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채상병특검 거부 시사…공수처, 부담 커져

“봐주기 의혹 있다면 제가 먼저 특검”…납득할 성과 내놔야

특검도입 땐 ‘외압 의혹’ 수사 손떼야…공수처 존재 시험대

취임 2주년 기자회견, 질문에 답하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2주년 기자회견, 질문에 답하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9일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특별검사 도입에 앞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선(先)수사, 후(後)특검’ 입장을 밝힘에 따라 공수처가 내놓을 수사 결과에 이목이 쏠리게 됐다.

진상 규명의 열쇠를 쥔 공수처는 한층 커진 부담감 속에 수사에 속도를 붙일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이날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채상병 특검법에 관한 질문에 “지금 경찰과 공수처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고 그것이 나중에 검찰로 송치돼서 또 2차 보완 수사를 거쳐서 아마 기소될 사람들은 재판으로 넘어갈 것”이라며 “일단 믿고 더 지켜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야당이 국회에서 단독으로 통과시킨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사실상 거부권(재의 요구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밝힌 것으로 해석됐다.

공수처 입장에서는 사건을 수사할 시간을 더 벌게 된 셈이다.

이에 따라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소환 조사 등 남은 수사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수처는 지난달 말부터 차례로 소환한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의 진술 내용을 분석하는 한편 다른 사건 관련자들의 소환 시기를 조율해 왔다.

공수처는 공식적으로 정치권 움직임과 무관하게 정해진 일정대로 수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내부적으로는 특검 도입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기류가 없지 않다.

특검이 도입되면 진행 중인 수사를 중단하고 넘겨야 하는데, 이 경우 고발 8개월이 넘도록 이렇다 할 수사 성과를 내지 못한 데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취임 2주년 기자회견 갖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2주년 기자회견 갖는 윤석열 대통령

특검이 현실화하기 전에 나름대로 정리된 결론을 내놓는 것이 당면 과제인 셈이다.

다만 야권의 특검법 재의결 추진 가능성 등 불확실성이 여전한 데다, 여야가 모두 납득할 만한 수사 결과를 내놔야 한다는 점에서 공수처의 부담은 더 커졌다는 분석이다.

만약 공수처가 대통령실과 국방부의 외압 의혹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면 야권에서는 공수처의 수사 의지와 능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올 공산이 크다.

반대로 외압이 있었다는 결론을 내놓더라도 확보된 증거나 법리 적용이 미흡하다는 법원의 판단을 받을 경우 여권으로부터 ‘정치 편향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공수처는 판·검사 등이 아닌 고위 공직자의 범죄에 대해 수사권만 있고 기소권은 없기 때문에 수사 결론이 증거와 법리로 철저하게 뒷받침되지 않으면 검찰이 공수처의 공소 제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수사 결과를) 보고 만약에 국민들께서 이거는 봐주기 의혹이 있다, 납득이 안 된다고 하시면 그때는 제가 특검하자고 먼저 주장을 하겠다”고 말했다.

또 공수처가 이 전 장관을 출국금지한 데 대해 “두 번을 계속 연장하면서도 소환하지 않았다는 것은 나도 오랜 기간 이런 수사 업무를 해 왔지만, 좀 이해하기가 어렵다”며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2021년 출범 이래 수사력 미비 논란에 시달려 온 공수처가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다면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를 위해 설립된 독립 수사기관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지 못한다는 비난도 더욱 거세질 수 있다.

공수처 관계자는 이날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에 대해 “말씀드릴 만한 특별한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