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규 전 한인회장, 식품점에서 만난 따뜻한 원로의 이야기

애틀랜타 다운타운에 위치한 빅베어 마켓, 오후 2시.
점심 시간을 마치고 식료품 쇼핑을 나선 고객들로 붐비는 식품점 한편에서 김백규 전 애틀랜타한인회장 부부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부인은 정성스레 싸온 도시락으로 남편과 정신없는 식사를 한뒤 남은 음식을 냉장고에 넣고, 김백규 회장은 카운터 옆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매장을 점검한다. 계산대 옆에 앉아 인터뷰를 시작했을 때도, 그는 “잠깐만요”라며 지나가던 단골 고객의 안부를 묻고 장바구니를 챙겨줬다.
“이제는 이곳이 제 삶의 전부가 됐습니다. 부인과 함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 가게로 출근해요. 도시락도 싸주시고요. 이민 초기부터 지금까지 늘 같이 일했죠.”
김백규 전 애틀랜타한인회장은 애틀랜타 한인사회의 ‘살아있는 역사’로 불린다.
1977년 조지아텍 유학 중이던 형의 초청으로 미국 이민을 온 그는, 섬유를 전공한 형이 “넓은 시장을 보자”며 시작한 식당 사업을 함께하며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독립해 식당을 운영하던 그는 1986년 빅베어 마켓이라는 식품점을 인수하며 본격적인 그로서리 사업에 뛰어들었다.
“위치가 좋았어요. 운영만 잘하면 승산이 있다고 확신했죠. 그 판단은 지금까지도 틀리지 않았다고 봅니다.”
김 회장은 1992년 2호점을 오픈한 이후, 지금까지 두 매장을 성실하게 운영하며 고객들과의 신뢰를 쌓아왔다. 고객의 대부분은 한인들이 아니지만, 그는 “한인도, 흑인도, 백인도, 누구나 환영받는 공간”을 지향했다. 실제로는 이사간 고객들도 일부러 먼 길을 찾아와 장을 보고, 타주로 이사한 고객이 우편으로 물품을 주문하기도 한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은, 나를 키워준 한인사회에 돌려주고 싶어요.”
그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실제로 김 회장은 애틀랜타 한인회관 신축 당시 무려 10만 달러를 기탁하며 회관 건립위원장을 맡았다. 화재로 전소된 도라빌 한인회관 대신, 지금의 애틀랜타한인회관(부지 9.2에이커, 건물 4만1600스퀘어피트)을 구입해 ‘세계 최대 한인회관’이라는 수식어를 가능케 한 인물이다.
“건립 시작부터 매입까지 1년 반이 걸렸습니다. 한푼 한푼 동포들이 성의껏 모금해준 덕분에 가능했어요.”
그의 기부는 최근에도 계속됐다. 오는 4월 17~20일 둘루스 개스사우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제23차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WKBC)에 5만 달러를 쾌척하며, 대회장직을 맡아 또 한 번 한인사회를 위해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한인회 상황을 말할 땐 목소리에 씁쓸함이 묻어났다.
“요즘 한인회가 흔들리는 걸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이홍기 사태로 신뢰가 무너지고, 회관을 사유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니 마음이 아프지요. 회관은 한인 모두의 것입니다.”
그는 현재도 조지아한인식품협회 고문으로 활동 중이며, “1세대들이 만든 터전을 차세대에게 제대로 물려주기 위해선, 공동체 정신이 회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모든 이민 선배들에게 당부했다.
“돈을 벌었으면, 그 돈이 어디서 왔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한인 커뮤니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에요. 이제는 돌려줄 때입니다.”
빅베어 마켓 한켠, 김 회장 부부가 나란히 서서 카운터를 지키는 모습. 그들의 눈빛에서 삶의 단단함과, 공동체에 대한 애정이 동시에 묻어났다.
▷ 기자의 한마디
김백규 회장의 삶은 ‘조용한 기부, 지속적인 실천’이라는 말이 절묘하게 들어맞는 이민자의 표상입니다. 애틀랜타 한인사회가 다시 뿌리를 찾을 수 있도록, 그의 지혜와 정신을 우리가 더 자주, 더 진심으로 들어야 할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