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학생도 체포…불법 취업했다 덜미”

트럼프 2기 행정부 불법이민 단속 강화… 한인사회 ‘전전긍긍’”

식당 등 한인 비즈니스, 히스패닉 직원 무단결근에 일손 부족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 전역에서 불법 체류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단속이 진행되면서 한인 이민자 사회도 크게 술렁이고 있다.

그동안 비교적 조용히 생업에 종사하던 서류미비 이민자들은 하루아침에 체포될지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였고, 히스패닉 노동자들을 비롯한 식당·마트 업계 현장에서는 일손 부족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또한 합법 체류자들 역시 ‘만에 하나’의 상황을 대비해 시민권 취득 또는 신분 증빙을 서두르고 있어, 그 파장이 지역 경제와 커뮤니티 전반에 걸쳐 확산 중이다.

◇ “언제 들통날지 몰라 잠도 못 잔다”

29일 서울신문에 따르면 워싱턴DC 지역 한 한인은 “지난 주말 한인들이 많이 가는 페어팩스 카운티 타이슨스 몰의 한 한인 운영 식당에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 주방 뒷문으로 들어와 이곳에서 일하던 한 한인 학생의 신분증을 확인한 뒤 체포했다”고 전했다.

학생비자(F비자)는 학교 외부에서의 취업이 금지돼 있지만 그동안 암암리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주미대사관 측은 “관련 소식을 접했으며 ICE에 확인을 요청 중”이라고 밝혔다.

캘리포니아 남부 모처에 사는 50대 여성 A씨는 연합뉴스에 “지난 20여 년간 교통법규조차 어기지 않으려 신경을 썼는데, 최근 단속 강화 소식을 듣고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그녀는 2004년 관광비자로 입국한 뒤, 유학비자로 변경하려는 시도를 해봤으나 비용 부담으로 중도 포기했다. 이후 합법 신분 없이 식당 서빙이나 베이비시터 등 이른바 ‘캐시 잡(cash job)’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A씨는 “세금이라도 내면 언젠가 사면이나 합법화 기회가 왔을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개인 납세자 식별번호(ITIN)를 발급받아 세금을 꼬박꼬박 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언제 ICE(이민세관단속국)에 적발돼 추방될지 몰라 극도로 긴장하고 있다”는 게 그녀의 솔직한 심경이다.

◇ DACA 청년들도 “제도 폐지되면 어쩌나”

오바마 행정부에서 시행된 ‘불법체류 청년 추방 유예’ 제도(DACA)로 힘겹게 합법 신분을 얻은 청년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A씨의 27세 딸은 다섯 살에 부모와 함께 미국에 왔고, DACA를 통해 현재 합법 체류 중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1기 행정부에서 DACA 폐지를 시도했던 전력이 있는 데다, 일부 공화당 주(州)들이 제도 무효화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제도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이다.

DACA 신분으로 잠시 안도했던 해당 청년들은 “법원이 언제 어떤 판결을 내릴지 모른다. 제도가 없어지면 곧바로 불법체류 상태가 되어버린다”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연방 이민국(USCIS) 통계에 따르면 2023년 3월 말 기준 DACA 수혜자는 약 57만 명에 달하며, 이 중 출생지가 한국인 이민자는 5000여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 한인 비즈니스도 불똥… “직원들이 사라졌다”

LA·뉴욕·애틀랜타 등 대도시에 밀집한 한인사회도 이번 단속 강화에 긴장하고 있다. 한인 업주들은 “식당이나 마트에서 종종 남미계 불법 이민자를 고용해왔는데, 단속이 본격화되자 일부 직원이 갑자기 나오지 않아 영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LA 한인타운에서는 “ICE가 인근 지역을 급습했다”는 소문이 돌자, 히스패닉 종업원들이 단번에 일터를 떠나버려 영업에 큰 공백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남가주한인외식업연합회 관계자는 “아직 실제 체포 사례가 접수되진 않았지만, 다들 마음을 졸이며 눈치를 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한 버지니아주 애넌데일의 한 식당에서는 서빙 직원을 구하기가 어려워졌다고 호소한다. “지난주부터 홀 서빙 직원 두 명이 돌연 출근하지 않았다”는 게 업주 설명이다. 이들은 주변에 히스패닉 밀집 지역에서 ICE 단속이 이뤄졌다는 소문을 듣고 도망간 것으로 추정된다.

◇ 합법 체류자도 긴장… “영주권도 불안해 시민권 취득 서둘러”

ICE의 불시 급습이 빈번해지자, 영주권을 가진 한인 중에서도 시민권 취득을 서두르는 사례가 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지역 비영리단체 AJSOCAL(Asian Americans Advancing Justice Southern California)의 한국어 상담원은 “최근 50년 이상 거주했음에도 시민권 없이 살던 분들이 ‘영주권을 갱신하다 잘못되면 추방될 수 있지 않느냐’는 우려에 시민권 신청 문의를 많이 하고 있다”고 전했다.

주변에선 실제로 경미한 범법 행위라도 걸리면 영주권 박탈·추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되며, “항공권을 이미 끊었어도 혹시 모를 문제가 생길까 취소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에 주미대사관과 한인 이민자 권익단체들은 “합법 신분을 가지고 있어도 범법 행위나 문서 누락에 노출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각별히 주의하라”고 당부한다.

영주권자인 한인 김모(52)씨는 서울신문에 “아시안 마트, 한인 식당 중심으로 단속을 확대한다는 소문도 있고 일단 무작위로 잡아간다는 얘기도 돈다. 영주권 복사본만 들고 다녔는데 검문에 대비해 영주권 카드도 들고 다녀야 할 것 같다”며 불안해했다.

주미대사관 관계자는 “아직 상황을 주시 중이나 한인을 겨냥한 단속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에 법률 서비스, 영사 면회 등 영사 조력을 준비하고 있다”며 “한인들 간 소통 강화 등 정보 공유도 당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 “문 열지 말고, 영장 확인부터”… ‘알 권리’ 캠페인

한인·아시아계 이민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들은 불안에 떠는 이들을 위해 ‘알아야 할 권리(Know Your Rights)’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NAKASEC(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은 핫라인(전화상담)을 운영하면서, 만약 이민세관단속국 요원들이 집이나 가게를 찾았을 때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안내하고 있다.

핵심 내용으로는 △판사가 서명한 영장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할 것 △집 안에 들어오도록 허락하기 전까지 절대 문을 열지 않을 것 △가택 수색 영장이 없으면 문을 열 의무가 없다는 점 △변호사 동석 없이는 불리한 진술을 하지 말 것 등이 있다. NAKASEC 측은 “요즘 불안하다는 이유로 전화를 해오는 서류 미비자와 업주가 급증했다”며 “법률 상담을 미리 받아두고, 체포 상황을 대비한 서류 정비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백악관에서 ‘레이큰 라일리 법(Layken Riley Law)’에 서명했다. 이 법은 조지아주에서 베네수엘라 출신 불법 이민자에 의해 살해된 미국 학생의 이름을 따 제정된 것으로, 불법 이민자 단속·추방의 법적 근거를 더욱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쿠바 관타나모 기지를 본토에서 체포한 불법체류 이민자 수용소로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혀, 향후 한층 강경한 정책이 이어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상연 대표기자

워싱턴DC의 주미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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