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고려아연이 5800억에 인수한 회사 가봤더니 “그런 기업 없어요”

홈페이지 나온 이그니오 ‘글로벌 헤드쿼터’ 주소에 회사 없어

4개 공장 운영 ‘EvTerra’는 단순 폐기물 분쇄-재처리 시설

한국 고려아연이 5800억원을 들여 인수한 미국의 전자폐기물 재활용 업체 이그니오홀딩스의 불투명한 인수 배경이 영풍-고려아연 간 경영권 분쟁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이그니오가 뉴욕 본사라고 소개한 곳에 이그니오라는 회사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려아연의 이그니오 인수 배경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 20일 이그니오홀딩스 본사(글로벌 헤드쿼터)가 있는 뉴욕 중심가 ‘브로드웨이 140’ 빌딩을 직접 찾아가 봤다.그런데 빌딩 관리업체 관계자는 “이그니오(Igneo)요? 그런 기업 여기 없어요.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고요”라고 답했다. 이그니오 홈페이지에는 이 빌딩 50층에 이그니오홀딩스 본사 오피스가 있다고 소개돼 있다.

이 빌딩은 뉴욕증권거래소와 세계무역센터에서 도보 5분 거리로, 뉴욕 맨해튼에서도 최고 중심지에 위치해 있다.유명 건축가 고든 번샤프트가 설계해 1967년 지어진 51층 높이의 빌딩은 고려아연이 5800억원에 인수한 미국 기업의 글로벌 헤드쿼터가 들어설만한 입지와 위용을 갖추고 있었다.관리업체 직원에게 회사 홈페이지에 있는 빌딩 주소를 보여주며 재차 ‘이그니오’라는 기업이 임차인 목록에 있는지 문의했지만, 직원은 “그런 이름의 기업은 이 건물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고려아연이 5,800억원에 인수한 미국의 전자폐기물 재활용업체 이그니오홀딩스가 자사 홈페지에 본사 주소로 소개한 뉴욕 맨해튼의 '브로드웨이 140' 빌딩. (사진=이상연 기자)
고려아연이 5,800억원에 인수한 미국의 전자폐기물 재활용업체 이그니오홀딩스가 자사 홈페지에 본사 주소로 소개한 뉴욕 맨해튼의 ‘브로드웨이 140’ 빌딩. 

뉴욕 주정부의 ‘2024년 기업체 등록 정보’를 확인해 보니, 이그니오의 등록 주소지는 뉴욕시 브로드웨이에서 1시간 가량 떨어져 있는 웨스트체스트 카운티로 나와 있었다. 이 지역은 이그니오의 전신인 비철금속 트레이딩 업체 MCC가 있던 곳이다. MCC와 이그니오를 창립해 고려아연에 매각한 대니시 미르(Danish Mir) 전 이그니오 CEO의 개인 사무실이 아직 이곳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뉴욕 주정부 사이트에 따르면, 이그니오 지분 100%를 보유한 고려아연 미국 자회사 페달포인트 홀딩스의 주소가 바로 ‘브로드웨이 140’ 빌딩 50층으로 등록돼 있었다. 소셜미디어 링크드인에 따르면 페달포인트 소속 임직원은 마크 포프 CEO 1명이며, 페달포인트가 이곳으로 주소를 옮기기 전 이용했던 캘리포니아 어바인의 스펙트럼센터 빌딩 주소는 위워크(WeWork)가 제공하는 공유 오피스였다. 결국 5800억원 규모 글로벌 기업 이그니오가 ‘브로드웨이 140’ 빌딩에 회사 명의로 임차한 사무실은 찾을 수 없었다.

‘브로드웨이 140’ 빌딩의 임대를 대행하는 VTS 등 업체들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건물 50층의 일부는 책상 1~2개만 이용할 수 있는 공유 오피스로 운영되고 있다. 책상 1개를 빌릴 경우 임대료가 월 900달러(한화 120만원) 정도이며, 이런 형태의 사무실 공유는 뉴욕 월가 인근에서 흔한 형태로 알려져 있다.

본보는 이그니오 측에 이메일을 보내 정확한 본사 주소를 묻는 한편, 주정부 등록 주소와 홈페이지 주소가 다른 이유 등을 문의했지만 아직 답변을 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 측은 한국 매체들에 보낸 해명을 통해 “기사에서 거론한 주소는 이그니오의 모회사인 페달포인트의 등록주소”라며 “페달포인트와 이그니오는 오피스를 함께 사용하고 있으며 주소지의 등록은 페달포인트로 돼 있다”고 밝혔다.

또한 “해당 사무실은 연 50만달러 규모로 임대 계약이 돼 있으며 180평(6400 평방피트)의 정식 오피스”라면서 “페달포인트는 사업회사가 아닌 지주회사로 사업부문이 없는만큼 관리 직원들로 구성되며 CEO외에 총 4명의 인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이그니오 홀딩스 본사에 근무하는 인원은 15명”이라고 설명했다. 

고려아연은 2022년 미국 자회사인 페달포인트 홀딩스를 통해 이그니오 지분 100%를 약 5800억원에 인수했다. 이그니오는 당시 재활용 금속 공장을 프랑스에 갖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매출은 비철금속 트레이딩에서 발생했다. 고려아연은 이에 대해 “프랑스 공장의 인수 당시 매출은 29억원이었고, 트레이딩 매출 600여억원을 더해 총 매출 637억원이었다”고 밝혔다.

고려아연은 “매출액(637억원)의 9배 규모(약 5800억원)로 매입한 것이기 때문에 이그니오 인수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 반면, MBK와 영풍은 “트레이딩 매출에 대한 기록은 이사회나 공시자료 어디에도 공개돼 있지 않고, 트레이딩 매출을 기준으로 매입액을 산정하는 사례가 어디 있느냐”고 반박했다.

고려아연이 이그니오를 인수한 이후 매출 구조 자체도 바뀌기 시작했다.  이그니오는 자회사인 EvTerra를 통해 미국 애틀랜타와 라스베이거스, 시카고, 텍사스 등 4개 지역에 재활용 처리시설을 건설했다.

이그니오 홈페이지. 글로벌 헤드쿼터 주소(흰색 원표시) 가 뉴욕 ‘브로드웨이 140’으로 나와 있다.

이들 공장은 컴퓨터나 전자제품을 분쇄해 비철금속 재활용을 위한 중간 재료를 분리해내는 공정을 갖춘 단순 재처리 시설이다. 확인 결과 시설당 20~30명의 인력이 일하고 있으며, 기업과 재활용 업체 등에서 전자-컴퓨터 폐기물을 공급받아 분리해낸 중간재를 프랑스와 한국에 보내 구리 등 비철금속으로 소성 처리한다.

2023년 상반기 페달포인트(이그니오)는 178억원 어치 폐기물을 매입했고, 이 폐기물을 처리해 27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매출의 100%가 미국 EvTerra와 이그니오 프랑스 시설에서 발생했으며, 이그니오 인수 당시 600억원이 넘었던 트레이딩 매출은 사라졌다. 2023년 하반기 EvTerra의 4번째 시설인 텍사스 공장이 가동되면서 이그니오는 2023년 한해 매출 809억원, 손실 530억원을 기록했다.

이처럼 이그니오 매출 구조가 급격히 바뀐 점을 고려할 때 고려아연이 이그니오의 기존 기술력이나 영업망을 과대평가했다는 영풍과 MBK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영풍·MBK는 이그니오 투자에 대해 “현금을 물 쓰듯한 수상한 투자”라고 지적해왔다. 트레이딩 기반의 신생기업을 5800억원이라는 거액에 인수하지 않고서도 자체적으로 폐기물 재활용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풍과 MBK는 “고려아연이 지난 4월 역시 트레이딩 기반이지만 매출은 1조원이 넘는 미국 비철금속 기업 캐터맨을 불과 740억원에 추가 인수하면서 이그니오의 투자 실패를 상쇄하려 했다”면서 “고려아연 논리대로라면 캐터맨 인수가격은 9조원 이상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고려아연은 이그니오를 인수하면서 “전자폐기물에서 유기금속으로 제련될 수 있는 중간재를 추출하는 독자기술을 보유했다”고 평가했지만, 지난해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의 1100억원대 소성(塑性·외부의 힘을 받아 형태가 바뀐 고체가 그 힘을 없애도 본래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 성질)시설 투자를 포기한 데 대해선 “(이그니오의) 전자폐기물 처리 기술이 고려아연에 비해 떨어진다”는 사실을 들었다. 본보가 미국 특허청 검색서비스를 조사한 결과 이그니오나 EvTerra 명의로 등록된 특허 기술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고려아연은 이그니오의 무형 자산(브랜드가치, 기술력, 인적자원) 가치를 616억원으로 산정했다. 프랑스 소성시설 등의 유형자산 416억원은 제외한 수치다. 게다가 비즈니스 거래 때 ‘권리금’에 해당하는 영업권 가치가 3290억원이나 돼 2023년 외부 감사를 맡은 삼정회계법인에게서 핵심 감사사항으로 지적받기도 했다.

삼정회계법인은 2023년 연결감사보고를 통해 “이그니오의 영업권과 무형자산이 각각 3290억원과 616억원으로 중요한 금액”이라며 “경영진의 판단 및 추정이 평가에 수반되는 점을 고려해 핵심감사 사항에 포함시켰다”고 명시했다.

영풍·MBK는 “고려아연이 2022년 7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약 5800억원을 들여 이그니오를 인수했는데, 2022년 11월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것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고려아연은 7월 당시보다 더 비싼 주당 가격으로 이그니오 주식을 취득했다”며 “매출액이 불과 29억원인 회사를 6000억원 가까운 금액으로 인수,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투자를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상연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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