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영향력 있는 시애틀 인물’ 샘 조 항만청 위원장 인터뷰
경제의 기회 제공 정책 펴는 정치인 되고파…”끝까지 가겠다”
한국인 정체성 중요…우리는 ‘아메리칸’ 아닌 ‘코리안아메리칸’
“무역에 관심있던 대학생 때는 항만청 위원장이 되리라고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어느 직장이나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할지에 집중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정치의 길로 들어섰으니 정말 끝까지 가보고 싶습니다.”
‘시애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히는 샘 조 시애틀 항만청 이사회 위원장(33)의 사무실에는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며, 바르게 행동한다(正思 正言 正行)’는 액자가 걸려있다. 직접 이 액자를 주문했다는 조 위원장은 “생각과 말과 행동이 모두 올바르게 자리 잡아야 한다는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이름이 조세현인 조 위원장이 관할하는 기관은 미국 4위의 항만인 시애틀항과 미국 10대 공항 가운데 하나인 시애틀-타코마공항(시택공항)이다. 물류 및 인적 수송 규모 자체가 엄청나고 시애틀시와 워싱턴주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도 커서 가장 중요한 경제 정책을 결정하고 각종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자리인 것이다.
◇ 바른 생각
우선 조 위원장의 생각은 사람들에게 잘 살 수 있는 경제적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에 맞춰져 있다. 2019년 29세의 나이에 정치에 도전하기로 결심한 것도 경제 정책을 지속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선출직에 당선돼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오바마 정부에서 일하고 난 뒤 정말 큰 좌절감을 느꼈다”면서 “선거로 인해 정권이 바뀌면서 그동안 추진했던 정책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것을 보고 직접 정치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 캠프에서 배운 선거전략은 정치 초년병을 역대 최연소 항만청 위원장과 첫 유색인종 위원장으로 만들었다. 그는 “시애틀의 강남에 해당하는 벨뷰 시장까지 나선 선거에서 220만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 항만청 위원에 당선됐다”면서 “브로셔와 오프라인 유세에 집중하던 경쟁 후보와는 달리 소셜미디어와 온라인을 통해 이름을 알리고 정책을 유권자의 피부에 와닿게 전달해 파란을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정치인 뿐만 아니라 한인 이민자로서의 생각도 올바르다. 그는 “주류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코리안 아메리칸’ 대신 그냥 ‘아메리칸’이라는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는데 너무 올드한 생각”이라면서 “미국은 다양성 속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곳이며 한인 커뮤니티와도 동떨어진 정치인은 다른 커뮤니티의 지지도 받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래서 조 위원장은 한인사회가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고 있다. 조 위원장은 “경제적 기회를 통해 아직도 아메리칸 드림이 유효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은 것도 꿈을 좇아 미국에 온 한인 이민자의 뿌리라는 정체성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 바른 말
시애틀 한인들과 다민족 유권자들이 조 위원장에게 내린 공통된 평가는 “말을 잘한다”는 것이다. 번지르르한 정치적 수사를 잘 구사한다는 뜻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알아야할 정치 경제적 문제에 대한 해박한 이해를 바탕으로 관련 이슈를 간단하고 알기 쉽게 설명한다는 것이다.
지난 2019년 항만청 위원에 처음 입후보할 당시에도 어려운 항만청 관련 정책과 그 경제 효과를 유권자의 입장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설명했다. 조 위원장은 취임 이후 현대자동차의 수출 물량 연 10만대를 시애틀항으로 유치했는데 이러한 유치가 시애틀시에 미치는 효과와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인 수치로 전환해 전달하는 식이다. 조 위원장이 유치한 현대차의 첫번째 수출물량은 지난주 처음으로 시애틀항에 입항해 미국 소비자에게 전달됐다.
시카고에서 태어나 시애틀에서 자란 이민 2세인 조 위원장은 한국어를 수준급으로 구사한다. 어릴 적 어머니의 ‘강요’로 다닌 한국학교 이력에 K드라마에 빠져 독학한 모국어 실력이 더해져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한인들에 다가서고 있다. 보통 바른 생각이 바른 말로 이어지는 것이 정상이지만 많은 한인 차세대 정치인들이 언어 장벽 때문에 한인사회와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조 위원장은 한인 차세대들의 정치참여 단체인 한미연합회(KAC) 워싱턴주 지회장도 맡아 또래 한인들과도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 바른 행동
부의 창출을 위한 경제적 기회를 강조하고 있는 조 위원장 이지만 항만청 위원 취임 이후부터 다양성과 환경지속성, 인신매매 금지, 최저임금 보장, 난민 보호 등의 ‘바른 일’을 가장 많이 추진한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 위원장의 주도 아래 시애틀-타코마 공항은 전체 매장 운영자의 30%를 소수계에 할당한다는 방침을 시행하고 있고, 항만과 공항 직원들에게 의무적으로 인종이나 성적 다양성 보호를 위한 교육을 실시하도록 규정했다. 그는 “아직 시택 공항 내에 한인 벤더가 입주하지 못했는데 앞으로 한인들도 공항 사업의 기회를 갖기 바란다”면서 “3월에 새로운 입찰이 진행될 예정이어서 한인 벤더 입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조 위원장의 환경지속성 전략은 한국 부산항과의 파트너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부산항과 시애틀항의 자매결연을 부활시킨 조 위원장은 부산항과 미국 북서부 항만연합 간의 ‘녹색 회랑’을 결성해 지속가능한 무역을 함께 논의한다고 밝혔다. 또한 대부분 한인과 아시안 여성들이 피해자인 인신매매 범죄 예방을 위해 출입국 직원들에게 인신매매 식별 요령 등에 대한 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조 위원장은 시애틀 시장 등이 포함된 지역 경제 사절단을 이끌고 오는 4월 서울과 부산, 대전 등을 방문해 한국-시애틀 간 경제 교류를 강화할 계획이다. 이번 방문을 통해 부산항과의 교류를 더욱 확대하고 한국 카이스트(KAIST)와 워싱턴대학교(UW) 간의 인공지능(AI) 학술 및 학생 교류, 한국 대기업과의 투자 상담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 그리고 바른 미래
정치인으로서의 꿈을 묻자 조 위원장은 “뜻하던 일을 하게 됐으니 이왕이면 끝까지 가보고 싶다”고 답했다. “끝까지라면 대통령을 의미하는 것이냐, 그렇다면 2026년 연방 하원의원부터 도전하는 것이냐”고 묻자 그는 대학생 시절 주미한국대사관에서 인턴을 할때 한 서기관이 말해준 교훈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는 “당시 그 분이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유엔에서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면서 “하지만 그 분은 ‘어느 직장에서 일하고 싶냐고 물은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고 싶냐는 질문’이라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경제학을 전공했던 조 위원장은 “그 말에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면서 “그때부터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의미있는 일에 목표를 두고 집중하면 결과는 따라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조 위원장은 “정치인으로서 어떤 자리에 오르느냐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필요한 정책을 효과적으로 수립하고 추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서 “그 목표를 위해 매진한다면 예상못한 자리를 위한 길이 자동적으로 열리리라고 믿는다”고 답했다.
시애틀=이상연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