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역사는 역사학자들의 몫입니다

친일파논쟁에 부쳐

구대열

요즘 친일파 논쟁이 한창입니다.
정부가 앞장서고 특히 교수 출신으로 정부의 대변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분이 이 논쟁에 기름을 붙고 부채질을 하고 있군요. 이 정부에 이념을 제공하는 인물은 아닌 것 같은데 말입니다.

만약 그가 이데올로그(ideologue)라면 사회과학의 기본지식은 갖추었을 것이며 따라서 이렇게 거칠고 정교하지 못한 논리를 내놓지는 않았겠지요. 또 정부가 할 일과 시민사회가 담당할 몫을 구분할 줄도 알았겠지요.

사회과학적 분석에서 범위(boundary)를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도 논의를 일제시대로 한정합시다. 그렇지 않으면 신라, 고려시대 왜구의 침략이나 임진왜란까지 올라가게 될 터이니까요.

사회는 윗분이 생각하듯이 일도양단할 만큼 단순하지 않습니다. 아인슈타인이 말 한대로 원자의 세계보다 더 복잡하지요. 그만큼 분석이 어렵다는 말입니다.

일제시대 우리 인구를 대략 3,000만으로 잡읍시다. 그 1%는 30만 이지요. 그러면 항일 투쟁에 나선 애국적 투사들이 국민의 1%인 30만이 될까요? 국가 보훈처가 수십 년 동안 노력하여 발굴한 항일투쟁 유공자는 일제시대 이전부터, 윗분이 부른 죽창가(竹槍歌) 시대부터, 즉 의병운동부터 시작해도 1만 5천이 안됩니다.

그렇다면 일제시대 ”덴노헤이카 반자이“를 부르면서 친일한 인물들은 역시 국민의1%인 30만이 되나요? 해방 후 반민특위에 불려간 인사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는 법학교수 출신 사회운동가인 분이 잘 아실 겁니다.

대부분 사람들, 국민들의 99.9%는 정치에 별다른 관심 없이 살아갔습니다. 소위 정치적 회색지대(grey zone)에서 하루하루 지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들을 두고 ‘반일이 아니면 친일분자’라고 외치는 분이 교수 출신인가요? 아니면 정치선동가인가요? 유대인에게 덤터기를 씌운 나치의 선전상 게펠스도 처음엔 이보다 정제된 논리로 국민들을 선동했습니다.

사회를 하나의 연속선(continuum)에 놓고 왼쪽 끝을 친일, 그 반대편을 반일로 설정합시다. 그 중간에 중립을 두면 그 좌우에 얼마나 많은 색깔이나 다양한 정향이 있는 줄 아십니까? 또 인간은 이기적 필요에 따라 친일과 반일을 쉽게 넘나들 수 있습니다. 이들을 반일이 아니면 친일로 양분하다니요. 흑백논리는 명쾌하고 시원하지요. 사회를 그런 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친일-반일 분류는 야당에서 말하는 편 가르기 이전에 학자로서의 자질을 스스로 폭로한 겁니다.

그 다음, 정부가 왜 역사문제에 매달리나요? 정부가 풀어야 할 긴박한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역사문제가 필요하나요? 주변국들과의 갈등을 축소하면서 당면문제를 처리하는 것이 정부의 임무이죠. 정부는 당면 과제를 포괄적인 안목으로 접근하여 경중과 완급을 조절하고 유연성을 발휘하여 요즘 잘 쓰는’정무적 판단’을 해야지요.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었다’는 대통령의 화려한 선언이 김정은의 미사일과 협박 한마디에 날아가는 게 오늘의 상황 아닌가요?

‘정의는 힘’이란 말이 있습니다. 윤리, 도덕을 앞세운 정의는 힘 앞에는 무력하다는 걸 우리의 역사는 수없이 보여줍니다. 구한말 위정척사파들의 기개가 나라를 구했나요? 개인에게 힘이 정의라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하지는 않을지라도 최소한 국가를 경영하는 차원에서는 이 명제를 최우선에 두고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겁니다. 이게 진짜 정무적 판단입니다.

역사를 정책수단으로 사용하지 말아야합니다. 속된말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하죠. 이 정부에서 우리의 역사를 뒤집어 자기들 입맛대로 다시 쓸 수는 있을 겁니다. 금년이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이니 하면서. 그러면 다음 정권에서 또 바꾸어 버리면 어떻게 할 건가요?

역사는 학자들에게 넘겨두세요. 오랜 시간에 걸쳐 수많은 논쟁을 거치면서 스스로 정화될 겁니다. 그리고 각기 다른 관점에서 여러 해석들이 도출될 겁니다. 벌써부터 8.15 광복절을 맞아 대통령이 또 무슨 새로운 해석을 내놓을지 우려됩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그들에게 숙명적 굴레이고 우리는 100년 이상 울궈먹을 자산입니다. 더욱이 우리의 힘이 커질수록 말입니다. 아마도 일본은 매년 사과해야 할지 모릅니다.

결국 천황이 탑골공원에서 무릎을 꿇어야 할 겁니다. 이게 5년이 걸릴지 10년, 아니20년이 걸릴지 모릅니다만. 그러나 이건 시민사회의 몫입니다. 정부가 정부를 상대로 얻어낼 수는 없습니다. 국가의 행위는 무오류라는 이론을 현 일본 위정자들은 믿고 있으니까요.

이들은 100년 전의 논리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걸 바꿀 수 있는 건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들이 이끌어가는 시민사회에 넘겨두어야 합니다. 권력을 쫓아 정치권에 기웃거리는 그런 부류들은 제외하고.

2019.7.29

<梨大정외과 명예교수/前이대학보사 편집인/국제정치학 박사(런던政經대/LSE)/著書:”삼국통일의 정치학”, “제국주의와 언론”/前한국일보 사회 외신 기자(견습 22기)/부산고~서울대 문리대 영문학과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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