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국 ‘정찰풍선’ 격추…미중갈등 재격화

최정예 전투기 F-22 다수 출격해 미사일 한발로 ‘펑’

미국인 환호…중국 “국제관례 어긴 과잉대응” 반발

잔해분석 예정…미중 정상회담 뒤 협력모드 물거품

중국, 미국의 '정찰풍선' 격추에 "강한 불만과 항의 표시"
미국이 자국 영토에 진입한 중국의 ‘정찰 풍선’을 격추하고 있다./미국 해군연구소 트위터

미국 본토 상공을 가로지른 중국 비행체가 4일 미군에 격추돼 바다로 떨어졌다.

미국은 정찰풍선으로 의심하는 이 기구의 잔해를 수거해 영공 침입 목적과 중국의 정보수집 역량을 분석하겠다는 계획이다.

미국인들은 이 풍선을 안보 위협으로 보고 최첨단 전투기가 실탄을 발사해 파괴하는 장면을 맨눈으로 지켜보고 환호했다.

미국과 중국은 최근 정상회담 뒤 관계개선을 추진했으나 이번 사태로 갈등이 더 악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정찰풍선 격추에 사용된 AIM-9X 유도미사일
정찰풍선 격추에 사용된 AIM-9X 유도미사일 [AP=연합뉴스]

◇ F-22 포함 전투기 다수 출동해 미사일 한방으로 격추

미국 국방부에 따르면 4일 오후 2시39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해안도시 머틀비치 연안에서 6해리(약 11㎞) 떨어진 해역의 18∼20km 상공에서 F-22 스텔스 전투기가 발사한 AIM-9 공대공 열추적 미사일이 정찰 풍선을 관통했다.

이날 격추 작전에는 매사추세츠 주방위군 소속 F-15 전투기, 오리건·몬태나·매사추세츠·사우스캐롤라이나·노스캐롤라이나 등에서 출격한 공중급유기 등 다수 군용기가 참여했다.

바다에는 해군 구축함, 순양함, 상륙선거함 등이 잔해 수거 등을 위해 대기했다.

미국 정부는 격추 작전에 앞서 안전 확보 차원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머틀비치와 찰스턴,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윌밍턴 등 동해안 공항 3곳에서 항공기 이착륙을 중단시켰다.

이 작전으로 28일 미 당국에 처음 포착된지 일주일 만에 정찰풍선이 격추됐다.

풍선의 크기는 버스 3대 크기로 알려졌다.

국방부 고위당국자는 지상의 주민이 잔해 낙하물에 피해를 입을 가능성을 최소화하면서 풍선을 성공적으로 격추할 첫 기회를 잡은 것이라며 미군이나 민간인, 민간 항공기나 선박이 입은 피해는 없다고 설명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일 군 당국에 풍선을 안전하게 격추하는 게 가능해지는대로 최대한 신속하게 작전을 수행하라고 지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풍선이 격추된 직후 메릴랜드주 해거스타운에서 기자들에게 “지난 수요일(2월 1일) 브리핑을 받을 때 국방부에 가능한 한 빨리 격추하라고 지시했다”며 “작전을 성공한 조종사들을 칭찬하고 싶다”고 말했다.

◇ 미 당국, 함정 투입해 수색…침투 의도·정보수집력 분석 예정

AP통신에 따르면 격추된 풍선의 잔해는 수심 약 14m 정도로 비교적 얕은 곳에 떨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잔해가 확산한 범위는 11㎞ 이상으로 분석된다.

국방부는 연방수사국(FBI)과 함께 풍선의 잔해와 정찰용 장비 등 정보 가치가 있는 모든 물체를 최대한 수거할 계획이다.

수거는 비교적 이른 시일 내에 이뤄질 전망이다. 이미 인양선이 현장으로 이동 중이라고 AP통신은 덧붙였다.

구조함도 곧 투입하고 필요시 잠수부와 무인함정도 동원될 예정이다.

미 국방부는 격추를 지연하는 동안 정찰 풍선을 면밀히 관찰, 정보수집 능력과 기동 방식 등을 어느 정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풍선은 소형 모터와 프로펠러로 추력을 내며, 풍선에 매달린 장비 중에는 통상 기상 관측·민간 연구용으로는 쓰이지 않는 장비가 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AP통신에 따르면 군 당국은 중국이 정찰 풍선 선단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번에 격추된 정찰 풍선 역시 이 선단에 소속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어느 정도 분석이 된 만큼 정찰 풍선을 수거해도 획기적인 발견이 나올 기대감은 크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국방부 관계자는 “잔해를 수거하면 더 제대로 알 수 있겠지만, 현재까지 평가로는 이것이 중국의 정보 역량과 관련해 지구 저궤도의 인공위성처럼 중대한 정보를 추가해줄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 “탑건 같았어” 환호한 주민들…중국 “관례 깨는 과잉대응” 반발

미국 동부 해안 주민들은 마치 영화와 같은 격추 장면을 맨눈으로 지켜보며 환호성을 터뜨렸다.

유튜브, 트위터 등에서 시민들은 격추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을 마치 에어쇼 관람 후기처럼 잇따라 올렸다.

ABC방송 산하 필라델피아 지역방송국이 유튜브에 공개한 동영상에서 시민들은 전투기가 풍선을 격추하는 순간에 짜릿한 감정을 표현했다.

머틀비치에서 촬영된 다른 동영상에서는 시민들이 “잡았다! 쾅!”, “그래야 우리 공군이지” 등의 소리를 지르며 손뼉을 쳤다.

사우스캐롤라이나 포레스트브룩의 한 주민은 AP통신 인터뷰에서 우편을 가지러 나왔다가 당시 주변을 선회하던 전투기가 풍선을 격추하는 장면을 봤다면서 “내가 ‘탑건’ 영화 속에서 깨어날 줄은 기대하지 못했다”고 했다.

정찰풍선이 ‘기상 관측용 민간장비’라고 주장해온 중국 정부는 미군의 격추에 노골적 반감을 드러내며 강하게 반발했다.

중국은 외교부 성명에서 “미국이 무력을 사용해 민간 무인 비행선을 공격한 것에 대해 강한 불만과 항의를 표시한다”며 “중국은 검증을 거쳐 이 비행선이 민간용이고 불가항력으로 미국에 진입했으며 완전히 의외의 상황임을 이미 여러 차례 미국에 알렸다”고 밝혔다.

이어 “미 국방부 대변인도 이 풍선이 지상 인원에게 군사적·신변적으로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무력을 동원해 과잉 반응을 보인 것은 국제관례를 엄중히 위반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중국은 관련 기업의 정당한 권익을 단호히 보호할 것”이라며 필요시추가 대응 방침을 예고했다.

◇ 산산조각 난 ‘대화모드’…미중갈등 다시 격화할 듯

이번 중국 정찰 풍선 사태로 미중관계가 다시 최악으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풍선이 미국 본토 상공에 등장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양국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관계 개선을 추진했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난 뒤 “양국의 열린 소통 라인을 유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도 대외관계를 원만히 관리하기 위해 미국에 비교적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미중 경제팀 수장인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류허 중국 부총리가 지난달 18일(이하 현지시간) 취리히에서 대면했고, 존 케리 미국 대통령 기후문제 특사와 셰전화 중국 기후변화 특사가 같은 달 11일 화상대화를 했다.

여기에 더해 양국 외교 실무책임자인 토니 블링컨 장관이 5∼6일 베이징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정찰풍선 정국 속에 이 방문 계획이 출발 몇 시간 전 전격 연기됐다.

우크라이나 전쟁, 북핵, 대만 등을 둘러싼 안보 현안과 등에 대해 양국이 대화를 나눌 기회로 관심을 모았으나 예기치 못한 변수의 등장에 다음을 기약하기가 어렵게 됐다.

블링컨 장관은 방문을 취소하면서 “그 풍선이 미국 영공에 있는 것은 국제법뿐만 아니라 주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로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여기에 중국 외교부는 “사실 미국과 중국은 어떤 방문도 공식 발표한 적이 없다. 미국이 그런(방문 연기) 발표를 한다면 그건 미국 사정이고, 우리는 그걸 존중한다”며 블링컨 장관의 방문 자체를 깍아내리는 반응을 내놨다.

다만 중국은 격추 자체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면서도 ‘민간용’을 거론하며 정면충돌을 피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앞으로 다시 화해 모드로 돌입할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이르다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