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 다른 부위로 전이되는 이유는?

다른 데로 옮기는 암세포는 손상된 조직 선호

손상조직 복구 메커니즘, 2차 종양 생성 자극

조직 재생 돕는 호중성 백혈구가 핵심적 역할

유방암 종양에서 이탈하는 전이성 암세포 무리
유방암 종양에서 이탈하는 전이성 암세포 무리 생쥐의 유방암 종양(적색)에서 EMT(상피-간엽 이행) 단계를 일부만 거친 암세포 무리(녹색)가 빠져나오고 있다. [스위스 바젤대 생물의학과. 재판매 및 DB 금지]

암이 다른 부위로 전이하려면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을 더 깊게 이해하는 건 당연히 새로운 암 치료법 개발의 열쇠가 될 수 있다.

영국 과학자들이 암세포의 확산을 자극하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발견했다.

영국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 과학자들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24일(현지 시각) 저널 ‘네이처 캔서'(Nature Cancer)에 논문으로 실렸다.

이번 연구는 손상 조직의 복구와 암 성장의 연관성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췄다.

실험하는 기관은 암이 많이 전이하는 폐로 정했다.

연구팀은 생쥐 모델의 폐에 많은 양의 방사선을 조사해 조직을 훼손했다.

그런 다음 이 부위에 암세포가 전이해 성장할 잠재력이 어느 정도인지 손상이 없는 부위와 비교해 분석했다.

생쥐 폐에 생긴 전이암
생쥐 폐에 생긴 전이암 폐혈관(적색) 주변에 성장한 종양 세포(청색)가 정상 조직(녹색)으로 파고들고 있다. [독일 암 연구 센터(DKFG) 헬무트 아우구스틴 교수팀, 2021년 8월 저널 ‘사이언스 중개 의학’ 논문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이 실험을 통해 폐의 손상 부위에 훨씬 더 많은 암세포가 퍼져 2차 종양을 형성한다는 걸 확인했다.

논문의 제1 저자를 맡은 에마 놀란 박사후연구원은 “손상 조직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면역계가 의도와 달리 암의 확산을 돕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경로를 주도하는 게 호중구였다. 원래 호중구는 손상 조직의 복구를 돕기도 한다.

손상 부위에 호중구가 활성화하면 종양에 우호적인 조건이 폐 미세환경에 갖춰졌다.

이때 호중구에 의존하는 조직 재생성 노치 신호(regenerative Notch signaling)가 강해져 폐의 미세환경을 제어했다.

노치는 막 단백질로서 외부 리간드(수용체 등 큰 분자와 붙는 물질)와 결합해 신호 전달을 개시한다.

그런데 호중구의 ‘탈과립화'(degranulation)를 막아 노치 신호의 활성화를 차단하면 2차 종양의 성장이 억제되고 그 크기도 눈에 띄게 줄었다.

이는 종양 생성을 촉진하는 호중구의 작용이 조직 재생 기능과 연관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과학자들은 설명한다.

실제로 조직이 손상돼 안정성이 떨어지면 해당 부위에 도달하는 암세포의 줄기세포 표현형이 증가했다.

암세포를 파괴하는 NK세포
암세포를 파괴하는 NK세포 ‘자연살해세포’로도 불리는 NK세포는 선천 면역을 담당하는 백혈구로서 암세포나 바이러스 감염 세포를 직접 파괴한다. 간과 골수에서 성숙하는 NK세포는 다른 면역세포의 증식을 유도하고, 면역반응 사이토카인을 분비한다. [NIAID(국립 알레르기 감염병 연구소) 제공 /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나 호중구가 어떻게 암 확산을 돕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이 부분이 명쾌히 밝혀지면 새로운 암 치료법 개발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과학자들은 기대한다.

항암 방사선 치료와 관련해 생각해 볼 문제도 하나 드러냈다.

이번에 연구팀은 실험 모델인 생쥐의 폐 조직에 보통 암 치료 때 쓰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한 방사선을 조사했다.

현재 방사선 치료는 암 종양의 성장을 억제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꼽힌다.

종양 부위에만 방사선을 조사하는 첨단 기술도 개발됐다.

그러나 암 치료를 할 때 표적을 벗어난 방사선이 건강한 조직을 손상할 거라는 우려는 남아 있다.

논문의 공동 교신저자인 일라리아 말란키 박사(종양-숙주 상호작용 연구 그룹 리더)는 “암세포와 암이 생기는 기관, 면역계 등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라면서 “이 엉킨 매듭을 풀어가다 보면 암이 어떻게 전이 능력을 갖추고, 관련 조직은 어떻게 암세포를 받아들이며, 암의 전이는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 등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