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95세…이민자 아들서 억만장자로, 성공의 비결은 어머니의 가르침
‘내 성공은 미국에 대한 보답’…조지아 수족관부터 군인 의료 지원까지
“홈디포는 우리에게 소중한 창립자 버나드 마커스의 별세에 깊은 슬픔을 느낍니다. 우리는 그를 친근하게 ‘버니’라고 부르며 존경해왔습니다.”
애틀랜타에 본사를 두고 있는 홈디포의 공동 설립자 버니 마커스가 5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95세.
홈디포는 성명을 통해 “버니는 여러 방면에서 영감을 주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뛰어난 상인일 뿐만 아니라 고객 서비스를 잘 이해하는 천재였습니다. 아서 블랭크와 켄 랭고니와 함께, 버니는 어떤 프로젝트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해낼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는 고객을 사랑했으며, 지금의 회사를 만들어낸 직원들을 사랑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회사의 핵심 가치를 깊이 신뢰했으며, 특히 사회 환원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성공을 명성이나 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사용한 그의 선행과 관대함은 비할 데가 없습니다”고 밝혔다.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도 마커스의 사망 소식에 대해 “조지아는 비전과 관대함을 지닌 이런 인물을 알게 되어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의 삶과 기억을 기리며 빌리, 마커스 가족 전체, 그리고 홈디포 팀을 생각하며 기도할 것입니다”라며 애도의 글을 올렸다.
마커스는 홈디포를 공동 설립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홈디포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홈 인프라 소매 체인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마커스가 애틀랜타와 미전역에 널리 알려진 이유는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수억 달러에 달하는 기부금을 내놓은 그의 선행 때문이다.
자선활동에 진심이었던 그의 비전과 믿음은 WSB-TV와의 생전 인터뷰를 통해 다시 조명되고 있다.
영상에서 마커스는 “이것은 내가 미국에 보답하는 방법입니다. 만약 신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셨다면, 내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는 이 아이들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마커스의 인생은 진정한 ‘빈털터리에서 부자로’의 이야기다. 1929년 5월 12일 뉴저지주 뉴어크에서 러시아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우리는 가난했습니다. 나는 공동 주택에서 자랐는데, 나에게는 그곳이 궁전 같았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러시아 이민자였고 집에서는 이디시어를 썼어요. 영어는 쓰지 않았죠”라며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또 “주변에 나와 비슷한 가난한 아이들이 많았어요. 우리는 모두 같은 처지에 있었죠”라고 덧붙였다.
마커스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 중 하나는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열심히 일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정직하고 자신을 믿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평생 제 마음속에 남아 있었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마커스는 실제로 성공을 이뤄냈다.
1978년, 마커스와 아서 블랭크는 하드웨어 매장에서 해고된 뒤 홈디포를 설립했다. 거의 무일푼 상태였던 두 사람은 다양한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잘 훈련된 직원들이 고객을 도울 수 있는 대형 매장을 열고자 했다. 첫 번째 홈디포 매장은 1979년 애틀랜타에 문을 열었다.
마커스는 “주말마다 트럭들이 매장에 와서 물건을 싣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갖지 못한 품질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국 곳곳에 매장을 계속 열게 된 겁니다”라고 회고했다.
현재 홈디포는 3개 대륙에 걸쳐 2200개 이상의 매장을 보유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마커스는 1978년부터 1997년까지 CEO로 재직했고, 이후에는 이사회 의장을 맡다가 2002년 은퇴했다.
사회 환원에 큰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개인 자산 2억 달러를 사용해 조지아 수족관을 건립했다. 그는 “어딜 가든 수족관을 들르곤 합니다. 아이들이 물고기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 참 기쁩니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마커스와 그의 아내 빌리는 마커스 재단을 설립하여 유대인 역사와 문화 인식(Jewish Causes)을 높이고, 아동, 연구, 자유 기업 및 지역 사회를 위한 사업을 후원하고 있다.
그는 “저와 아내는 이 세상에 짧게 머물지만, 그 동안 다른 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마커스 재단은 군인들이 치료비를 받지 못할 경우 이를 지원하는 쉐어 이니셔티브(Share Initiative)도 후원하고 있다. 마커스는 “이들은 최고의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절반이나 3/4이 아니라 100%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마커스 재단은 또한 그레이디 메모리얼 병원에 마커스 뇌졸중 및 신경과학 센터 설립을 위해 2천만 달러를 기부했다. 뇌 질환을 가진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마커스 연구소도 설립했다.
홈디포를 통해 소매업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자선 활동을 통해 깊은 흔적을 남긴 버나드 마커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오늘 하루에도 여기저기서 생명을 구했습니다. 우리에겐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라며 자신의 삶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승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