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맛] 안 먹곤 못 배기지! 겨울 동해 바다의 맛

경북 영덕의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영덕 강구항의 대게(왼쪽부터), 울진 후포항의 붉은 대게, 포항 구룡포의 과메기, 동해 묵호항의 곰치국을 나열했다. [사진/진성철 기자]

경북 영덕의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영덕 강구항의 대게(왼쪽부터), 울진 후포항의 붉은 대게, 포항 구룡포의 과메기, 동해 묵호항의 곰치국을 나열했다. [사진/진성철 기자]

 

푸른 바다가 선사하는 진미와 별미를 찾아 겨울날 동해를 따라 길을 오르내렸다.

담백하고 달짝지근한 맛, 비릿하고 구수한 맛, 시원하고 깔끔한 맛을 만나니 동해 바다가 입안 가득 출렁이는 듯했다.

◇ 영덕 강구항의 ‘영덕 대게’

영덕 대게 요리 [사진/진성철 기자]

영덕 대게 요리

 

“음~ 음~. 담백하고 부드럽네, 살짝 단 것 같기도 하고.” 너무 맛있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게 되는 대게다.

겨울철 동해의 진미를 고르자니 첫 번째로 영덕 대게가 생각났다. 대게는 큰 게란 뜻이 아니라 다리가 대나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참고로 소라게의 일종인 킹크랩은 다리가 8개, 게 종류는 10개다.

영덕 강구항 저녁 풍경 [사진/진성철 기자]

영덕 강구항 저녁 풍경

 

강릉역에서 차를 빌렸다. 포항 방면으로 7번 국도를 달려 저녁 무렵 경북 영덕의 강구항에 도착했다. 영덕의 오십천이 동해로 빠져나가는 강어귀에 자리한 강구항은 대게 덕분에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강구항의 영덕대게 거리에는 대게 전문 식당들이 즐비했다. 식당의 수족관에는 튼실해 보이는 대게들이 으스대듯 집게발에 ‘영덕’이란 녹색 완장을 차고 있다.

'박달 타이'를 찬 영덕 대게 [사진/진성철 기자]

‘박달 타이’를 찬 영덕 대게

 

이 완장은 강구 근해 자망 선주협회가 대게를 감별한 뒤 집게발에 채워주는 ‘박달 타이’라고 했다. 색깔은 매해 대게 철마다 바뀐다. 게 껍데기 안에 살이 찬 정도를 말하는 살수율이 80~90% 이상인 속칭 ‘박달 대게’란 등급 표시다.

영덕대게 전문점 죽도산의 대게 한상차림 [사진/진성철 기자]

영덕대게 전문점 죽도산의 대게 한상차림

 

동해의 깊은 바다에서 서식하는 대게는 보통 쪄서 먹는다. 전문 식당에서는 대게를 회, 치즈구이, 게장 볶음밥으로도 맛볼 수 있다.

식당 직원이 수족관에서 꺼낸 영덕 대게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진성철 기자]

식당 직원이 수족관에서 꺼낸 영덕 대게를 보여주고 있다.

 

40년 가까이 된 한 영덕 대게 전문식당의 수족관에서 박달 타이를 찬 녀석을 고른 뒤 2층 좌석에 앉았다. 20~25분가량 대게를 찌는 동안 먼저 준비된 대게 회와 치즈구이를 먹었다.

대게 회 [사진/진성철 기자]

대게 회

 

대게 회는 날 것의 다리 살을 차가운 물에 담가 나왔다. 살이 갈래갈래 벌어져 있었는데 직원은 “살에 꽃이 폈다”고 얘기했다. 양념 없이 한 입 베어 무니 심심한 무맛 같았다.

황색과 녹색의 게장이 크림처럼 묻어있는 몸통 살 [사진/진성철 기자]

황색과 녹색의 게장이 크림처럼 묻어있는 몸통 살

살이 꽉 찬 집게발 [사진/진성철 기자]

살이 꽉 찬 집게발

게장 볶음밥 [사진/진성철 기자]

게장 볶음밥

 

껍데기가 주황색으로 잘 익은 대게는 먹기 편하게 손질돼 나왔다. 집게발과 다리의 살은 통통하고 탱탱했다. 몸통의 흰 살에는 황색과 녹색의 게장이 크림처럼 묻어 있었다. 몸통을 덥석 물자 입안이 씁쓸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과 향으로 가득 채워졌다.

강구항 영덕대게 거리에 있는 전문식당들 [사진/진성철 기자]

강구항 영덕대게 거리에 있는 전문식당들

 

수십 개의 전문 식당이 있는 영덕 강구항에서도 대게는 다른 음식에 비해 비싸다. 강구수협에 문의하니 경매 가격 자체가 높았다. 강구항 위판장에서 박달 대게는 마리당 경매가가 12만~14만 원 정도라고 했다. 최고가는 19만 5천 원에 달했다.

대게 철은 11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다. 가장 맛있는 시기는 3~4월이라고 한다.

◇ 울진 후포항의 ‘붉은 대게’

후포항 위판장에서 사람들이 경매를 위해 붉은 대게를 펼쳐 놓고 있다. [사진/진성철 기자]

후포항 위판장에서 사람들이 경매를 위해 붉은 대게를 펼쳐 놓고 있다.

 

울진 후포항에서는 홍게로도 부르는 ‘붉은 대게’가 대세다.

살이 꽉 찬 붉은 대게의 맛은 대게에 견줄 만하다. 그래도 영덕 대게 상인들은 “영덕 대게는 달고 담백하지만 붉은 대게는 살짝 짜서 먹고 나면 물이 당긴다”고 비교했다.

후포항 대게 전문 식당에서 최상품 붉은 대게의 시세는 8만~9만 원 정도였다. 영덕 대게에 비하면 반값도 안 되는 셈이다. 중간 크기는 3만 원에서 3만 5천 원가량이다.

후포항 대게 전문점에서 상인이 붉은 대게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진성철 기자]

후포항 대게 전문점에서 상인이 붉은 대게를 보여주고 있다.

 

한 식당 직원이 붉은 대게를 뒤집어 살이 하얗게 찬 배를 보여주었다. 배 안이 검게 보이면 살이 덜 찬 거라고 알려주었다. 큰 붉은 대게 한 마리를 쪄서 택배로 집에 보냈더니 다음 날 중학생 아들이 “대게가 되게 맛있네요”라며 장난기 섞인 문자를 보냈다.

붉은 대게 입찰가를 적고 있는 중개인 [사진/진성철 기자]

붉은 대게 입찰가를 적고 있는 중개인

 

후포항 위판장에서는 대게 철에 경매가 한주에 2~3번 정도 활발히 진행된다. 전국에서 상인들이 후포항으로 몰려온다. 살수율이 높지 않은 붉은 대게, 속칭 물게는 광주리 채 판매하기도 하지만 품질 좋은 붉은 대게는 마리당 경매를 한다. 중개인들은 손바닥만 한 접이식 칠판에 가격을 써서 경매사에게 슬쩍 보여주며 입찰에 응했다.

후포항에서 만난 한 붉은 대게 잡이 배의 선장은 “30시간을 달려 러시아 근해까지 갔다. 8일 동안 나가 있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래도 배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붉은 대게를 보며 흐뭇해 했다.

후포항 등기산 등대공원의 독일 브레머하펜 등대 모형 [사진/진성철 기자]

후포항 등기산 등대공원의 독일 브레머하펜 등대 모형

 

◇ 포항 구룡포의 ‘과메기’

꽁치 과메기 [사진/진성철 기자]

꽁치 과메기

 

비릿하지만 쫀득하면서도 구수한 맛의 과메기는 겨울철 별미다.

‘청어의 눈을 꼬챙이로 꿰어 말렸다’는 뜻의 관목청어(貫目靑魚)에서 과메기란 말이 유래했다. 구룡포에서는 ‘목’을 사투리로 ‘메기’라고 했다. 그래서 ‘관목’을 ‘관메기’로 부르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발음하기 쉬운 ‘과메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요즘은 청어의 눈을 꿰어 말리지는 않는다.

구룡포항 [사진/진성철 기자]

구룡포항

 

과메기가 말라가는 풍경이 궁금해 포항 구룡포를 찾아갔다. 구룡포에는 수십 개의 덕장이 흩어져 있다. 덕장에서는 직접 과메기를 살 수도 있고, 택배 주문을 할 수도 있다.

덕장에서 말라가는 청어 과메기. 몸통 끝에 기름이 방울져 있다. [사진/진성철 기자]

덕장에서 말라가는 청어 과메기. 몸통 끝에 기름이 방울져 있다.

 

덕장 마당에는 접을 떠 내장과 뼈, 머리를 없애고 통통한 살만 남은 청어 과메기가 건조대에 꼬리를 걸친 채 말라가고 있었다. 청어의 몸통 끝에는 기름이 방울져 맺혔다. 또 다른 건조대엔 꽁치 과메기도 가득했다.

덕장 주인 최호등 씨는 이번 겨울철에는 동해안에서 청어가 제법 잡혔다고 했다. 꽁치는 잘 나지 않아 한국, 대만 어선들이 북태평양까지 나가 잡아 온다고 했다. 청어는 크고 살이 두툼해 5일 동안, 꽁치는 3일을 말린다고 최 씨는 설명했다. 그는 “꽁치와 청어는 기름의 성질이 다른데 꽁치가 청어와 비교해 덜 비리고 쫀득한 반면 청어는 담백하다”고 덧붙였다.

영덕 해안도로에서 말라가는 청어 통과메기 [사진/진성철 기자]

영덕 해안도로에서 말라가는 청어 통과메기

 

꽁치나 청어를 특별한 손질 없이 줄에 엮어 말린 통과메기도 구룡포에서는 구할 수 있다. 통과메기는 꾸덕꾸덕 잘 마른 녀석부터 차례대로 골라 김치에 둘둘 말아 먹는다고 구룡포항의 과메기 상인이 알려주었다.

덕장 건물 안에서는 전국에서 택배로 주문받은 과메기를 포장하느라 바빴다. 아이스박스에는 과메기, 배추, 해초, 초고추장, 마른 김이 차례로 담겼다.

과메기 철은 11월에 시작되고, 12월에 제일 많이 찾는다고 최 씨는 말했다.

한입에 먹기 좋게 배추, 다시마, 굴과 함께 쌈을 싼 꽁치 과메기 [사진/진성철 기자]

한입에 먹기 좋게 배추, 다시마, 굴과 함께 쌈을 싼 꽁치 과메기

 

◇ 동해 묵호항 ‘곰치국’

강원도 겨울 한철 향토 음식 '곰치국' [사진/진성철 기자]

강원도 겨울 한철 향토 음식 ‘곰치국’

 

“의외로 시원하네” “깔끔해! 국물이” 묵호항 인근에 있는 ‘곰치국’ 전문식당에서 한 부부가 나누던 대화다.

경북 울진을 지나 강원 삼척에 도착하니 식당에 ‘곰치국’ 메뉴가 보였다. 곰치국은 강원도 갯마을의 겨울 한철 향토 음식이다. 삼척, 동해, 강릉, 속초 등을 다니다 보면 곰치국 전문식당도 있고 곰치국을 하는 식당들도 있다. 삼척의 식당에서 곰치 경매를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으니 동해 묵호항으로 가라고 했다.

묵호항에서 어부들이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사진/진성철 기자]

묵호항에서 어부들이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아침 8시 무렵 묵호항 위판장에 들렀다. 가자미, 도치, 골뱅이, 대구 등이 보였고 괴상한 생김새의 큰 물고기인 곰치도 10마리 정도 보였다. 짙은 흑갈색의 숫곰치 한 마리는 머리가 두 주먹을 합친 것만 했고, 몸집도 우람했다. 녀석은 이날 경매에서 26만 5천 원에 팔렸다.

묵호항 위판장에 나온 흑갈색 숫곰치. 26만 5천 원에 팔렸다. 곰치의 정식 명칭은 미거지다. [사진/진성철 기자]

묵호항 위판장에 나온 흑갈색 숫곰치. 26만 5천 원에 팔렸다. 곰치의 정식 명칭은 미거지다.

 

묵호 수협 직원은 “지난해는 곰치가 많았지만, 올해는 어선 30척이 나가서 5마리 잡힐 정도로 귀하다”고 말했다. 또 곰치국은 겨울철에만 주로 먹다 보니 여름에 잡힌 곰치는 1~2만 원에 불과하다고 했다. 곰치국 메뉴가 있는 식당의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올해는 곰치가 너무 비싸 곰치국 안 해요”라고 대답했다.

곰치국이 궁금해 전문식당에 갔다. 곰치국이 해장에 좋기로 소문난 탓인지 오전에도 관광객이 제법 있었다.

묵은김치를 숭숭 썰어 넣은 뻘건 국물의 곰치국이 나왔다. 곰치국은 냄비에 물과 묵은김치를 넣고 끓이다가 곰치 토막을 넣어 다시 한번 끓여 낸다고 한다. 속초 등지에서는 맑은 국물로 먹기도 한다.

기름기가 적은 국물이 시원했다. 숟가락으로 국을 들추니 곰치의 뼈 주위에 감긴 투명하면서도 흐물흐물한 것이 보였다. 속칭 물살인 곰치의 살이다. 비위가 약한 사람이라면 먹기 꺼려질 수도 있다. 줄줄 흘러내리는 살을 입으로 가져가 후루룩 빨아들였다. 담백했다.

묵호항 위판장 경매에서 낙찰된 곰치 [사진/진성철 기자]

묵호항 위판장 경매에서 낙찰된 곰치

 

동해안 주민들이 흔히 곰치 또는 물곰이라고 부르는 생선은 쏨뱅이목 꼼칫과의 바닷물고기다. 국립수산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일명 ‘곰치’는 동해 특산종으로 정식 이름은 ‘미거지’다. 사촌지간인 물메기의 명칭은 꼼치로 우리나라 전 연안에서 난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뱀장어목 곰칫과의 곰치가 아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면 곰치국과 물메기탕을 같은 음식으로 설명해 둔 글이 있다. 하지만 묵호 수협 직원도, 통영 수협 직원도 곰치와 물메기는 비슷하게 생겨 구분하기 힘들지만 같은 생선이 아니고 맛도 다르다고 거듭 확인해 주었다.

영덕 해안도로에 있는 오징어 덕장에서 고양이가 오징어를 탐내고 있다. [사진/진성철 기자]

영덕 해안도로에 있는 오징어 덕장에서 고양이가 오징어를 탐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