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보험사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숨겨진 수수료 체계를 통해 환자에게 과도한 진료비 부담을 지우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7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대형 보험사들은 데이터 분석업체 ‘멀티플랜'(MultiPlan)과의 외주 계약을 통해 환자들에게 돌아가는 진료비 부담을 키울 수 있는 수수료 체계를 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고용주가 의료비를 지원하는 직장보험 가입자가 많다. 대기업들은 자체기금을 통해 직원의 의료비를 지원하되 행정 처리는 일반적으로 보험사에 맡긴다.
사전에 계약된 지정(In network) 의료진이 아닌 비지정(Out of network) 의료진으로부터 불가피하게 진료받은 경우 고용주는 의료진이 청구한 비용 중 얼마를 부담해야 할지를 일일이 산정해야 한다.
멀티플랜은 이때 고용주가 부담할 적정한 진료비 비중을 산정해 보험사에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데이터 분석업체다.
유나이티드 헬스, 시그나, 애트나 등 미국의 대형 보험사들이 멀티플랜과 계약을 맺고 있다.
문제는 고용주가 부담하는 진료비 비중을 줄일수록 멀티플랜과 보험사에 돌아가는 수수료가 커지는 식으로 설계된 숨겨진 유인 체계에 있다고 NYT는 분석했다.
예를 들면 의사가 1천달러를 청구했을 때 멀티플랜이 고용주 부담액을 200달러로 산정했다면 보험사는 차액(800달러)의 35%인 280달러를 수수료 명목으로 고용주로부터 받는 구조다. 또한 멀티플랜은 보험사로부터 차액의 7%인 56달러를 받는다.
진료비 1천달러 중 고용주 부담액 200달러를 제외한 800달러는 환자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
멀티플랜 입장에서는 비지정 의료진 진료비에 대한 환자 부담을 키울수록 수익이 늘어나는 구조인 셈이다.
미국에서 건강보험에 가입했더라도 많게는 1억원이 넘는 예상치 못한 ‘깜짝 진료비 청구서'(Surprise billing)를 받는 사례의 이면에는 의료진의 과도한 비용 청구 등 다양한 원인 외에 이런 숨겨진 수수료 체계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깜짝 진료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방정부가 2022년부터 ‘노 서프라이즈법'(NSA)을 시행했지만 멀티플랜과 관련한 직장 건강보험 청구에서는 여전히 사각지대가 많은 상황이라고 NYT는 전했다.
특히 정신건강 관련 진료나 중독 치료 등 분야에서는 상당수 의료서비스가 비지정 진료인 경우가 많은데 이 같은 이유로 환자 부담이 커지면서 진료를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고 NYT는 소개했다.
보험사와 멀티플랜이 챙긴 수수료 수입이 의료기관에 돌아간 돈보다 많은 경우도 있었다.
NYT가 확보한 한 재판기록에 따르면 보험사 시그나는 8건의 중독치료와 관련해 고용주로부터 447만달러의 행정 수수료를 받았고, 멀티플랜도 이와 관련해 122만달러의 수수료 수입을 거뒀다. 정작 중독치료시설에 돌아간 진료비는 256만달러에 불과했다.
NYT는 멀티플랜이 2006년 사모펀드 투자자에게 넘어간 뒤 공격적인 사업 방식을 추구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멀티플랜 측은 NYT에 “수용가능성과 효율성, 공정성을 증진하기 위해 잘 알려지고 널리 인정받는 솔루션을 사용한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