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 총격 1주년] 한인여성 겨눈 총성, 미국을 깨웠다

애틀랜타 총격 희생자들의 이야기, 여전히 ‘먹먹한’ 공감 불러

미국 사회 전반서 아시아계 목소리 높아져…전국서 추모 열기

지난해 3월 16일 애틀랜타시와 체로키카운티에서 발생한 애틀랜타 총격사건이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미국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백인 남성인 로버트 애런 롱(당시 21세)은 마사지 업소 3곳을 돌며 총격을 가해 한인 여성 4명을 포함해 총 8명을 살해했다. 자신의 성중독을 핑계로 여성들만 근무하는 곳을 노린 비열한 행위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계를 타깃으로 벌인 범죄여서 한인사회는 물론 미국 전역에 충격을 줬다.

◇ 유족과 생존자들, 여전히 트라우마 시달려

총격사건 1주년을 맞아 배니티 페어지는 희생자 유족과 생존자들을 인터뷰해 이들이 겪고 있는 사건의 후폭풍과 트라우마를 집중 조명했다. 본보는 배니티 페어와 본보 취재를 종합해 당시의 상황과 이들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애틀랜타 골드스파에서 일하다 총격을 받아 사망한 김현정씨(당시 51)의 두 아들 랜디 박과 에릭 박은 여전히 사건 당일 스파 현장에서 어머니의 시신을 확인하던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다. 랜디는 “그날 오후 5시경 어머니와 같이 일하는 강은자씨의 딸로부터 텍스트를 통해 어머니의 피격사실을 들었다”면서 “인근 중식당에서 일하는 동생 에릭을 픽업해 골드스파로 향했는데 에릭은 가는 도중 계속 울음을 터뜨렸다”고 회상했다.

한국 경주에서 태어나 동국대를 졸업한 뒤 중학교 교사로 근무했던 김씨는 남편과 결혼 후 백화점에서 스시 식당을 운영했지만 지난 1997년 IMF 사태로 식당이 폐업하자 미국 이민을 택했다. 남편과 이혼 후 2008년 두 아들과 함께 조지아주로 이주한 김씨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스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랜디는 “어머니는 사건 직전 ‘곧 10만달러의 곗돈을 탈 것’이라고 들떠있었지만 사망 후 어머니 계좌에 남은 돈은 200달러에 불과했다”면서 “어머니가 백인들만 있는 묘지에 가면 불편할 것 같아 한인들이 많이 묻혀 있는 묘지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같은 스파에서 희생된 박순정씨의 남편 이광호씨는 총격 사건 당시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택시 운전을 하며 골드스파의 일을 도와주던 이씨는 16일 오후 강은자씨를 집으로 데려다 주기 위해 스파로 향하고 있었다.

스파로 차를 몰고 가던 도중 강은자씨가 텍스트를 통해 “스파에 강도가 들었고 박순정씨가 기절했다”고 알려왔다.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이씨는 아내 박씨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목격했고 이후 경찰들이 스파 안으로 들이닥쳤다. 범인 롱은 문을 열어준 김순자씨를 가장 먼저 살해한 뒤 부엌에서 나오던 박씨에게 총구를 겨눴고 이어 김현정씨에 총격을 가했다.

이어 이씨를 기다리던 강은자씨와 낮잠을 자던 이은지씨가 있는 방에서도 총격이 발생했다. 총소리에 놀라 문을 열고 바깥을 살피려던 강씨에게 롱이 다가왔고 강씨는 이불 밑에, 이씨는 방안에 있던 커다란 상자 뒤에 몸을 숨겼다. 롱은 이불 밑에 숨어있던 강씨에게 2발의 총격을 가했지만 다행히 총알은 강씨를 비껴갔다. 총격에서 생존한 강씨와 이씨는 이후 총격 트라우마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또다른 업소인 아로마테라피 스파에서 일하다 변을 당한 유영애씨의 차남인 로버트 피터슨은 지난 13일 브룩헤이븐시 블랙번 공원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열린 총격 1주년 추모집회에 참석해 “그저 가족을 위해 일하기 원했던 어머니가 희생당했다”면서 “우리 형제가 가장 어머니를 필요로 한 시기에 이런 비극이 발생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열차표 판매원으로 일했던 유씨는 지난 1976년 한국에서 근무중이던 미군 남편 맥 피터슨을 만나 결혼한 뒤 미국에 왔고 1978년 조지아주 포트베닝으로 이주했다. 1984년 남편과 이혼 후 두 아들을 돌보던 유씨는 결국 1987년 남편에게 양육권을 넘겨줬지만 10년 후 스파에서 일하며 아들들을 다시 키우게 됐다. 2020년말 아로마테라피 스파에서 일하기 시작한 유씨는 사건 당일 롱에게 업소 문을 열어주다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

◇ 혐오범죄 규탄 넘어 아시아계 목소리 높아져

사건 발생 이후 애틀랜타를 비롯한 미국 전역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증한 아시아계 대상 혐오범죄를 규탄하는 집회가 이어졌다. 팬데믹의 좌절과 분노를 아시아계에 쏟아내는 분위기 속에서 이같은 사건이 발생해 경각심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총격사건의 영향으로 연방의회에서 아시아계 혐오범죄 근절 결의안이 속속 채택됐고 전국적으로 혐오범죄 근절을 촉구하는 캠페인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아시아계 대상의 혐오범죄는 이어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뉴욕의 한인 여성이 노숙자에게 피습당해 숨지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3.16 애틀랜타 총격사건은 혐오범죄 규탄 캠페인을 넘어 미국 내 아시아계 및 이민자 커뮤니티를 각성시키는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사건 직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애틀랜타를 직접 방문해 아시아계 지도자들과 회의를 열고 대책을 마련했고, 의회 차원에서도 다양한 논의가 시작됐다.

특히 이 사건 이후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역사를 공립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주류 언론들도 아시아계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게 됐다. 애틀랜타 인터넷 언론인 캐노피 애틀랜타 대표인 소남 바시는 “애틀랜타 총격사건으로 인해 이민자 특히 아시아계 커뮤니티를 다루는 메인스트림 언론의 문제점이 그대로 노출됐다”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 언론사가 아시아계 저널리스트를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있으며 각종 기금이 아시아계 언론을 지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총격사건 1주년을 맞아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집회가 연이어 개최될 예정이다. 16일 오낮 12시 애틀랜타 다운타운의 조지아 레일로드 프라이트 디포에서 아시아계 대상 증오 및 폭력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리고, 오후 6시 노크로스 애틀랜타한인회관에서는 한인비상대책위(위원장 김백규) 주최로 희생자 추모 집회가 개최된다. 이어 23일 오후 5시 넬슨멀린스 로펌에서 조지아아태변호사협회(GAPABA) 주최로 관련 기금 마련 추모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상연 대표기자

골드스파/Atlanta K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