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적 허점에 중혼·상속 분쟁 피해자 될 수도…한국 정부, 법률 보완해야

때로는 법적으로 의무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적 조치가 있다.
미국에서 결혼한 부부 가운데 한 사람이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면, 한국에도 혼인신고를 해 두기를 적극 권한다.
미국에서 결혼한 사실만으로도 미국 내에서는 부부로 인정되며, 영주권 신청 등 각종 행정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또한 부부가 한국으로 이주할 경우에도 한국 정부는 외국에서 이루어진 혼인을 원칙적으로 인정한다.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 결혼했다고 해서 반드시 한국에 혼인신고를 해야 할 법적 의무는 없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세상에는 항상 정직한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한국은 중혼 불가, 미국은 확인 어려워
한 사람과 결혼하고 이혼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중혼(bigamy)이라고 한다.
한국에는 가족관계등록부 제도가 있어 이미 혼인신고가 된 사람이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혼인신고를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담당 공무원이 기존 혼인 상태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제도적으로 중혼이 발생하기 어려워 관련 형사 처벌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미국은 전국 단위 가족관계등록부 제도가 없다. 앨라배마주에서 결혼한 남성이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지아주로 이사해 새로운 사람과 결혼하더라도 조지아 법원은 이를 확인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미국의 모든 주에서는 중혼을 형사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조지아주의 경우 중혼은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 한국 미등록 혼인이 부르는 피해
문제는 한국 국적자와 미국 시민권자 사이의 결혼에서 복잡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 국적의 남성이 미국 시민권자 여성과 결혼해 영주권을 취득하고, 아내 명의로 사업체를 열어 SBA 융자까지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남편이 도박으로 회사 운영자금과 융자금을 탕진하고 한국으로 돌아가 버린다. 미국에 남은 아내는 가정 파탄은 물론 상당한 부채까지 떠안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미국에서의 결혼이 한국에 신고되어 있지 않다면, 한국으로 돌아간 남편이 새로운 여성과 혼인신고를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한국 지방자치단체는 미국에서의 혼인 기록을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사실상 중혼 상태가 발생한다.
◇ 상속까지 얽히면 더 복잡해진다
더 심각한 문제는 상속이다.
이 남성이 사망할 경우 미국의 아내와 한국에서 혼인신고를 한 아내 두 사람이 모두 상속권을 주장할 수 있다. 미국의 배우자는 남편의 사망 사실이나 상속 재산의 존재조차 모른 채 시간이 흘러갈 수도 있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되면 한국 법원에 혼인무효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드는 복잡한 절차다.
정보 확인도 쉽지 않다. 한국은 개인정보 보호 규정이 엄격해 배우자가 아닌 사람이 상대방의 혼인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 미국에서는 결혼과 이혼 기록이 공공 기록(public record)으로 비교적 쉽게 확인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현재 한국의 혼인신고서에는 단순히 ‘초혼’과 ‘재혼’만 표시하도록 되어 있다. 해외에서의 결혼 사실을 숨기고 ‘초혼’이라고 기재하더라도 이를 확인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이러한 제도적 허점을 고려할 때 혼인신고서에 “전 세계 어디에서든 현재 혼인이 유지되고 있는가”라는 항목을 추가하고, 허위 신고 시 법적 책임을 묻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해외 이주와 국제결혼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이러한 문제는 더 이상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다. 외교부, 법무부, 행정안전부는 해외 혼인과 관련된 법적 공백을 면밀히 검토하고 제도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그 전까지는 미국에서 결혼한 한국 국적자라면 자신과 배우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한국에도 혼인신고를 해 두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예방책이다.
<위자현 변호사(Joshua Wie, Esq.)는 이민법, 사고상해, 가정법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로 25년 이상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의뢰인의 권익 보호를 위한 전략적 법률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Southern Illinois Law School에서 법학박사(J.D.) 학위를 받았으며, 뉴욕주(2002), 조지아주(2008), 앨라배마주(2014)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취업·가족 초청 이민, 영주권 및 비자 상담, 교통사고·개인상해 보상 협상, 이혼 및 양육 관련 가정법 분야에서 폭넓은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