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고교생이 노벨상 수상자가 된다면

이성낙

최근 들어 한 고교생 인턴이 국내의 권위 있는 공식 의학전문 학술지에 논문의 ‘제1 저자’로 편승·등극했다는 ‘충격적인 비보(悲報)가 들려왔습니다. 의학계에 반세기 넘게 몸담아온 필자로서는 실로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냥 웃어넘기기에는 너무나 개탄스럽고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논문의 제1 저자로 이름을 올린 한 고등학생을 두고 각계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이 있습니다. 아무리 교육감의 ‘행정 영역’이 고등학교 교육까지라고 하지만 ‘제1 저자’의 개념도 없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지경입니다. 교육감이라는 직위에 있는 분이 학술지 논문과 에세이를 구별하지도 못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라고 했다니 어이가 없다 못해 암담하기까지 합니다.

대체로 인문사회과학계 논문이 ‘단독 플레이(Play)’의 산물이라면, 자연과학계의 논문은 ‘팀워크 플레이’의 산물이라 하겠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필자가 속해 있는 의학계의 경우 어떤 특정한 현상에 대해 나라별 또는 인종별 차이의 연구 결과를 학술지에 발표할 때는 종종 50~100명의 저자 명단이 오르곤 합니다. 참여 인원이 많을수록 연구 결과에 신빙성이 높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글로벌 연구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추진한 주역에게는 바로 명예로운 ‘제1 저자(First author)’라는 무거운 책임과 함께 명예의 왕관을 씌워줍니다. 요컨대 ‘제1 저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주해: 학술지에 따라 교신저자(Corresponding author)가 논문을 책임진다.]

교육감이 언급한 에세이(Essay) 경우는 ‘단독 플레이’의 산물이기에 ‘제일 저자’만 있을 뿐입니다. ‘모르면 씩씩한 법’이라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황당합니다.

오늘날 우리 생활 용어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DNA’의 ‘이중 나선 구조(Double Helix)’를 1953년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처음 발표한 연구자의 이름은 제임스 왓슨(James Watson, 1928~ )과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 1916~2004)입니다. 두 연구자는 그 공로로 1962년 노벨 의학·생리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런데 ‘DNA’ 하면 ‘왓슨’이 떠오르지 구태여 ‘크릭’까지 거명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래서 ‘제2 저자(Second author)의 비애(悲哀)’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어느 연구자가 대여섯 명이 공동 연구한 논문을 인용하는 경우는 보통 “아무개 등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으로 요약하게 됩니다. 그만큼 논문의 ‘제1 저자’는 영원히 기억되는 ‘아무개’이기도 합니다. 앞에서 말한 고교생 인턴의 경우, 그 엄한 ‘자리’에 고교생이 여러 쟁쟁한 교수를 제치고 당당히 서 있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웃지 못 할 ‘가상극’을 떠올려봅니다. 이번에 거론된 논문이 세계 학회의 큰 시선을 끌어 노벨상을 받고, 그 고교생이 명예의 자리에 초빙되는 장면입니다. 황당하다 못해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고교생도 잘못에 대한 책임을 벗어날 수 없고, 그 부모의 상식을 벗어난 자식 사랑도 문제입니다만,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논문지도 교수의 무책임한 ‘오판’이 모든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이번 일은 한국 의과학계에 부끄러운 족적(足跡)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요즘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충격적인 비보 중의 비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개탄스럽습니다.

이성낙 교수(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 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가천대 명예총장, 한국의•약사평론가회 前 회장, (사)현대미술관회 前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