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모더나가 사과했다”… 한국 정부의 ‘정신승리’

한국 정부 대표단 미국 모더나 본사 방문…”사과 받았다” 주장

계약조건은 ‘미공개’…미국까지 와서 고작 “최선의 노력” 약속

한인 인사는 연방의원들 통해 바이든에 “한국 백신공급” 촉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공급 차질을 해결하기 위해 방미한 한국 정부 대표단이 13일 오후 미국 매사추세츠주 모더나 본사에서 이 회사 관계자들과 만나 사과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강도태 보건복지부 2차관과 류근혁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 등 4명으로 구성된 대표단은 이 자리에서 모더나 백산 판매 책임자들을 상대로 공급 차질에 대해 항의하고 대책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면담을 마친 뒤 강 차관은 “한국 정부는 유감을 표시했고, 모더나는 사과 의사를 표시했다”며 “보다 많은 물량의 코로나19 백신이 보다 빨리 공급되기를 요청했고, 모더나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공급 일정에 대해선 “최대한 빨리 당겨달라고 이야기했다”며 모더나와의 추가 협의를 거쳐 세부 내용을 정리해 귀국 후 공식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실 한국 정부는 모더나와 맺은 구체적인 계약조건을 제대로 공개한 적이 없다.

모더나가 임의대로 공급량을 축소한 사실로 추정해볼 때 공급물량과 일시는 약속했지만 이를 위반했을 시 법적책임(liability)은 없는 계약일 가능성이 높다. 백신공급업체에 목을 매고 있는 있는 ‘을’의 입장에서 제대로 된 항의가 이뤄졌는지 알 수도 없고, “We regret that~”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을 사과라고 해석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한국 정부는 지난 9일 이미 “모더나로부터 사과를 받았다”고 발표했었는데 국민의 혈세를 들여 미국 본사를 방문한 목적이 대면으로 사과를 받기 위한 것인지도 아리송하다.

강 차관은 “오늘 회의는 건설적으로 이뤄졌다”며 “모더나와 한국이 상호 이해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모더나에서만 백신 공급 차질이 벌어진 만큼 엄중하게 항의하는 동시에 재발 방지를 위한 확약을 받아내겠다는 계획을 갖고 이날 면담에 나섰다고 밝혔다.

하지만 모더나는 자제 생산공장을 갖고 있는 업체가 아니라 전량 위탁생산을 통해 물량을 공급하고 있고, 미국을 비롯해 영국, 이스라엘 등 ‘백신 선도국’들이 잇달아 부스터샷(추가접종)을 승인하면서 수급 조절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정부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계약서를 이유로 항의를 한다고 해서 백신개발 비용을 댄 미국 정부나 영국 등 더 큰 거래처를 제치고 우선적으로 백신을 공급할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진 상황이다.

한마디로 이번 방문은 백신 공급 불안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모더나에 온전히 돌리기 위한 정치적 행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한국 정부가 이러한 ‘정신승리’를 거두고 있는 동안 뉴욕의 한인 지도자인 김민선 전 뉴욕한인회장은 미국 연방의원들을 통해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한국에 백신을 공급해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OECD 소속 선진국인 한국 관료들이 수조원의 예산을 주무르면서도 ‘정치적 쇼’만 벌이고 있는 사이 한인 여성 리더 1명이 모국을 위해 큰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상연 대표기자

'모더나 협상' 취재진 질문 답하는 강도태 복지부 차관
‘모더나 협상’ 취재진 질문 답하는 강도태 복지부 차관 (영종도=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강도태 보건복지부 2차관이 모더나 본사 백신 판매 책임자들과 협상하기 위해 13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1.8.13 ondo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