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위대한 결정도 절차가 필요하다

애틀랜타한인회 “공청회 이후 소녀상 건립”발표…뒤늦지만 환영

민주적인 절차 밞으면 오해 풀릴 것…건립 자체는 계속 추진해야

애틀랜타한인회가 평화의 소녀상을 한인회관 건물 입구에 건립하는 문제에 대해 “한인동포가 참여하는 공청회를 개최하겠다”며 일단 유보’ 결정을 내렸다.

이사회를 통과해 확정된 안건이긴 하지만 한인동포 전체의 자산인 한인회관에 상징적 조형물을 설치하면서 한인사회의 의견을 묻지 않은 점에 대해 스스로 잘못됐다는 평가를 내린 것이다. 늦은 결정이지만 필요한 절차를 다시 밟겠다는 뜻이어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건립을 반대하는 사람 가운데 일부는 소녀상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고, 건립을 찬성하는 측에서는 “소녀상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역사인식이 결여됐다”고 공격했다. 하지만 건립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민주사회에서 꼭 필요한 의사결정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을 이유로 내세웠기 때문에 “친일파” 등의 일방적인 공격은 핵심을 벗어난 것이다.

한인회는 이번 기자회견을 통해 소녀상 건립을 발표하는 과정에 무리가 있었던 점을 시인했다. 건립위원회는 보안을 이유로 건립 과정을 전혀 공개하지 않았고, 한인회도 중요한 안건을 회의 당일 이사회에 회부했다. 특히 회의 당일 한인회는 “기자들은 이사회에 참석할 수 없다”고 선언해 논란을 부채질했다. 문제가 많았던 직전 제34대 한인회도 기자들의 이사회 참석을 막은 적은 없었다.

한인회관에 조형물을 설치하는 문제에 대해 한인회 정관은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럴 경우 한인회는 민주사회의 상식을 따라 구성원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절차를 밟으면 된다. “이사회를 통과했으니 문제없다”는 주장으로는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것이다. 브룩헤이븐시도 관내 공원에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하기 앞서 주민 대상의 공청회를 여는 등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쳤다.

한 전 한인회장은 기자에게 “현 한인회관 구입 당시 한국 토속문화를 상징하는 장승을 사비로 수입해 설치하려고 했지만 개신교 목회자들이 반대 의사를 밝혀 없던 일로 했다”고 말했다. 소수의 구성원이라도 반대의사를 밝힐 경우 이를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제대로 된 조직이다.

소녀상 건립위원회도 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아 건립을 추진해야 한다. 일본 정부의 조직적인 반대를 우려했다고는 하지만 법적으로 사유지인 한인회관에 소녀상을 설치하면서 그 과정을 비밀에 붙인 것은 오해를 사기 충분한 행동이었다. 또한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결과가 뻔한 안건을 논의하는 것은 자원 낭비”라는 전체주의적인 대응까지 했다. 소녀상의 설치 목적 가운데 하나가 일본의 전체주의가 낳은 여성인권 유린을 고발하는 것이다.

이번 유보 결정에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공청회를 소녀상의 역사적 의미와 설치 목적을 한인들, 특히 차세대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이러한 점을 제대로 설명한다면 건립위의 주장대로 소녀상 설치를 반대할 한인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제대로 된 절차를 밟은 뒤 모두에게 박수를 받으며 소녀상을 건립하는 것이 소녀상의 의미를 더욱 높이는 일이다.

무엇보다 건립 이후를 생각하며 소녀상의 교육적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계발해야 한다. 단지 거리 때문에 브룩헤이븐 공원에 세워진 소녀상을 찾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인타운인 둘루스 한 복판에 세워진다고 해도 소녀상이 상징하는 정신을 알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으면 단순한 조각상에 머물 수 밖에 없다.

이상연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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