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대선불복 사태’는 예고된 외교 공백 탓

총영사 자리 최대 4개월간 공백…4급이 총영사 대리

한인사회 “동남부 외교, 동포 보호는 누가 책임지나”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대선 불복’ 사태가 펼쳐진 한인회관 행사에 애틀랜타총영사관이 무방비로 참석해 물의를 빚은 지 불과 며칠. 총영사관은 “순수한 6·25 행사로 안내받아 참석했다”며 해명했지만, 이미 국기(國基)를 흔드는 현장에서 공관이 사실상 ‘정치적 도구’로 활용된 후였다.

문제는 이 사건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대한민국 외교의 최전선인 애틀랜타총영사관의 현재 상황, 그리고 향후 몇 달간 이어질 ‘외교 공백’의 심각성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점이다. 최대 한인타운인 둘루스와 노크로스 시장, 조지아주 하원의원 등이 참석한 행사에서 한국 대통령 선거 불복 운동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주는 충격은 이 공백을 더 뼈아프게 한다.

◇ “기계적 대응이 부른 외교 인재(人災)”

총영사관 측은 “주최 측이 순수한 보훈 행사라고 설명해 참석했으며, 주류사회 인사들도 대거 참석한 자리에서 대선 불복 모금이 진행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후 총영사관은 이홍기 씨 측이 주최하는 행사에는 더 이상 참석하지 않겠다는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평가다.

더 큰 문제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이 앞으로도 수개월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전임 서상표 총영사가 본국으로 복귀한 뒤, 후임 총영사 부임은 오는 10월로 예상된다. 부총영사 자리 역시 현재 공석이며, 후임 부총영사는 8월 중순경 부임 예정이다. 그 사이 애틀랜타 총영사관은 서기관(4급)인 허지예 정무영사가 ‘총영사 대리’를 맡는 기형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 총영사·부총영사 모두 공백…책임은 누가?

허지예 영사는 정무 분야에서 역량 있는 외교관으로 평가받지만, 나이와 직급 모두 총영사관 내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교부 내부 규정에 따라 ‘외교부 소속 영사 가운데 직급이 높은 자’가 총영사 대리를 맡는다는 원칙 때문에, 외교적 무게감이 상당한 동남부 지역을 ‘4급 서기관’이 임시로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행사에 참석하는 판단 능력이 있었겠느냐”는 지역 한인 사회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책임있는 외교관의 정무적 판단이 마비된 상태에서 외교 공관의 ‘기계적 일정 수행’이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 외교 무게감 커지는 동남부, 대응은 역행

한편 애틀랜타와 동남부 지역은 최근 한국 기업의 활발한 진출과 한인 커뮤니티의 성장으로 인해 외교적 중요성이 급상승한 지역이다. 현대차, SK, LG 등의 대형 투자가 진행 중이며, 조지아와 앨라배마, 테네시,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인근 주정부 및 지역사회와의 경제·문화 외교가 활발하게 이어져야 할 시기다.

하지만 공관의 수장이 10월까지 부재하고, 정치적 분란에 휘말리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그 피해는 결국 한국 정부의 위신과 한인사회의 위상에 미칠 수 밖에 없다.

총영사관은 외교부의 전진기지이자, 대한민국 국민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최후의 울타리다. 그 울타리가 흔들리면, 애틀랜타와 미국 동남부 지역에서 외교의 기준도, 동포 사회의 신뢰도 함께 무너질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계적 대응’이 아니라, 외교적 판단력과 책임감, 그리고 무엇보다 재외공관의 품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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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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