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38년만에 교회법 개정…미성년자 성범죄 명문화

성직 신분서 제명까지 가능…무관용 원칙 재확인

교리 어긋나는 여성 성직 임명 시도도 처벌 명시

가톨릭 교회법이 미성년자 성범죄를 저지른 성직자 처벌을 명문화하는 등 큰 폭으로 개정됐다.

38년 만에 이뤄진 이번 법 개정은 관련 범죄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의지가 실렸다는 분석이다.

교황은 1일(현지시간) 헌장 ‘하느님의 양 떼를 쳐라'(Pascite Gregem Dei)를 통해 개정 교회법을 반포했다고 교황청이 밝혔다.

이번 교회법 개정은 범죄에 대한 형벌 조항을 담은 제6권의 1395·1398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가톨릭교회 안팎의 핵심 이슈가 된 사제의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 관련 조항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기술한 게 눈에 띈다.

이번 개정에 따라 사제가 미성년자 혹은 자기 의사결정 능력이 부족한 성인을 대상으로 십계명 중 제6계명(간음하지 마라)을 위반하는 범죄를 저지르면 성직 박탈과 동시에 다른 형벌에 처해진다. 경우에 따라선 성직자 신분에서의 제명 처분도 가능하다.

여기에 규정된 범죄는 신체에 가해지는 직접적인 성적 학대뿐만 아니라 신체를 노출하게 하는 등 음란한 행위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해당된다. 음란 사진을 습득·보유·유포하는 행위 역시 처벌받는다.

성직자 외에 가톨릭교회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평신도도 처벌 대상에 포함됐다. 관련 범죄를 저지른 평신도는 소속된 국가의 세속 형법에 더해 교회법으로도 처벌받을 수 있다.

기존 교회법은 ‘성직자가 힘·협박으로, 혹은 공개적으로 제6계명을 거슬러 범행했다면, 또는 16세 미만의 미성년자와 범하였다면 정당한 형벌로 처벌되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성직자 신분에서의 제명 처분도 배제하지 않는다’라고 규정한다.

이 조항은 형벌의 경중을 떠나 그 내용이 불완전하거나 모호해 관할 교구장 주교 등 고위 성직자의 폭넓은 재량권이 용인되고, 사건이 은폐 또는 무시되는 동기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개정된 조항은 이런 비판을 받아들여 형벌 대상을 더 구체적이고 명확히 함으로써 고위 성직자가 부당하게 사건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크게 줄였다는 의미가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개정 사항은 여성에게 사제품을 주려는 시도를 범죄로 규정해 처벌하는 조항이 신설됐다는 것이다. 이를 어기면 성직 신분에서의 제명 처분까지 받을 수 있다.

독일을 비롯한 일부 진보적인 지역 교회 차원에서 여성의 성직 임명을 지지하는 움직임이 가시화하자 법적으로 쐐기를 박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가톨릭 교리는 여성에 대한 사제서품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온 프란치스코 교황도 여성의 성직 임명은 교리에 어긋난다며 분명한 반대 의사를 표명해왔다.

이번 교회법 개정 작업은 베네딕토 16세 교황 재임 때인 2007년부터 추진돼온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가 1983년 반포한 교회법 개정 이후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법 조항을 손보고 보완하자는 취지다.

이와 관련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 세계 교회의 필요성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 요한 바오로 2세가 1983년 1월 25일 반포한 교회법은 명백히 수정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14년에 걸친 개정 작업 과정에선 교회법 및 형법 전문가, 사제 성 학대 피해자 등 교회 안팎의 의견·조언이 두루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개정 교회법은 오는 12월 8일 발효된다.

프란치스코 교황. [EPA=연합뉴스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