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렴으로 장기간 입원, 활동 재개중 선종 …”평생 주님·교회 헌신”
청빈의 아이콘…우크라·이스라엘 전쟁 속 ‘평화의 외침’ 심금울려`
전 세계 14억 가톨릭 신자를 이끌어온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현지시간) 88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교황청은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전 7시 35분,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셨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는 폐렴 등 건강 악화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중에도 교황직을 끝까지 수행하다가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임 기간 내내 청빈과 겸손을 실천하며 ‘가난한 자의 벗’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분쟁과 갈등이 계속되는 세계 곳곳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선종 하루 전에도 가자지구의 전쟁 상황을 언급하며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부활절 메시지를 남긴 그의 마지막 말은 신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의 장남으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청년기엔 양말공장에서 일하며 식품화학을 공부했고, 이후 예수회에 입회해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 주교와 추기경을 거치며 빈민촌 선교에 힘써왔고, 2013년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며 1,282년 만의 비유럽권, 최초의 신대륙 출신 교황이라는 타이틀을 안았다.
교황은 즉위 이후 검소한 삶으로 전 세계인의 존경을 받았다. 순금 대신 철제 십자가를, 대형 리무진 대신 소형차를 택했고, 교황궁 대신 공동숙소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 머물렀다. 그의 이러한 청빈한 행보는 가톨릭이 현대사회 속에서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내 보수 진영과의 갈등도 마다하지 않았다.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을 허용하고, 추기경 인사를 통해 교세가 약한 국가에도 기회를 부여하는 등 교회의 구조를 개혁했다. 한국 대전교구의 유흥식 추기경도 그의 개혁 의지 속에서 탄생한 인물이다.
그는 평화의 사도이기도 했다.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미얀마의 로힝야 사태, 이라크 테러 희생자 위로,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중에도 끊임없이 분쟁 중단과 민간인 보호를 호소했다.
기후변화, 신자유주의 등 글로벌 이슈에 대한 발언도 주저하지 않았다. 교황의 리더십은 종교적 권위를 넘어 세계적인 도덕적 권위로 작용했다.
건강 악화 속에서도 교황은 끝까지 사임을 거부했다. 폐렴, 탈장, 결장 수술, 무릎 통증 등으로 휠체어나 지팡이에 의지하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그는 “나는 건강하다. 다만 늙었을 뿐”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소명을 지켜냈다.
2021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이라크를 방문했고, 2014년엔 아시아 대륙 첫 방문지로 한국을 택해 한반도 평화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방북 의지도 밝혔으나 성사되진 못했다.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에서의 두 번째 방한도 기대됐지만, 그의 선종으로 이는 차기 교황의 몫이 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는 생전 뜻에 따라 간소하게 치러질 예정이다. 그는 평소 “품위 있으면서도 모든 그리스도인처럼 간소화된 예식을 원한다”고 밝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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