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패닉의 침공’은 애초부터 없었다

 

멕시코령이었다가 분리독립한 후 미국에 합병

1820년대 전까지 히스패닉계 주민이 다수 차지

 

미국 텍사스주 엘패소 총격범이 ‘히스패닉의 침공’을 저지하겠다며 총을 들고 22명을 살해하고 26명을 다치게 했지만 정작 텍사스주 지역 역사를 보면 오히려 멕시코 땅에 미국인이 들어와 산 것이 사실이라고 5일 워싱턴포스트(WP)가 전했다.

엘패소 총기 난사사건 범인 패트릭 크루셔스(21)는 사건 전날 밤 백인우월주의 온라인 사이트 ‘에잇챈'(8chan)에 “이민자들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미국 문화를 망가뜨리고 있다”며 4페이지 분량의 글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텍사스주는 애초 라틴계 아메리카인이 살던 멕시코령이었다. 1820년대 백인 미국인들이 이주해오기 전까지 텍사스 지역에는 이미 라틴계 백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 혼혈을 뜻하는 메스티소·크리오요 멕시코인들이 정착해 있었다.

앞서 16세기 스페인 등 라틴계 유럽 이주민들이 중앙아메리카에 들어오면서 텍사스주에 먼저 발을 디뎠다. 이들은 카란카와, 카도, 아파치, 코만치 등 토착민 부족과 함께 섞이며 독특한 텍사스 문화를 형성해 나갔다. 텍사스라는 이름도 카도족 원주민 언어로 ‘친구’ 또는 ‘동맹’을 뜻하는 ‘테이샤'(taysha)에서 비롯됐다.

1821년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을 무렵 텍사스주에는 ‘테야노스’라고 불리는 3300명의 멕시코인들이 살고 있었다. 당시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갈등을 빚고 있었던 멕시코는 영국계 미국인들의 이주를 적극 받아들여 텍사스 지역에 대한 지배를 공고히 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1824년부터 남부지역 미국인 수천 명이 흑인 노예들을 데리고 텍사스 지역으로 물밀듯이 밀려 들어왔다. 이들은 스스로를 멕시코인이 아닌 ‘텍사스인'(Texian)이라 자처했고, 금세 테야노스를 압도할 정도로 수가 증가했다.

1830년 위협을 느낀 멕시코 정부는 미국인 이민을 금지하고 멕시코 군대를 텍사스로 보내 당시 불법이었던 노예제를 단속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1835년까지 미국인들은 텍사스로 계속 이주해왔고, 멕시코에 대한 반란 움직임까지 보였다.

결국 1836년 3월2일 텍사스 주민들은 멕시코로부터 분리 독립을 선언하고 텍사스 공화국을 세웠다. 텍사스 공화국은 지금의 텍사스주 중앙과 동부 지역만 관할했지만 멕시코와 전쟁을 거치며 텍사스주 지역 전체와 뉴멕시코, 오클라호마, 콜로라도주 일부까지 점령했다.

1845년 텍사스 공화국은 미국에 병합돼 미국의 28번째 주가 됐다. 이 과정에서 테야노스는 (미국계) 텍사스인과 함께 멕시코에 대해 독립 전쟁을 벌였으며 미국 병합 후에도 텍사스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했다.

WP는 최근 텍사스주에서 히스패닉계 주민이 급증한 것은 사실이라며 이는 경기가 활성화되면서 국내외에서 동시에 이주민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14년 퓨리서치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텍사스주 히스패닉계 주민의 70%는 미국 태생인 것으로 나타났다.

텍사스주 역사는 텍사스 학생들에겐 의무교육 과목이다. 즉 총격 사건을 일으킨 크루셔스 역시 텍사스주 역사에 대해 배웠을 것이라고 짐작 가능하다.

텍사스주에서 오랫동안 교사 생활을 해온 콜레트 슈타이거는 “텍사스 학생들은 4학년과 7학년 때 히스패닉, 특히 멕시코인들이 텍사스주 역사에서 어마어마한 부분을 차지해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며 “다문화적인 텍사스주 역사는 30년이 넘도록 학생들에게 전수돼 왔다”고 말했다.

텍사스 혁명 <밥 블록 텍사스 역사 박물관 페이스북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