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문여행] 대통령과 미시시피강

조성관 작가

미국에는 ‘스크립스 내셔널 스펠링비’라는 대회가 있다. 전미 영어철자대회를 줄여서 보통 ‘스펠링비’로 부른다. 매년 열리는 이 대회는 TV에서 중계할 정도로 관심이 높은 행사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취소되었지만 지난해까지 92회를 기록했으니 이 대회의 역사와 전통을 미뤄 짐작할 수 있겠다.

1등 상금은 4만달러. 2018년 인도계 학생이 11년 연속으로 우승해 주목을 받았다. 최근 우승자 23명 중 인도계 학생이 19명을 차지했다. IT분야에서 인도계의 약진은 두드러진 현상인데, 그 저변이 만만치 않음이 스펠링비에서도 입증된다. 미국 최초의 여성 부통령 당선자 카멀라 해리스도 인도계다.

미시시피강 지도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스펠링비는 어떻게 100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인기를 끌까.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과 관련이 깊다. 영어는 그리스어, 히브리어, 라틴어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여기에 켈트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어원으로 하는 단어들이 버무려졌다.

영어가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면서 태어난 미국 영어는 영국 영어보다 어원이 풍부하고 지금도 진화 중이다. 미국과 캐나다의 지명은 원주민의 말을 발음대로 영어 철자로 옮긴 것이 적지 않다. 미시시피, 코네티컷, 매사추세츠, 테네시, 토론토, 알공퀸과 같은 지명 고유명사가 여기에 해당한다. 여기에 힌두어와 중국어에서 새로운 단어가 영어 사전이라는 항공모함에 지속적으로 탑승하는 중이다.

미국에서는 종종 대통령까지 철자법의 시험대에 오르곤 한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철자를 틀려 공개 망신을 당했던 인물이다. 나 역시 그런 부시 대통령을 마음껏 비아냥거렸던 적이 있다.

미국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 이후 200년 이상 자유민주주의를 구가해온 유일한 나라다. 그런 미국의 정신을 요설과 거짓말로 파괴해 온 트럼프라는 희대의 인물을 겪고 나니 생각이 너그러워졌다. 대통령이 그까짓 철자 몇 개 틀린 게 뭐 그리 대수일까.

1907년의 마크 트웨인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마크 트웨인의 뜻은?

Mississippi, Connecticut, Massachusetts, Tennessee, Missouri···.

이중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헷갈리는 게 Mississippi다. 미시시피는 원주민 말로 ‘위대한 강’, ‘아버지의 강’이란 뜻이다. ‘아버지의 강’이라는 의미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미국 중북부에서 발원해 멕시코만으로 흘러드는 미시시피강. 길이 6,210km. 나일강, 아마존강, 양쯔강에 이어 세계 네 번째로 긴 강이다. 미시시피강은 미국 31개 주를 적시며 흐른다. 미국 땅의 30%에 해당하는 지역에 물을 공급한다. 동시에 이 강은 배를 띄워 미국인의 삶을 이어주며 굽이쳐 흘러왔다. 원주민 말대로 아버지의 강이다.

미국 소설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쓴 그는 숱한 일화를 남긴 대표적 유머리스트이기도 하다. 그의 삶과 문학은 미시시피강을 빼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미주리주 플로리다에 태를 묻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이름은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Samuel Langhorne Clemens). 아버지는 변호사. 아버지는 그가 네 살 때 미시시피강에 면한 항구 도시 미주리주 한니발로 이사했다. 그가 열한 살 때 아버지가 폐렴으로 세상을 뜨면서 인생의 곡절이 시작된다. 5학년 때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생활 전선에 뛰어든다. 훗날 한니발은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잠깐 인쇄소 식자공 생활을 거쳐 1846년 미시시피강 증기선의 견습 수로안내원(도선사)으로 취직한다. 그는 뉴올리언스-세인트루이스 구간을 운행하는 증기선을 탄다. 그는 견습 수로안내원 생활 2년만에 도선사 자격증을 딴다. 증기선을 타면서 그는 그랜트 마쉬(Grant Marsh)라는 전설적인 선장을 만난다. 마쉬는 호기심이 많고 성실한 클레먼스를 좋아했고, 클레먼스 역시 마쉬를 존경하고 따랐다. 그는 마쉬로부터 강을 읽는 법을 배워 나갔다. 암초와 보이지 않는 장애물을 피해 배를 안전하게 모는 노하우를 익혔다. 도선사는 강의 수심을 정확히 읽는 능력이 중요하다.

해양 용어 중에 패덤(fathom)이 있다. 1패덤은 6피트, 즉 1.8m다. 수심측정수는 도선사에게 수시로 수심을 큰 소리로 외친다. 미시시피강의 증기선이 운항하는 데 필요한 안전수심이 3.6m였다. 선원들은 모터 소음으로 시끄러운 갑판 위에서 투 패덤(Two Fathom)을 줄여서 트웨인(Twain)이라고 외치곤 했다. “마크 트웨인”이라고 소리치면 “3.6m 유지”는 뜻이 되는 것이다.

한니발 시 중심가에 세워진 톰과 허클베리 기념동상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클레멘스는 미시시피강을 오르내리며 다양한 풍광과 문화를 경험했고, 각양각색의 인간 군상을 목격했다. 15년 이상 이어진 미시시피강의 경험은 훗날 작가 인생에 엄청난 자양분을 공급한다.

미시시피강 도선사 생활은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이어졌다. 남북전쟁이 발발하면서 미시시피강을 따라 남북을 자유롭게 운항하던 모든 선박 통행이 중지되었다. 졸지에 밥줄이 날아갔다. 남군 지역에 살던 그는 북군에 대한 적개심이 하늘을 찔렀다. 젊은 혈기에 잠깐 남군 진영에 참여하기도 했다.

남군 진영을 나와 그는 큰형이 사는 네바다로 간다. 중부시대를 마감하고 서부 시대가 열렸다. 잠깐 광부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그는 지역 신문사의 고정필자 조수로 들어간다. 신문사에서 잔심부름과 자료 조사일을 하면서 조금씩 글을 쓸 기회가 생겼다. 1863년 2월 우스꽝스런 여행기를 기고하게 되었는데, 이때 그는 필명을 사용한다. 미시시피강 도선사 시절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던 “마크 트웨인”이다.

그는 우연히 작가가 되었다. 작가로서 첫 번째 성공은 1865년 찾아왔다. ‘칼라브라스 카운티의 개구리’가 뉴욕에서 발행되는 주간지에 게재되면서 비로소 전국적인 관심을 받는 인물이 된다. 서른 살.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나이였다. ‘미시시피강의 생활’이라는 책도 냈다. 마크 트웨인이 작가로서 성공 가도에 접어든 것은 1867년 지중해·유럽·중동을 순회 취재를 하면서부터다.

‘프라우드 메리’의 모델인 패들형 크루즈선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고고장의 레퍼토리 ‘프라우드 메리’

미국 문학을 비옥하게 적신 미시시피강은 미국 대중문화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20~30대의 부모 세대들은 ‘프라우드 메리’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들은 사이키 조명이 번쩍거리는 디스코장에서 혹은 수학여행지의 여관마당에서 ‘프라우드 메리’에 몸을 맡긴 채 청춘의 터널을 통과했다. 가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롤링 롤링 롤링 온 더 리버~”를 떼창하며 그저 몸을 흔들었을 뿐이다.

이 노래는 CCR의 리드보컬 존 포거티가 연방 방위군에서 제대하고 이틀 만에 작사·작곡했다. 하늘을 날 것 같은 군 제대의 기쁨을 노랫말에 담았다. 1969년 1월에 출시되어 ‘빌보드 핫 100’ 2위를 기록하며 대히트를 이어갔다. 1971년에 티나 터너가 다시 취입해 역시 ‘빌보드 핫 100’ 4위를 기록했다. 그 뒤로도 이 노래는 여러 번 리메이크되었다.

‘프라우드 메리’에 나오는 ‘리버’는 바로 미시시피강이다. 그 강을 오가는 증기선을 묘사했다. 가사를 찬찬히 음미해 본다.

Left a good job in the city
Workin’ for the man ev’ry night and day
(도시에서의 좋은 직업을 떠나서 그 주인을 위해 밤낮으로 일했던)

And I never lost one minute of sleepin’
Worryin’ ’bout the way things might have been
(한숨도 잘 수가 없었죠 일이 어떻게 될지 걱정하면서)

Big wheel keep on turnin’
Proud Mary keep on burnin’
(커다란 증기선 바퀴는 계속 돌아요 프라우드 메리호는 계속 증기를 뿜어요)

Rollin’, rollin’, rollin’ on the river
(강물 위를 계속 굴러가지요)

Cleaned a lot of plates in Memphis
Pumped a lot of pane down New Orleans

(멤피스에서는 많은 그릇을 닦았고 뉴올리언스에서는 정말 개고생했어요)

But I never saw the good side of the city
‘Til I hitched a ride on a river boat queen
(하지만 도시 생활의 좋은 면은 전혀 못 봤지요 강을 오가는 배에 올라타기 전까지는 말이죠)

Big wheel keep on turnin’
Proud Mary keep on burnin’~~~
(커다란 증기선 바퀴는 계속 돌아요 프라우드 메리호는 계속 증기를 뿜어요~~~)

‘good job’은 군대 생활에 대한 은유다. Big wheel은 19세기 중반 미시시피강을 오가던 패들형 증기선의 모습이다. 지금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증기선! 증기기관이 물레방아처럼 생긴 커다란 바퀴를 배 후미에서 돌리며 앞으로 전진한다. 멤피스는 테네시주 미시시피 강변에 있는 항구도시다. 뉴올리언스는 루이지애나 최대의 도시로 미시시피 강변에 있다.

멤피스와 뉴올리언스는 젊은 도선사 마크 트웨인이 수없이 오르내린 도시다. 멤피스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블루스가 태어난 곳이며, 뉴올리언스는 루이 암스트롱과 재즈의 고향이다.

대통령 트럼프로 인해 엉뚱하게 미시시피강을 생각하게 되었고, ‘프라우드 메리’를 여러 번 다시 들으며 1970~80년대를 소환했다. 의식의 흐름인가, 그냥 잡생각인가.

1969년에 발표된 CCR의 ‘프라우드 메리’

One thought on “[세계인문여행] 대통령과 미시시피강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