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TA 파문] 평양갔던 이재용-최태원도 해당

외교부 “비자 발급 제한은 아냐…주한 미대사관 방문해 신청”

한국민 방북은 여권기록 안남아…정부의 정보공유 여부 관건

미국이 북한을 방문했던 사람에 대해 전자여행허가제(ESTA·에스타)를 통한 무비자 입국을 현지시간으로 5일부터 제한함에 따라 방북 유경험자들의 미국 방문에 있어 혼선과 불편함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에스타는 ‘전자 비자’로 불리는 것으로 미국의 비자면제프로그램(VWP)에 가입한 국가들에 제공되는 일종의 비자 발급 편의다.

2009년 처음 시행된 에스타는 시행 이전 모든 미국 방문 희망자들이 주한 미국 대사관을 찾아야 하는 불편함을 획기적으로 덜어준 프로그램이다. 인터넷을 통해 신청하는 방식으로 운영됐기 때문이다.

이번 미국의 조치는 지난 2017년 11월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한데 따른 후속 행정 조치다. 우리 국민만을 대상으로 한 조치가 아니라 미국의 VWP에 가입한 38개 국가의 국민들도 해당되는 조치다.

다만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남북 교류협력에 종사해 온 상당수 국민들이 이를 이유로 미국 정부의 제한 조치의 당사자가 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이번 조치의 적용을 받는 우리 국민은 약 3만 7000여 명이다.

지난 2011년 3월부터 지난해까지 북한을 왕래한 우리 국민의 대다수는 개성공단 종사자다. 지난 2010년 이명박 정부의 5.24 조치로 남북 교류협력이 전면 중단됐던 탓이다.

개성공단 종사자 외에도 이산가족 상봉에 참가한 우리 측 가족들, 금강산 관광지구 내의 우리 자산 시설에 대한 점검 등을 목적으로 한 관계자들의 방북, 북한에서 열린 정부 및 민간 교류 행사를 취재한 취재진 등도 이번 조치의 적용 대상이다.

특히 지난해 9월 남북정상회담 때 평양을 방문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마찬가지로 적용을 받아 무비자 입국이 불가능해진다.

미국의 VWP에 가입한 다른 나라의 국민들의 대부분이 관광을 위해 북한을 방북했던 사람인 것과 달리 한국의 경우 북한에 대한 관광이 아닌 특수 목적이 있는 사람들이 이번 조치의 적용 대상이 되는 만큼 이에 대한 형평성 논란 등의 이의도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조치가 방북 유경험자들에 대한 전면적인 입국 제한 조치는 아니라는 것이 외교부의 설명이다. 방북 경험자들의 경우 앞으로 에스타를 이용할 수 없을 뿐, 주한 미국 대사관을 직접 찾으면 정상적인 비자 발급 절차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불편함의 가중과 혼선은 불가피해 보인다. 지방 거주자의 비자 신청의 편의 확보나 방북 경험자에 대한 별도의 사전 고지 여부 등에 대해 외교부와 통일부 등 정부 당국은 별도의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방북 경험이 있는 우리 국민과 관련한 정보를 정부가 미국에 공유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정부는 분명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한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의 행정 조치에 대해 한국 정부가 추가로 설명할 내용은 없다”라고 말했다.

에스타의 기입란에는 미국이 지정한 테러지원국을 방문했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이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사실과 다른 답을 하더라도 에스타 내에서 이를 검증하는 장치는 없다.

또 남북관계의 특성상 방북을 해도 여권에는 기록이 남지 않는다. 정부로부터는 통일부 장관이 승인한 방북 허가증을 발행받게 되고 북측으로부터는 입국 허가증을 별도로 발급받을 뿐이다.

여권에 기록이 남지 않는 탓에 방북 경험이 있는 사람이 에스타에 사실과 다른 내용을 기입한 뒤 북한 입국과 관련한 아무런 기록이 없는 여권을 들고 미국에 입국해도 이론적으로는 이를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자연스럽게 한미 간 사전에 정보가 공유될 것이라는 추론이 제기된다. 비자 발급 과정에서 미국 측의 신원 조회 요청이 있으면 이에 대한 우리 측의 정보 공유가 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육로 방북의 경우 남북 간 접경 군사 지역을 관할하는 유엔군사령부에 관련 내용이 통지되는 만큼 미국이 유엔사를 통해 관련 정보를 입수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중국 등 제3국을 통해 방북하는 경우도 있어 유엔사를 통한 정보 공유도 모든 방북 경험자를 가려내긴 어렵다.

미국이 자체적인 정보활동을 통해 관련 정보를 보유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제3국 지역 등에서의 방북자 추적은 전면적인 모니터링이 어렵다. 미국 측에서 한국으로부터의 정보 공유를 가장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안으로 제안했을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한 정부 소식통은 “정보 공유가 없다면 방북 경험자를 100% 가려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실제 방북 경험자가 거짓말로 에스타를 통해 미국에 입국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에스타의 허점을 공표하게 되는 셈인데 미국이 이 같은 상황을 방치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