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갈등 끝에 2350달러서 80% 내려 … 해외 거주 미국인 반발 수용
미국 정부가 시민권을 포기하는 데 드는 비용을 대폭 낮췄다. 지난 10년간 해외 거주 미국인 사회와 워싱턴 사이에 이어져 온 갈등이 일단락된 순간이다.
연방 국무부는 13일 연방 관보(Federal Register)에 게재한 공지를 통해 시민권 포기 절차에 필요한 영사 수수료를 기존 2350달러에서 450달러로 인하한다고 밝혔다. 인하 폭은 80%가 넘는다. 새 수수료는 4월 13일부터 적용된다.
이번 조치는 2023년 10월 처음 제안된 이후 해외 거주 미국인 단체들의 압박과 법적 도전 속에서 추진돼 왔다. 결과적으로 수수료는 처음 도입됐던 2010년 수준으로 되돌아가게 됐다.
미국 시민권 포기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신청자는 영사관에서 두 차례 인터뷰를 거쳐야 하고, 시민권 포기의 의미와 결과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을 받아야 한다. 이후 공식적인 포기 선서를 하고 심사를 거쳐 ‘국적 상실 증명서(Certificate of Loss of Nationality)’가 발급된다. 이 과정은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
국무부는 그동안 높은 수수료가 이러한 행정 절차에 드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해 왔다. 실제로 2010년 처음 도입된 450달러 수수료도 정부가 부담하는 비용의 25%도 충당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상황은 2015년 크게 달라졌다. 시민권 포기 신청이 급증하자 국무부는 수수료를 2350달러로 인상했다. 행정 비용을 전액 충당하겠다는 이유였다. 이 결정은 해외 거주 미국인 사회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갈등의 배경에는 미국의 독특한 세금 제도가 있다. 미국은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시민권 기준 과세’ 국가다. 미국 시민이라면 어디에 살든 매년 연방 세금 신고 의무가 있다. 즉 미국 영토 밖에서 단 한 푼도 벌지 않았더라도 세금 신고는 해야 한다.
실제로 세금을 내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신고 절차는 복잡하다. 많은 해외 거주 미국인들이 매년 수백 달러에서 수천 달러를 세무 전문가에게 지불해야 한다. 여기에 해외 금융기관 보고 규정까지 더해지면서 현지 은행 계좌 개설이 어려워지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국무부도 이번 공지에서 이러한 불만을 인정했다. 국무부는 “수수료 비용과 그 영향에 대해 시민들이 계속 우려를 제기해 왔다”고 밝혔다.
파리에 본부를 둔 ‘우연한 미국인 협회(Association of Accidental Americans)’는 그동안 높은 수수료를 문제 삼아 법적 소송을 제기해 온 대표적인 단체다. 이 단체의 회장 파비앙 르아그르는 이번 결정을 환영하면서도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수수료 인하는 구체적인 첫 승리이지만 시민권 포기 권리를 기본적인 헌법적 권리로 인정받기 위한 우리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시민권을 공식적으로 포기하는 사람의 정확한 수치는 공개된 통계가 없다. 다만 약 900만 명의 미국인이 해외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2010년 해외 금융 공시 규정이 도입된 이후 시민권 포기 신청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무부는 여전히 시민권 포기가 신중한 결정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른 국적이 없는 경우 ‘무국적 상태’가 될 수 있고, 이후 미국 입국에는 비자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미 결심을 굳힌 사람들에게는 마지막 장벽이 낮아진 셈이다.
이승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