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콥터가 아니라 전략폭격기로 현금 살포”

연준 “유동성 무제한 공급”…중앙은행 정의 다시 써야할 판

미국의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전염병 위기 속에서 완전 새로운 대응교본을 작성하고 있다. 연준은 기존의 양적완화(QE) 규모의 한도를 없애고 무제한 돈풀기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여기에 금융기관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수준을 넘어 실물경제에 직접 대출을 해주는 프로그램을 도입한다. 기존의 금융위기 대응교본을 넘어서 중앙은행의 정의를 새로 쓰는 순간이다.

◇ 무제한 양적완화…회사채, ETF까지 매입

연준은 23일 성명을 내고 기존의 7000억달러로 제한했던 양적완화 규모를 무제한으로 늘렸다. 양적완화는 “경제과 금융시장 전반에 통화정책이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시장 기능을 원활하게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만큼”으로 변경된다고 연준은 밝혔다.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매입하는 양적완화의 규모가 필요한 만큼 무제한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미국의 금융시장과 경제가 코로나에 대응하기 위해 돈을 무제한으로 찍어내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얘기다.

채권매입 대상도 확대됐다. 기업어음(CP) 뿐 아니라 투자적격 등급의 회사채와 상장지수펀드(ETF)도 처음으로 사들인다. 금융위기에도 회사채 매입은 없었다. 코로나로 유동성 경색에 시달리는 기업에 사실상 직접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에 가동됐던 ‘자산담보부증권 대출 기구'(TALF·Term Asset-Backed Securities Loan Facility)도 다시 설치된다. 신용도가 높은 개인 소비자들을 지원하는 기구다. TALF는 학자금 대출, 자동차 대출, 신용카드 대출, 중소기업청(SBA) 보증부대출 등을 자산으로 발행된 유동화증권(ABS)을 매입한다.

◇ “헬리콥터가 아니라 전략폭격기로 돈 뿌린다”

더 이례적 조치는 재무부와 더불어 개인 및 중소 기업에도 대출프로그램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가계, 중소기업, 주요 고용주들, 지방정부에 대한 전례 없는 규모의 대출 지원에 나선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연준의 대출 지원에는 학자금 대출, 신용카드 대출,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 보증 대출 지원 등 신규 프로그램이 포함돼 있다.

이러한 조치에 대해 로이터는 시장에 남은 마지막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라는 연준의 역할의 범위가 금융경제에서 실물경제로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주식, 채권, 원자재를 막론하고 모든 자산시장에 매도자만 남아도 연준은 마지막 매수자로 매도자들에게 달러 현금을 손에 쥐어 주는 것이다.

연준이 재무부와 공동으로 이러한 대출을 실행하면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과 개인, 지방정부까지 새로운 돈줄이 생기는 것이라고 로이터는 설명했다. 전대 미문의 상황에 연준은 이제 미국의 최고 채권사령관(creditor in chief)이 됐다고 로이터는 표현했다.

정책분석업체 페더럴파이낸셜의 캐런 페트로우 파트너는 “헬리콥터머니 수준을 넘어섰다”며 “연준은 이제 B1전략폭격기에 올라 타서 절박한 경제 주체들에게 수 십억 달러를 떨어 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특정 목적을 위해 한정된 계층에게 선별적,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시지역에서 헬리콥터보다 더 강력한 전략폭격기로 현금을 무차별 보급한다는 얘기다.

파월 의장(오른쪽)/White 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