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위기 앞에선 법과 상식…미국 민주주의의 저력

 

연합뉴스 고일환 특파원

미치 매코널 미국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의 별명 중 하나는 ‘다스베이더’다.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악의 화신이다.

매코널 원내대표는 2003년 공화당 원내총무가 된 이후 18년간 공화당의 의회 전략을 설계하고, 집행했다.

당리당략을 위해 누구보다도 냉혈하고, 무자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기 뜻에 반대하는 공화당 동료 의원에게 “다음 당내 후보 경선 때 당신 상대 후보를 밀어줄 것”이라고 위협해 동의를 얻어낸 적도 있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진보 성향인 메릭 갤런드의 대법관 인준을 무산시킨 것도 그였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브렛 캐버노가 ‘성폭행 미수’라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대법관 인준을 받을 수 있게 전략을 세운 것도 그였다.

지난해 대선 후보를 지명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연설 도중 매코널 원내대표를 별도로 언급했을 정도다.

민주당 입장에선 증오가 사무친 대상이란 이야기다.

이런 매코널 원내대표가 6일 시위대 난입사태로 중단된 대선결과 인증 상·하원 합동회의가 저녁에 재개된 직후 발언권을 얻었다.

그의 발언은 명료했다.

매코널 원내대표는 의사당에 난입한 시위대를 ‘폭력배’와 ‘폭도’로 규정했다.

공화당 소속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극성 지지층들이 저지른 불법행위를 비판하는 데는 어떠한 주저함도 없었다. ‘정치적 계산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그였지만,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선 당리당략 대신 상식을 선택했다.

그러면서 그는 무력과 위협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결국 헌법상 책무인 대선 당선자 인증을 마무리했다.

폭력을 앞세운 시위대 탓에 의회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지만, 오히려 헌법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한 계기로 삼은 셈이다.

시위대의 의회 난입 사태 이후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된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 등 비서구권 국가들은 기회가 왔다는 듯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은 더는 민주주의의 모범이 될 수 없다는 비아냥도 섞였다.

실제로 미국식 민주주의가 완벽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민권운동에 대한 탄압 등 어두운 시기를 차치하더라도, 지난 4년간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여러 문제가 목격됐다.

그러나 미국은 수많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스스로 극복해왔다. 제도가 지닌 장점 때문인지, 미국 정치인들의 자질 때문인지는 불명확하다.

다만 정적들로부터 ‘악의 화신’이란 비난을 받던 매코널 원내대표가 위기의 순간에 보여준 단호함 속에선 미국 민주주의의 저력이 확인됐다.

의회에 난입한 시위대 [로이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