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이 한국 만들어”

“나는 한때 사회주의자…지금은 유럽식 사민주의가 현실적”

“시민들, 정치인 심판해야지 그들의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

진중권(59)은 격정적이다. 강연, 기고,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마음속에 있는 말을 그대로 쏟아낸다.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에서 역대 대통령 가운데 박정희(산업화), 김대중(민주화·정보화), 노무현(수평적 네트워크) 등 3명의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대학 시절에 사회주의자였지만 독일에서 유학하면서 사민주의(사회민주주의)가 현실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했다. 그는 진영을 위해 정의가 희생되거나 왜곡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미학과 학부를 졸업한 그는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언어철학을 공부했다. 중앙대 교수, 동양대 교수 등을 거쳐 지금은 광운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독일 유학시절 진중권
독일 유학시절 진중권 [본인 제공]

— 어릴 때 집안 사정은 어떠했나.

▲ 가난했다. 극도로 궁핍한 것은 아니었다. 중류층보다 약간 아래 수준이었다.

— 아버지는 어떤 분이었나.

▲ 아버지는 개척교회 목사여서 오랫동안 봉급을 받지 못했다. 급여를 받기 시작했을 때도 보통 사람 월급의 3분의 1 정도에 머물렀다. 아버지는 봉급을 받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돌아가셨다. 연탄가스 중독 후유증 때문이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지셨나.

▲ 어머니가 피아노 교습을 하셨다. 사범학교에서 풍금을 배웠기에 가능했다. 어머니는 사범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하는 바람에 교직에 몸담지는 않았다.

—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나.

▲ 첫째 누나(진희숙 음악평론가)와 둘째 누나(진은숙 작곡가)는 어머니의 음악적 영향을 받았겠지만 나는 피아노를 치기 싫어했다. 어머니가 하루에 30분씩 피아노 연습을 하라고 했지만 나는 밖에 나가 놀고 싶었다. 피아노 앞에 그냥 앉아 있다가 내려오는 경우도 있었다.

— 중학교 시절 학업성적은 어떠했나.

▲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반에서 1등을 했고 그 이후로는 2∼3등을 했다. 2학년 때는 많이 놀아서 성적이 좋지 않았다. 3학년 때는 반에서 3등을 했는데, 1∼2등을 했던 사람이 수학자 황준묵이다.

— 고교 시절에는 성적이 더 좋아졌나.

▲ 고교 1학년 때는 계속 1등을 했다. 중학교 3학년 때에 스스로 혼자 선행학습을 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졸업반 당시에 갑자기 공부에 관심이 생겨서 고교생들이 보는 영어 참고서인 ‘성문종합영어’를 끝냈고 고교 1학년 수준의 수학도 마쳤다. 고교 2학년 때는 선행학습 밑천이 떨어져 성적이 좋지 않았다. 고등학교 3년간의 평균 내신은 4등급이었다.

— 고교 시절 생활은 평탄했나.

▲ 정학을 3번 맞았다. 담배를 피우고 싸움질을 했기 때문이다.

— 싸움을 잘했나.

▲ 한국의 복싱이 잘 나갔을 때여서 나도 권투도장에 다니면서 복싱을 배웠다. 내가 폭력조직의 아이들처럼 매일 싸움질만 했던 것은 아니다.

— 고교 시절 책을 많이 읽었나.

▲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 ‘8억 인과의 대화’ 등을 읽었다. 김동길 교수의 책도 봤다. 국어 수업 시간에 ‘전환시대의 논리’를 몰래 읽다가 들킨 일이 있다. 그때 국어 선생님이 내 옆에 와서는 그 책을 꺼내 놓으라고 했는데, 책 제목을 확인하고는 계속 보라고 했던 일이 생각난다. 고교 시절에 대학생들이 읽었던 ‘해방전후사의 인식’ 같은 책도 봤다. 이런 책은 누나의 책장에 있었다.

연합뉴스와 인터뷰중인 진중권
연합뉴스와 인터뷰중인 진중권 [촬영 정한솔]

— 대학교 진학할 때 왜 미학과를 선택했나.

▲ 입학할 때는 철학 계열로 들어갔다. 나중에 학과를 정해야 했는데, 미학과라는 이름이 예뻐서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미학과에 잘 갔다고 생각한다. 영화나 만화를 봐도, 소설을 읽어도 공부가 되고 연결이 됐다.

— 학부 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했나.

▲ 작은 지하 서클에 들어갔다. 중요한 멤버는 아니었고 주변인 정도였다. 나는 서클 이름도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선배들이 보안 유지를 위해 가짜 이름을 알려줬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하 서클의 핵심 멤버는 아니지만 시위에는 모두 참여했다.

— 대학원 생활은 어떠했나.

▲ 군대를 마친 후에 대학원에 들어가서는 조직 운동을 열성적으로 했다. 그때는 지하당을 만들자는 사람이 많았다. 그중에 한 곳에 들어가 활동했는데, 조직이 무너졌다. 조직원들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잇따라 체포됐다. 나도 구속될 줄 알고 기다렸지만 나까지 내려오지는 않았다.

— 대학원 시절에 학생운동에 열심히 참여한 계기는 무엇인가.

▲ 1987년에 노동자 대투쟁이 있었다. 내가 군대를 마치고 대학원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운동의 본류가) 학생운동에서 노동운동으로 넘어간 상태였다. 마창노련(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맹) 등 노동운동이 활발했다. 그 분위기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활동하게 됐다.

— 독일에서 공부했는데, 학위는 왜 취득하지 않았나.

▲ 독일에 4년 6개월 정도 있었다. 막판에 지도교수와 싸우게 됐다. 교수가 논문에 대해 여러 가지 트집을 많이 잡았기 때문이다. 다른 교수에게 가야 했는데, 한국에서 외환위기도 발생하고 해서 그냥 귀국했다.

— 유학 중에 아내를 만났나.

▲ 독일의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현지의 어학원에 다녔다. (일본인) 아내와 나는 같은 동네에 살았다. 아내도 어학원에 다니고 있어서 같이 지하철을 타다 보니 친해졌다.

— 아들은 독일 유학 중인가.

▲ 아들은 일본에 태어나서 한국에 6개월 있다가 독일에서 자랐으니 유학이라고 할 수 없다. 나는 가족을 만나러 가끔 독일에 간다. 가족들이 한국에 오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아들이 친구와 함께 한국에 와서 3주 동안 신나게 놀고 돌아갔다.

— 가족끼리는 무슨 언어로 대화하나.

▲ 한국어, 독일어, 일본어를 섞어 사용한다. 가족끼리 독일어로 대화를 하다 옆에 독일사람이 있으면 일본어로 바꾸고, 일본 사람이 있으면 독일어로 말하곤 한다.

경비행기 조종하는 진중권
경비행기 조종하는 진중권 [본인 제공]

— 취미가 경비행기 타는 것이라는데, 그걸 타면 스트레스가 풀리나.

▲ 타봐야 안다. 스틱을 잡고 하늘로 올라가면 기분이 좋다. 나는 어렸을 때 (강서구)공항동에 살아서 비행에 대한 꿈이 있었다. 747점보기가 처음에 한국에 들어왔을 때 공항에 착륙하는 장면을 봤다. 공항에는 미국 공군도 있었다. 지금의 블랙이글스처럼 곡예비행을 하는 것도 봤다. 유학 시절에 잡지를 보고는 경비행기 가격이 비싸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와서 비행 조종술을 배웠고, 면허를 따자마자 중고 경비행기를 4천300만 원에 샀다. 가장 최근의 비행은 작년에 담양에서 비행기를 빌려서 내장산을 돌고 내려온 것이었다.

— 자동차 운전 면허증은 왜 따지 않았나.

▲ 운전하다 길바닥에서 싸우는 모습이 싫었다. 하늘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 물론 하늘에서도 비행 매너가 안 좋은 사람들이 있다. 비행 클럽 간에 지켜야 할 것이 있는데, 일부가 준수하지 않는다.

— 담배는 많이 피우나.

▲ 담배는 하루 한 갑 안 되게 피운다. 술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취할 정도로 마시지는 않는다.

— 성격이 외향적으로 보이는데, 실제로는 내성적인가.

▲ 휴대전화에 보유 중인 전화번호가 별로 없다. 내가 직접 전화를 거는 사람은 대여섯 명 정도다. 나머지 전화 통화는 공적인 응대다. 나는 사람들과 친해지기가 어려운 성격이다. 여러 사람과 함께 만나서 왁자지껄하다가 낯 가림이 없어지면 친해지는데, 한두 사람을 만나는 것은 힘들어한다.

— 독설적 표현을 하곤 하는데, 그러는 이유는 무엇인가.

▲ 물리적 폭력을 언어적 풍자로 바꾸는 것인데, 나는 문명적이라고 본다. 나의 풍자에는 원칙이 있다. 자기보다 약한 사람, 사회적 약자,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해서는 풍자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2009년 8월 중앙대의 진중권 재임용 불가 처분에 항의하는 학생들
2009년 8월 중앙대의 진중권 재임용 불가 처분에 항의하는 학생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 기상 시간은 어떻게 되나.

▲ 오전 4시 정도에 잠자리에 들고 오전 10∼11시에 일어난다. 한동안 불면증이 있었는데 지금은 나아졌다. 자기 전까지는 이것저것 한다.

— 운동은 하나.

▲ 특별히 시간을 내는 것은 아니다. 일하러 갈 때 지하철역까지 걸어 다니곤 한다.

— 요즘은 집필 관련 책을 주로 읽나.

▲ 일반적인 서적은 속독한다. 3시간이면 한 권을 읽는다. 논문을 읽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집필은 지금 안 하고 있다. 철학사 정리는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다 중단했다. 감각론은 3부작인데, 1부작만 마쳤다. 감각론(감각의 역사)은 2020년 교육부와 학술원이 선정하는 우수학술 도서에 들어갔다. 집필은 조국 사태 때문에 멈췄다. 아무것도 못 하고 조국사태에 매달렸다. 지금은 여유가 있어서 스페인어와 피아노를 배우고 있으며 장난감도 조립한다. 천체망원경으로 월식 같은 것도 본다. 어릴 때 돈이 없어서 못 했던 것을 지금 하는 셈이다.

— 본인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 장점은 뭐든지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상황에 맞춰 살면 된다는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삶의 (생활) 수준을 높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골프나 명품 등에 대한 욕망 자체가 없다. 아내도 비슷하다. 동양대 교수를 그만뒀다고 전화했더니 아내는 “잘했어. 걱정하지 마. 내가 먹여 살릴게”라고 했다. 나의 단점은 싫증을 빨리 낸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을 추구하다 보니 재미가 없으면 금방 그만둔다. 의무로 해야 하는 것을 잘 못 하고 힘들어하는 것도 단점이다.

— 본인 삶은 성공적인가.

▲ 꼭 성공해야 하는가?. 굳이 이야기하자면 나는 그렇게 성공한 편은 안된다. 실패한 삶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나는 어릴 때 좀 더 평등한 세상, 좀 더 정의로운 세상을 원했는데, 그것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 역대 대통령 중에서는 누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나.

▲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세 분이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산업화에 성공했다. 독재를 했지만 그 체제가 18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민중들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수평적 정권 교체를 이뤘고, 산업사회를 정보화 사회로 바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국을 수직적 구조에서 수평적 네트워크로 전환했다. 두 군사정권(전두환·노태우 정부)은 경제를 시장주도로 바꾸는 역할을 했다. 과거의 보수정권과 진보정권은 자기들에게 맡겨진 역사적 과제를 수행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가지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

2020년 2월 진중권 강의를 듣는 안철수
2020년 2월 진중권 강의를 듣는 안철수 [연합뉴스 자료사진]

— 대학시절 사회주의를 지향했나.

▲ 그렇다. 그때에는 그게 시대정신이었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 몰락 이후에 독일에 가서 보니 유일하게 작동 가능한 것이 유럽 모델이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사회주의 개념이 결합하는 시스템이다. 독일의 경우 유치원부터 대학 박사과정까지 학비가 무료다. 외국인 아이들한테도 아동수당을 준다. 나는 22년 전에도 밝혔는데, 사민주의(사회민주주의), 무정부주의(자율주의), 녹색당(생태환경주의)이 우리가 지향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 북한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북한은 봉건왕조다. 대학 다닐 때부터 우리(PD·민중민주계열)는 정통을 지향했다. 자본론도 읽었다. 그러나 저쪽(NL·민족해방계열)은 김일성이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했는데, 이게 우민화다. 그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다. 사회주의는 노동자들의 의식을 계몽시키고 각성시키는 것이며, 노동자들을 인텔리로 만드는 것이다. NL은 멀쩡한 인텔리마저도 우매한 대중으로 만든다. 북한은 말도 안 되는 체제다.

—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어떻게 알게 됐나.

▲ 1989년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소에서 처음 만났다. 학술단체 연합회였는데, 그곳에서 조국과 함께 ‘주체사상 비판’이라는 책도 냈다. 당시 나는 PD(민중민주)였고 조국은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소속이었다. 사노맹은 북한에 대해 비판은 하는데, 그렇게 적대적이지는 않았다. 이후 내가 동국대에서 강의할 때 연구실에 잠깐 들러서 조국을 만나기도 했다. 그다음에는 주로 트위터 등으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친구이긴 한데, 함께 술을 마시는 사이는 아니다.

강연하는 진중권
강연하는 진중권 [연합뉴스 자료사진]

— 조국 사태 이후 진보는 몰락했다고 주장했는데, 무슨 취지인가.

▲ 진보가 어떻게 부정부패한 사람을 옹호할 수 있나. 우리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진영을 만들었는데, 진영을 위해 정의를 희생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내가 젊었을 때 수많은 동지와 학우들이 진보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죽었다. 부정부패를 옹호한다면 그 사람들은 뭐가 되겠는가. 그들에 대한 배반이다. 상대방이 절대 악이기 때문에 자기들의 모든 것이 용서된다고 생각하고 대중을 동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독재 정권 시절에는 진영을 옹호하는 게 중요했는데,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 진영논리에 빠졌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사람은 관념으로는 목숨을 걸지 않는다. 이해관계가 걸렸을 때는 다르다. 권력을 잡게 되면 그 아래 시민단체들이 사업권을 따내고 그 밑의 출판사, 인쇄소 같은 업소들이 이익을 본다. 학계도 프로젝트 자문위원들로 연결되고 대학 자리도 자기들끼리 주고받는다. 변호사 업계도 마찬가지다. 특정 법무법인에 소송을 몰아주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공고한 기득권층이 형성되는 것이다. 물질적 혜택이 없는데도 진영논리에 휩쓸린다면 지력(지적능력)이 모자라는 것으로 봐야 한다.

— 민주당은 연성 파시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런 의견에 동의하나.

▲ 그들은 연성 파시즘을 하고 싶었는데, 한국의 법치주의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그들이 하려고 했던 것을 법원이 번번이 제동을 걸었다. 한국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들은 대중 선동을 해서 대중 집회를 열면 자신들이 이길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자들이다. 민중민주(PD) 인민민주주의, 민족해방(NL) 인민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 PD는 소련의 소비에트 사회주의를, NL은 북한을 지향했다. 이것에 대한 반성이 없었고 교정이 진행되지 않았다. 지적으로 게으른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집단주의에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다른 의견을 냈다고 출당시키고, 올바른 이야기를 했다고 쫓아내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권력은 선출됐기 때문에 뭐든지 해도 좋다는 사고는 과거의 히틀러, 스탈린 방식이다.

연합뉴스와 인터뷰중인 진중권
연합뉴스와 인터뷰중인 진중권 [촬영 정한솔]

—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 국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에 기대했던 것은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여의도 문법에서 자유롭게, 빈 도화지에다 보수의 그림을 새롭게 그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인재라고 뽑은 것이 서울대 출신의 60세 넘은 옛 관료들, 판검사들이다. 판을 새로 짜야 하는데, 과거 MB(이명박 전 대통령) 계열로 다시 돌아갔다.

— 여권은 새 그림을 그리기 어렵다는 것인가.

▲ 국민의 힘이 희망을 보여주긴 했었다. 나는 보수적인 사람들이 30대 이준석을 당 대표로 뽑는 것을 보면서 변화할 생각이 있는 것으로 봤다. 또 정치 쪽에서 감각이 있는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함께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러나 국민의 힘은 두 사람을 내쳤다. 특히 당 대표를 유신헌법처럼 쿠데타를 일으켜서 쫓아냈다.

— 여권은 정의와 상식을 회복하겠다고 했는데,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인가.

▲ 그 의제가 사라졌다. 이렇다 보니 중도층의 사람들이 여권을 지지할 이유가 없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처럼 인혁당 사건을 통 크게 해결해주는 (국가 배상금이 과다 지급돼 배상금 일부와 지연 이자를 토해내야 했던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유가족 지연이자를 면제한 조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 본인이 원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 우리 사회가 사회주의적으로, 생태주의적으로, 자유주의적으로 좀 더 바뀌었으면 좋겠다.

— 야당 쪽 정치인 중에서는 누가 유망한가.

▲ 민주당의 김한규 의원이 젊은 초선인데, 스마트한 것 같다. 정의당에서는 류호정, 장혜영 등 젊은 여성 의원들이 있다.

— 정치 평론이 아닌 실제 정치를 할 생각은 없나.

▲ 나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 없다. 권력은 다른 사람한테 내 의지를 강요하는 힘이다. 그 자체가 싫다. 권한에 따른 책임감과 윤리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그걸 해야 하는데, 나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지금 내가 하는 게 정치라고 생각한다.

—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나.

▲ 본인 스스로 판단하고 정치인을 심판해야지, 정치인들의 도구가 돼서는 안 되다. 유튜브의 경우 사람들이 듣기 좋은 말만 하지 정말 들어야 할 말은 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그것을 이용한다. 국민들이 자신의 시간과 비용을 정치인들에게 바칠 필요는 없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