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지부장’급 고위 요원들이 10년간 ‘인수인계’하며 관리
외교부도 대사관 통해 각종 요청…”유일한 대미 통로” 추정
FBI(연방수사국)의 수사 결과 테리는 2013년 8월 주유엔대표부에 파견된 국정원 요원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FBI에 덜미를 잡힌 2023년 6월까지 10년간 국정원으로부터 특별한 관리를 받았다.
한국 이름이 김수미인 테리는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간암으로 사망한 후 12살때 어머니와 함께 미국 하와이 이민길에 올랐다. 이후 버지니아주로 이주한 테리는 터프츠대 정치학 박사를 받은 뒤 2001년 CIA에 취업했다.
테리는 2008년까지 CIA에서 근무하며 최고의 동아시아 분석가로 명성을 날렸고, 이후 오바마 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국-일본-오세아니아 담당국장 등을 지냈다. 국정원은 공화당 정권 (조지 W. 부시)과 민주당 정권(오바마)에서 두루 일하며 한국과 일본, 오세아니아 정책을 실질적으로 담당했던 테리의 능력과 네트워크를 눈여겨 보고 포섭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검찰 기소장에 따르면 10년간 테리를 관리한 국정원 요원은 총 3명으로 테리의 표현에 따르면 ‘국정원 미국 지부장’ 급의 고위 간부다. 테리와 처음 접촉한 첫번째 요원은 2013년 6월부터 2016년까지 재직하다 귀국했고, 탄핵 정국 이후 부임한 두번째 요원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7년 8월부터 2020년 8월까지 테리를 관리했다.
이 요원은 후임으로 온 3번째 요원에게 테리를 ‘인수인계’하기 위해 2020년 8월 12일 뉴욕 맨해튼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3명이 함께 식사를 하다 증거를 채집하는 FBI 요원의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이날 테리는 전-현임 국정원 요원이 들고온 회색 선물가방을 들고 식당을 떠났다.
3번째 요원은 테리에 대한 FBI의 취조 및 압수수색이 끝난 2023년 7월까지 근무하고 귀국했다. 이 요원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테리에게 총 3만7,000여달러의 금품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았다.
국정원은 물론 한국 외교부도 테리를 거의 유일한 ‘대미 외교 통로’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2014년 6월 테리에게 돈을 주고 미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통일문제 관련 기고를 부탁했고, 2016년 12월 트럼프 당선 직후에는 백악관 국가안보실 아시아 담당 국장 내정자와의 만남 주선을 요청했다. 검찰은 이 만남을 요청한 외교부 관계자가 ‘고위급’이라고 밝혀 주미대사일 것이라는 추정을 낳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또한 지난해 4월 윤 대통령 국빈방문에 맞춘 한미동맹 70주년 기념행사 주최와 미국 및 한국 주요신문에 특별기고 게재를 부탁하기도 했다.
테리는 이때 한국 외교부가 보낸 메시지를 바탕으로 미국 주요 신문에 윤대통령이 대일본 외교 성과를 강조하는 ‘한일 화해를 위한 용감한 발걸음’이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칼럼을 읽고 테리에게 “감명을 받았고, 너무 마음에 든다”면서 “(조태용)주미대사와 (김성한)국가안보실장이 매우 기뻐했다”는 텍스트(문자)를 보냈다.
미국 정부의 시각에서는 매우 수상했던 테리의 행보는 지난해 6월 5일 FBI 수사관들이 테리의 자택을 수색해 한국 정부로부터 받았던 명품들과 테리의 휴대폰을 압수하면서 끝나게 됐다. 테리는 같은 날 실시된 FBI 조사에서 “CIA에서 그만 둔 이유도 한국 국정원과의 접촉 문제였다”면서 “해고 사유가 되지는 않아 자진 사퇴를 했다”고 답변했다.
이상연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