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대선 불복’ 사실상 묵인한 총영사관

한인회관에서 치러진 충격적 ‘반헌법적’ 행사에 보훈영사 참석

부정선거 세력들의 예고된 사고…’기계적 중립’은 사실상 동조

출입금지 장소서 또 순회영사 예정…공공서비스 공정성 실종

지난 25일 애틀랜타한인회관에서 열린 6·25전쟁 75주년 기념식.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을 기리는 자리가 한국 대선 결과와 체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불복운동 모금 홍보장’으로 변질돼 충격을 주고 있다.<본보 기사 링크>

이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애틀랜타 한인회의 정체성과 정치적 중립성, 그리고 재외공관의 책임감까지 송두리째 흔드는 중대한 사건이다.

행사 사회자는 마이크를 잡고 “지난 6월 3일 한국 대선은 중국의 간섭으로 인한 명백한 부정선거”라며, “이 불복운동을 위한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행사장 입구에는 실제로 ‘대선 불복 운동 후원금 모금함’까지 설치돼 모금이 이뤄졌다.

이런 기이한 장면이 펼쳐진 장소는 다름 아닌 지난달 대한민국 대선 재외선거 투표소로 운영됐던 바로 그 한인회관이다.

이날 행사에는 애틀랜타총영사관의 신혜경 보훈 영사도 참석했다.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하는 재외공관의 공식 외교관이 대한민국 헌정 질서를 부정하는 활동이 노골적으로 펼쳐지는 자리에 별다른 고민 없이 참석한 것에 대해 과연 정부기관의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오는 7월 3일 같은 장소에서 총영사관이 다시 순회영사 민원업무를 실시할 예정이다. 문제는 이 장소가 이홍기 씨의 조치로 인해, 상당수 한인사회 인사들과 언론인들이 출입 금지된 곳이라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재외국민을 위한 공공 서비스가 특정 인사들에게 차단된 장소에서 진행된다는 것은 총영사관이 현 상황의 부당함을 외면하고 오히려 이를 묵인하거나 방조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한인회 회칙은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이 조항은 이번 사태로 무력화됐다. 이홍기씨는 “나는 그런 내용인지 몰랐다”며 발뺌 했지만 대선 불복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모금 광고를 공식 행사에서 허용한 것 자체가 회칙 위반이며 관리책임 방기의 대표 사례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태에 대해 총영사관은 물론 일부 한인 인사들과 자칭 중립 언론들이 보여주는 태도다. 이들은 ‘중립’을 핑계로 공금 유용, 회칙 위반, 허위 회계 보고 등 이홍기 씨의 각종 의혹에 대해 침묵하거나 사실상 지지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기계적 중립은 결국 ‘무책임한 방관’이며, 정의와 책임을 요구하는 차세대들에게는 무기력하고 회피적인 기성세대로 비춰질 것이다.

무엇보다 ‘대선 불복’은 체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반헌법적 행위다. 이번 대선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무모한 계엄과 탄핵으로 치러진 것으로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이는 이홍기씨를 엄호하며 한인회관을 사실상 점유하고 있는 이른바 애국 보수단체들이 그렇게도 미워하고 비판해 온 ‘친북 좌파’조차 감히 나서지 않았던 위험한 행보다.

이제 한인사회는 더 이상 ‘기계적 중립’이라는 가면 뒤에 숨을 수 없다. “그래도 아직 한인회장이니까…”라는 소극적 인식은 변해야 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함께 판단하고 목소리를 내는 ‘집단지성’의 회복이 절실하다. 이것이야말로 한인사회가 건강한 방향으로 정상화될 수 있는 첫걸음이다.

대선 불복을 외치는 이들이 애국과 자유를 말하는 시대, 우리는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할까. 6·25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다. 그 자유의 가치를 스스로 훼손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정부기관과 한인사회가 동조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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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