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통령이 야당 의원 등과 함께한 비공개 석상에서 뚜렷한 인지력 저하 징후를 보였다고 미국 유력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5일 보도했다.
WSJ은 바이든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에 참석한 공화당과 민주당 인사, 행정부 당국자 등 45명 이상을 대상으로 수개월간 진행한 인터뷰를 근거로 작성한 기사에서 이같이 소개했다.
일례로 WSJ은 1월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안 통과를 설득하기 위해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공화당) 등 의회 요인들과 만났을 때 너무 희미하게 이야기하는 통에 알아듣기 어려웠다는 참석자들 평가를 전했다.
또 질문이 들어오면 참모에게 답변을 맡겼다고 한다.
아울러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회의실에서 여야 의원 20여 명과 인사할 때 너무 천천히 움직이는 바람에 회의 개시가 약 10분 지연됐다고 WSJ은 전했다.
이와 함께 2월 백악관 집무실에서 존슨 의장과 일대일로 회동했을 때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이 추진한 에너지 관련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기억해내지 못했다고 소식통들은 소개했다.
그리고 작년 5월 바이든 대통령이 공화당 하원 의원들과 연방정부 부채 한도를 늘리는 문제를 협상할 때도 그의 태도와 세부 사항에 대한 파악 정도가 하루하루 달랐다고 협상 당사자였던 케빈 매카시 전 하원의장이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미 논의가 끝난 부분을 다시 거론한 데 대해 매카시 당시 의장이 “그것은 지난번 만났을 때 논의했고, 결론이 났다”고 말하자 바이든 대통령이 놀란 적도 있었다는 게 매카시 전 의장의 주장이다.
매카시 전 의장은 “나는 그가 부통령이었을 때(2009∼2017년)도 만났는데 그는 (부통령 때와)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지난달 유대계 미국인 관련 행사가 백악관에서 열렸을 때 바이든 대통령은 가자지구에 억류됐던 미국인 인질이 게스트 중 포함됐다고 잘못 말했다가 정정했고, 그 하루 전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선거 유세 때는 코로나19가 확산했을 때 자신이 부통령이었다고 잘못 말했다고 한다.
코로나19는 2019년 말 중국에서 처음 확산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2017년 1월까지 부통령으로 재임했기에 명백한 착오였다.
이 같은 바이든 대통령의 인지력과 건강 저하 관련 증언은 주로 야당인 공화당 측 인사들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WSJ은 소개했다.
반면 이런 건강 관련 지적들에 대해 백악관 측은 당파성과 정치적 동기가 반영된 주장이라며 하나하나 반박하는 한편, 바이든 대통령이 명민함을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WSJ은 전했다.
앤드루 베이츠 백악관 부대변인은 “의회 공화당원들과 외국 지도자들, 당파성이 없는 국가안보 전문가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입법 분야에서 깊은 성취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식견과 능력을 갖춘 지도자임을 자신들 입으로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 하원 공화당 의원들은 정치적 전술에 따라, 자신들과 동료들이 했던 이전의 발언에 전면 배치되는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올해 81세인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선거자금 모금 행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한국 대통령’으로 잘못 말하는 등 잦은 말실수와 ‘발 헛디디기’ 등으로 건강과 인지력을 둘러싼 논란에 휩싸여왔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의 기밀문서 유출·보관 의혹을 수사한 로버트 허 전 특별검사는 지난 2월 상관인 법무장관에게 제출한 수사 결과 보고서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 재직 연도를 기억하지 못했고, 장남 보 바이든이 몇 년도에 죽었는지 떠올리지 못했다고 적시했다.
따라서 WSJ의 이번 보도는 11월 미 대선의 쟁점이 된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 문제와 그에 따른 건강 및 인지력 저하 논란에 재차 불을 지필 가능성으로 연결되며 관심을 끌었다.
다만 WSJ이 공화당과 친(親)기업 성향을 공유하는 보수매체라는 점과, 바이든 건강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이들이 주로 공화당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의 여지도 없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