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에 ‘망연자실’…삼성 당분간 ‘비상경영’

대법원, 29일 ‘국정농단’ 상고심에서 파기환송 결정

반도체 불황·일본 수출규제 위기 ‘리더십 공백’ 우려

대법원이 2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연루된 ‘국정농단’ 상고심에서 ‘파기환송’ 결정을 내리자 삼성 측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재차 리더십 부재 리스크에 사로잡힐까 우려하고 있다.

파기환송 결정으로 즉각 이 부회장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2018년 2월 2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이 나온 이후 1년 6개월간 이어져온 국정농단 사건의 결론이 미뤄지며 대내외 불확실성이 높아져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대법정에서 열린 국정농단 상고심에서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형을 내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2심과 달리 이 부회장이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에게 지원한 말 3마리가 뇌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삼성전자 측은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그간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드려 대단히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기업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갈수록 불확실성이 커지는 경제상황 속에서 삼성이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성원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해 2월 열린 이 부회장의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삼성 측이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제공한 말 3마리의 소유권이 삼성에 있어 ‘말 구입비’ 자체가 아닌 사용과 관련된 용역대금 36억여원만 뇌물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또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여원도 뇌물에 해당되지 않고 재산국외도피죄와 관련해서도 무죄로 판결한 바 있다.

그러나 이날 상고심에서 사건이 파기환송되면서 이 부회장은 또 다시 재판을 받을 처지에 놓였다. 통상적으로 파기환송 직후 서울고법에서 재판이 수개월 내에 열리는 것을 감안하면 올해 안으로 파기환송심에 다시 나서야 하는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일 충남 아산의 삼성전자 온양캠퍼스를 방문해 현장경영에 나섰다. 사진 왼쪽부터 백홍주 TSP총괄 부사장, 김기남 DS부문 대표이사 부회장, 이재용 부회장, 진교영 메모리사업부장 사장, 정은승 파운드리사업부장 사장, 강인엽 시스템LSI사업부장 사장.(삼성전자 제공)

파기환송심의 결과에 따라 이 부회장이나 특검 측이 재상고하면 대법원의 판단을 다시 기다려야 해서 수년간 이 부회장과 삼성전자의 리스크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길게는 1년 이상 또 다시 재판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차질은 불가피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당장 이 부회장은 이달부터 본격화하고 있는 현장경영을 예정대로 소화할 예정으로 알려졌지만, 운신의 폭이 예전처럼 넓어지긴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재계에선 현재 삼성전자 안팎의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으로 ‘총수 리스크’를 계속해서 안고 가야 한다는 점이 가장 우려되는 요소로 꼽힌다. 반도체 실적 둔화와 일본발 수출규제 등 산적한 문제들로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한 삼성전자의 위기가 계속해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까지 메모리 초호황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냈던 삼성전자는 올들어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주력 사업의 실적 둔화로 신음하고 있다. 올 상반기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은 7조52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67.5% 감소했다.

삼성전자가 직접 관리할 수가 없는 거시적 글로벌 이슈도 산적하다. 미중 무역분쟁이 여전히 유효한 가운데, 반도체 경유 수출지인 홍콩의 시위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삼성전자의 글로벌 해외 거래선에 영향이 미칠 가능성도 제기된다.

무엇보다 지난 7월부터 일본 정부가 시행중인 한국에 대한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 및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우대국)’ 배제에 따른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 부회장은 지난 7월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가 발표된 직후 즉각 도쿄로 날아가 현장에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주말에도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등 주요 계열사 사장단과 경영점검회의를 열며 사실상 ‘비상경영 체제’인 삼성의 위기 극복에 주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이미 이사회 투명성 제고와 실력을 갖춘 전문경영인 체제를 갖추고 있어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하지만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핵심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수조원대 대규모 투자와 새로운 먹거리 발굴을 위한 인수합병(M&A) 등의 의사결정 과정에선 총수의 ‘의중’이 핵심으로 작용한다. 삼성전자 입장에선 이 부회장이 또 다시 재판 이슈로 경영활동에 제약이 생길 경우 부담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가 대내외의 수많은 악재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또 다시 리더십 공백을 걱정해야 하는 사태에 놓였다”면서 “국가 경제 위기에서 대기업의 경영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