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리건주 고급 요양원, 관리소홀로 88세 한인 노인 실종 사망
한달 9천불 받고 식사도 제대로 안줘…중국인 오너는 부동산 업자
치매를 앓던 오리건주의 한인 여성이 월 9000달러를 받는 고급 요양원에 입주한 지 하루도 안돼 시설에서 실종된 뒤 성탄절에 사망한 채 발견되자 유족들이 3700만달러(한화 500억원)대의 소송을 제기했다.
오리건주 당국에 따르면 오리건 최대도시 포틀랜드 인근 치매 전문 너싱홈인 ‘마운트 후드 시니어 리빙’에 지난해 12월 23일 입주한 한인 현기순씨(88)는 다음날인 24일 실종된 뒤 25일 오후 인근 숲속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씨의 자녀인 수 현씨와 존 현씨 등은 요양원으로부터 어머니에 대한 집중 관리를 약속받고 월 9000달러(한화 1230만원)를 내기로 하고 어머니를 입주시켰다. 치매로 인해 집을 나가 헤매는 일이 잦았던 어머니를 걱정하는 가족들에게 요양원 측은 “첨단 문잠금 장치와 감시 카메라 등 안전관리가 철저해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시설에 입주한지 하루도 채 안돼 현기순씨는 시설을 나가 실종됐지만 요양원 측은 실종 다음날 오후 2시50분까지도 이 사실을 알지 못하다 뒤늦게 경찰에 신고했다. 현씨는 수십명의 자원봉사자가 투입된지 1시간도 안돼 요양원에서 800피트(240m) 가량 떨어진 숲속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현씨의 사인이 저체온증이었다고 밝히며 수색이 빨랐다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사건이 발생하자 오리건 주정부는 외부 옴부즈맨을 지정해 해당 요양원에 대한 감사에 나섰고 감사결과 이 요양원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졌던 것으로 나타났다. 요양원의 직원들은 치매 관리를 위한 필수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고, 유동식을 먹어야 하는 환자들에게 딱딱한 식사를 제공했다. 또한 처방약을 다른 환자에게 잘못 먹이는 일이 자주 벌어졌으며 거동하지 못하는 노인 1명을 8시간 이상 음식이나 물을 주지 않고 의자에 방치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현씨의 자녀들은 “이곳이 지난해 4월 개원한 신규 시설인데다 50병상의 소규모 집중관리 시스템이라는 홍보를 믿고 계약을 했다”면서 “여러 차례 방문해 원장을 비롯한 직원들을 만나보고 안전한 서비스를 약속받았는데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분개했다. 이 요양원의 주인은 중국계 조우 이씨로 요양원 관련 경험이 전혀 없는 부동산 업자였지만 주정부는 개원 허가를 내준 것으로 나타났다.
유가족들은 지난달 기자회견을 갖고 이 요양원과 업주 이씨를 상대로 1700만달러의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시설 관리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오리건 주정부에게도 2000만달러 규모의 소송을 냈다고 밝혔다. 딸인 수 현씨는 “엄마가 길을 잃고 추운 곳에서 혼자 두려워하며 가족들을 찾았다는 생각을 하면 뼛속까지 슬픔이 밀려온다”고 눈물을 흘렸다.
오리건 주정부는 감사를 마친 지난 1월 이 요양원에 대해 폐쇄 조치를 내렸다. 유가족의 변호인들은 “전국적으로 치매 전문시설이 부족한 상황에서 개원 1년도 안된 시설을 폐쇄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대응이었지만 그만큼 이 시설의 운영이 엉망이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라며 “주정부는 뒤늦게나마 적절한 조치를 취했지만 이미 소중한 어머니의 생명을 가족의 품에서 앗아간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미국 전역의 요양원의 관리 소홀로 실종돼 숨진 노인의 숫자는 100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연 대표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