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가 미국 현지에서의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V9 생산 속도를 조절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부터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혜택 요건이 엄격해짐에 따라 내년 현지 배터리 공장 완공 시점에 발맞춰 생산을 본격화한다는 구상이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IRA 폐지 검토 등으로 추가 변수가 생긴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17일 기아 판매실적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기아 조지아주 공장에서 출고된 EV9은 총 21대다. 이중 미국 현지에서 판매된 차량은 1대다.
지난 8월 10대를 시작으로 EV9이 처음 출고됐고 9월에는 11대가 판매됐다.
미국 내 EV9 월평균 판매량이 약 1800대인 점을 고려하면 조지아 공장은 아직 본격적인 EV9 생산에 착수하지 못한 상황이다.
현재 미국에서 판매되는 EV9은 모두 한국 공장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물량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기아는 작년 7월 조지아 공장에 2억 달러를 투자해 EV9 생산을 추진한다고 발표했고, 올해 3월 뉴욕국제오토쇼에선 생산 개시 시점을 5월로 못 박았다.
실제로 지난 5월 30일조지아 공장에서 EV9 생산 개시를 기념하는 행사가 북미권역본부장 윤승규 부사장 등의 참석 하에 열렸다.
이러한 생산 조절은 미국 정부가 IRA 세액공제 혜택 요건을 대폭 강화한 데 따른 것이다.
올해부터 중국산 배터리 부품을 사용하는 전기차는 보조금 대상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미국 정부가 중국에 있는 사실상 모든 기업을 외국우려기업(FEOC)으로 규정하면서다.
결국 기아가 EV9을 조지아 공장에서 생산해도 작년과 달라진 배터리 요건에 부딪히면서 당초 기대했던 IRA 보조금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됐다.
기아 관계자는 “현재 조지아 공장에서 EV9 생산이 가능하지만 (생산하더라도) 배터리 문제로 인해 최대 7500달러인 보조금의 절반밖에 받지 못한다”며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 조지아 공장이 EV9과 내연기관 차량을 하나의 라인에서 만드는 ‘혼류 생산’ 방식이라면서 “생산 라인을 한 번에 바꾸는 것보다 천천히 바꾸는 게 비용이 덜 든다”고 덧붙였다.
올해 3분기까지 조지아 공장에선 EV9을 제외하고 텔루라이드 9만6천768대, 스포티지 8만8천319대, 소렌토 8만2천455대, K5 1천337대가 출고됐다.
이에 따라 조지아 공장의 EV9 생산 본격화 시점은 현지에 짓고 있는 배터리 공장 완공 이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그룹은 SK온과 조지아주에 35기가와트시(GWh) 규모의 합작 공장을 짓고 있고 LG에너지솔루션과도 30GWh 규모의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두 공장 모두 내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트럼프 당선인의 정권인수팀이 IRA에 근거한 전기차 보조금 폐지를 계획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면서 기아의 구상에 차질이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맞물려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 현상도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점이 변수로 꼽힌다.
앞서 현대차그룹도 조지아주에 지은 전기차 전용 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서 하이브리드차를 생산하는 방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