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예배 주교, 트럼프에 “자비 베풀라”

워싱턴 내셔널 대성당 ‘국가 기도 예배’ 중 트럼프와 ‘정면 충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 이틀째인 21일 워싱턴 내셔널 대성당에서 열린 전통적 취임 행사 ‘국가 기도 예배(A Service of Prayer for the Nation)’에 참석했다.

이 자리는 민주·공화·무소속 등 각계 인사와 종교인들이 참여해 신의 인도를 구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행사다. 하지만 이날 설교 중 워싱턴 성공회 주교인 마리안 에드거 버드(Mariann Edgar Budde)가 트럼프 대통령과 J.D. 밴스 부통령에게 날선 비판을 던지면서 현장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 “두려움에 떠는 이들에게 자비 베풀어 달라”

버드 주교는 약 15분간 이어진 설교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향해 “수백만 명이 당신에게 신뢰를 보냈으며, 당신이 사랑 많으신 신의 섭리를 언급했다면,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라고 호소했다.

그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과 이민 정책에 우려를 표하며 “현재 많은 이민자들과 소수자들이 자신의 생명을 걱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버드 주교는 “민주·공화, 무소속 모든 가정에 동성애자·양성애자·트랜스젠더 자녀들이 있으며, 이들 일부는 큰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대다수의 이민자는 범죄자가 아닌, 세금을 내고 좋은 이웃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며 “우리의 신은 낯선 자를 환대하라고 가르친다”고 강조했다.

◇ “추방 명단에 넣어야” vs. “우리는 낯선 이들이었다”

버드 주교의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서명한 여러 행정명령(불법 이민자 추방 강화, 국경 장벽 건설, 불법체류 단속 강화 등)에 대한 공개 비판으로 해석된다.

기도 예배 직후, 조지아주 공화당 하원의원 마이크 콜린스는 버드 주교의 설교 영상을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공유하며 “이 설교를 한 인물도 추방 명단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버드 주교는 설교 말미 “우리 역시 한때 이 땅의 낯선 이들이었다”며 “전쟁과 박해를 피해 온 사람들과 두려움 속에 사는 아이들, 그리고 이민자 부모들에게 자비와 환대를 보여주길 바란다”고 역설했다.

◇ 트럼프 대통령 “좋은 예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날 국가 기도 예배에는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가족, J.D. 밴스 부통령 부부, 마이크 존슨 연방 하원의장 등이 참석했다. 1933년부터 이어진 대통령 취임 전통 행사인 ‘국가 기도 예배’를 마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은 공식 취임 일정을 모두 마무리했다.

다만 예배 종료 후 백악관 출입 기자들과 만난 트럼프 대통령은 “(버드 주교의 설교는) 나와 상당히 다른 시각을 보여줬다”며 “좋은 예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고 짧게 말했다.

버드 주교는 지난 2020년 트럼프가 성 요한 성공회 교회(St. John’s Episcopal Church) 앞에서 성경을 들고 사진 촬영을 했을 당시에도 “분열을 선동하려는 의도”라며 강력 비판했었다.

이상연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