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 시한 한 달…LG-SK 합의 장기화?

SK “ITC 결정 LG의 독점 초래”…바이든 대통령 거부권에 사활

LG는 “거부권 안 나오면 합의금 더 오를 것”…SK, 항소도 검토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와 관련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최종 결정이 나온 지 한 달이 다 돼가지만 양 사의 배상금 합의는 좀처럼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ITC 결정에 대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리뷰 기한도 약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소송에서 진 SK이노베이션측이 조기 합의에 나서기보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지켜보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어서다.

업계의 이목이 백악관으로 쏠린 가운데, 양측의 합의가 당초 예상보다 장기화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 SK “수입제한 되면 LG가 독점”…대통령 거부권에 총력

ITC는 지난 5일 공개된 최종 의견서에서 “SK는 LG의 영업비밀이 없었다면 해당 정보를 10년 이내에 개발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완벽하게 LG 측의 손을 들어줬다.

ITC는 약 100쪽에 달하는 의견서에서 LG가 주장한 22개의 영업비밀 침해 항목을 모두 인정하고 SK에 내린 10년 간의 수입금지 명령도 타당하다고 했다.

ITC 최종 결정문이 공개됐지만 SK측은 여전히 ITC의 결정을 수용할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SK측은 ITC 결정문에 대해 “ITC가 (문서 삭제 등) 절차적 흠결만으로 모호한 결정을 내린 것이며 LG의 영업비밀 침해 주장에 대해 실체적 검증을 한 적이 없고 증거도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미국 대통령 리뷰 기간인 다음달 11일까지 거부권 행사를 끌어내기 위해 사활을 건다는 입장이다.

SK는 최근 백악관을 대신해 ITC 결정을 심의중인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수입금지 조치에 대한 우려의 입장을 전달했다.

미국내 총 50억달러 규모의 투자계획을 공개하면서, 10년의 수입금지 명령은 조지아주(州)에서 건설중인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조지아주에 짓고 있는 약 30억달러 규모의 1, 2공장 외에도 20억달러의 추가 투자가 예정돼 있는데 수입제한에 막혀 무산되면 지역내 배터리 공급과 일자리 창출도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SK는 자사가 미국내 배터리 사업을 못하게 되면 LG가 미국 시장을 사실상 독점할 것이라는 점을 백악관에 어필할 것으로 전해졌다.

글로벌 배터리 점유율 1위 기업인 중국 CATL을 포함해 중국 배터리사들의 미국내 투자가 사실상 막힌 상태에서 현실적으로 LG 외에 대안이 없어 독점에 따른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LG는 5일 로이터통신을 통해 미국 최대 자동차 회사인 GM과 오하이오주에 이어 테네시주에 두번째 배터리 공장 설립 추진계획을 공개했다.

SK의 배터리 수입 금지로 미국내 전기차 시장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LG가 미국 투자 확대로 맞대응한 것이다.

◇ 백악관에 쏠린 눈…업계 “장기화시 양사 모두 손해”

조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ITC의 10년 수입금지 명령이 무효화되면서 SK는 기사회생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델라웨어 지방법원에 걸려 있는 배상금 관련 재판에 따라 SK가 LG측에 배상액을 지불해야 할 가능성은 크지만, 현재 LG측이 요구하는 금액보다는 낮을 것이라는 게 SK측의 기대다.

반면 LG는 대통령 거부권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후 배상금액은 더 올라갈 것이며, 델라웨어 법원에서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내려지면 배상금이 2배 이상 높아질 수 있다고 압박하고 있다.

LG측은 최근까지 약 2조8천억원의 배상금을 요구한 반면, SK측은 최소 1천억원대, 최대 5천억∼6천억원을 주장해 격차가 크다.

협상이 본격화되면 양측의 배상금액도 차이도 좁혀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거부권 행사 전까진 양 사의 기싸움이 이어지며 합의 가능성이 낮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SK 관계자는 “배터리 부문 매출이 연 2조원이 안되고, 여전히 적자 상태인데 3조원에 육박하는 배상금을 물어야 한다면 미국내 사업을 계속 영위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부터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SK는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미국 연방항소법원에 ITC 결정에 대해 항소하고 시간을 버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다만 포드와 폭스바겐 등 SK 고객사의 조기 해결 압박이 변수가 될 수 있다.

포드는 7일 영업비밀 침해에도 불구하고 SK와 장래 사업을 계약한 포드측도 잘못이 있다는 ITC의 지적에 대해 반발하면서 “SK가 영업비밀을 악용하고 조사 과정에서 증거를 인멸한 행위들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달 중에는 역시 미국 ITC에 제기된 양사의 특허 침해 분쟁에 대한 결과도 나올 예정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SK는 신규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하고, 코나 리콜 비용으로 지난해 적자를 낸 LG에너지솔루션은 연내 상장을 앞두고 있어 해당 리스크가 장기화할 경우 양사 모두 불이익이 크다”며 “미 대통령 거부권 여부에 윤곽이 나오는대로 합의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 LG와 SK 본사 건물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