장의 취임행사가 열렸다. 동남부체전 대회장을 맡고 있는 김기환 연합회 이사장은 둘루스 발대식이 아닌 이 취임식에 참석했다. 캐롤라이나연합회 관계자는 “우리 행사는 지난 연말부터 이미 공고가 나가 계획된 것인데 갑자기 같은 날 체전 발대식을 열어서 황당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사태의 배경에 대해 한 한인회장은 “지난해 홍승원 회장이 하도수 당시 수석부회장을 해임하면서 반목이 생겼기 때문으로 보인다”면서 “그래도 산하 단체인 캐롤라이나연합회의 잔칫날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으로 보여 모두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고 말했다.
제30대 연합회가 중점사업으로 추진한다는 차세대 장학사업도 사실은 박선근 초대회장의 장학재단이 실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회장의 100만달러 사재 출연금으로 시작된 이 사업을 돕고 있는 홍승원 회장은 장학재단에 추가로 25만달러 씩을 출연할 독지가들을 모집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독지가를 찾지 못하고 있다.
◇ 동남부체전, 연합회에 일거리 주기 위해 존재?
홍승원 회장이 최대 중점사업을 내걸었던 동남부한인회연합회 40년사 편찬 계획은 시작부터 표류를 거듭해 퇴임을 6개월 앞둔 현재까지 진척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홍승원 회장은 본보를 비롯해 여러 한인 언론 관계자들에게 편찬 계획을 의논하는 등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결국 편찬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 회장은 지난해 한국을 방문해 재외동포청에 예산 지원을 요청했지만 승인을 받지 못했고 역대 회장단이나 이사회와도 구체적인 편찬 계획을 상의하지 않았다. 홍 회장은 최근 영상 제작자들과 민주평통 애틀랜타협의회 관계자 1명을 섭외해 전직 회장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첫번째 순서로 박선근 초대회장과 인터뷰를 했으며 향후 다른 전직 회장들과도 인터뷰를 할 계획이다.
연합회 한 이사는 “취임 후 1년 6개월 동안 아무런 계획도 발표하지 않고 혼자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면서 “역사 편찬이 쉬운 일도 아니고 연합회 관계자들의 총의가 모여야 되는 일인데 특정 인사 한두명에게만 줄을 대는 모습이어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인들을 직접 대표하는 단체가 아니라 지역 한인회의 명목상 연합체라는 특성 때문에 동남부한인회연합회는 자칫하면 미주총연처럼 실체가 없는 이름 뿐인 단체로 전락할 위험도 크다. 동남부 연합회는 그나마 미주 한인사회에서 가장 오래된 한인 체육대회인 동남부 체전을 주최하고 있지만 이민 1세대들의 퇴장과 함께 체전의 위상이 갈수록 약화하면서 존재의 위기를 겪고 있다.
특히 지난해 동남부체전에 앞서 하도수 부회장의 해임을 둘러싼 갈등이 터졌고 홍 회장에 리더십에 불만을 제기한 몽고메리와 캐롤라이나 일대 한인회 일부가 체전 불참을 고려하면서 위기감이 더욱 커졌다. 일각에서는 “동남부연합회에 일거리를 주기 위해 동남부 체전이 억지로 열리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 소통이 단절되면 조직도 사라진다
동남부연합회의 세대 교체가 이처럼 실패를 거듭하면서 향후 연합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연합회장이 각종 한인 행사에서 귀빈으로 축사를 하고 한국 정부의 유공 포상자 추천이나 민주평통 자문위원 선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력’에만 취하면 차세대 승계 대신 오히려 세대 역행을 불러올 가능성도 있다.
한 전직 연합회장은 “전임 회장들은 특보나 젊은 임원들을 임명해 함께 지역을 돌며 의견을 들었는데 홍승원 회장은 혼자 다니고 있어 애처롭고 안타깝다”면서 “제대로 사업을 추진할 역량이 없으면 소통과 대화라도 이뤄져야 하는데 이마저 단절되면 동남부연합회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다른 지역 한인회장은 “현재 동남부연합회의 업무는 5개주에서 모인 임원단이 아니라 애틀랜타에 거주하는 회장의 이른바 자원봉사자 측근들이 결정하고 처리하고 있다”면서 “말로만 차세대 육성과 주류사회 연결을 논할 것이 아니라 먼저 파행적인 운영을 중단하고 정상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상연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