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탄핵’…역풍도 가능한 ‘양날의 칼’

트럼프 “탄핵 조사는 마녀사냥 쓰레기” 여론전

상원통과 난망 …”탄핵 실패시 대선에 큰 영향”

 

미국 민주당 지도부가 24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공식적인 탄핵 절차에 돌입하면서 내년 미 대선 정국이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특히 이번 사태를 촉발한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트럼프 대통령과 야당 1위 대선 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연관돼 있어 여야 모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누가 이기면 다른 한 사람은 몰락하는 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하다간 민주당이 스스로를 베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어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창 재선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집권 3년차에 탄핵 조사를 받게 됐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면 상원에서 심판을 받아야겠고 이 과정이 진행되는 과정에 상황이 얼마든 바뀔 수도 있겠지만 당분간 지지율 등에서 고전할 가능성이 높다.

바이든에게도 무조건 트럼프 대통령 탄핵 추진이 호재는 아니다. 부통령 재직 당시 우크라이나 검찰에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이미 도덕성에 흠집이 났다. 게다가 이런 가운데 당 내에서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무서운 속도로 쫓아오고 있는 참. 탄핵 소추안이 통과되어도 상원에서 걸려버리면 오히려 바이든은 이미지 추락만 하고말 수도 있다. 대선 주자 중 1위를 달리던 바이든이 휘청이면 민주당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뉴욕타임스(NYT)·CNN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낸시 펠로시(민주·캘리포니아) 하원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아무도 법 위에 있을 수는 없다”며 탄핵 조사 개시를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탄핵 조사를 받는 네 번째 대통령이 됐다. 현재까지 탄핵 심판대에 오른 대통령은 앤드루 존슨(1868년)과 리처드 닉슨(1974년), 빌 클린턴(1998년)으로 총 세 명이지만, 아직 탄핵으로 직을 잃은 대통령은 없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 탄핵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일단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총 435석 중 222석) 하원에서는 탄핵 의결안이 무리 없이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NYT에 따르면 현재까지 하원의원 중 200명이 찬성 의사를 밝혔다. 문제는 여당인 공화당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총 100석 중 53명) 상원이다. 상원 재적의원 3분의 2(67명)의 찬성이 필요한 탄핵 절차상 공화당 내부 반란이 없는 한 탄핵안이 상원을 통과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처럼 상원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큰데도 탄핵을 추진하는 이유는 탄핵 시도 자체가 내년 대선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의회가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한다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유권자에게 던질 수 있다.

하지만 미 정치권에선 민주당의 탄핵 조사 개시가 갑작스럽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자칫 선거에서 역풍을 맞을 것을 우려해 탄핵론이 처음 제기된 지난 2017년 2월 이후 신중론을 펴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워싱턴포스트(WP)는 하원 법사위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끌어내릴 명확한 증거가 발견돼 탄핵 절차를 공식적으로 지지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바이든 전 부통령을 겨냥했다는 점과 이번에도 탄핵 조사 없이 그냥 넘어갈 경우 내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정부와 부패한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우려감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복스(Vox)는 봤다.

외교 정책에도 변수가 생겼다. 탄핵이 실제로 이뤄지느냐와는 별개로 야당의 탄핵 절차 착수만으로도 행정부 업무가 ‘올스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미 두 정상 간 ‘톱다운 방식'(하향식 의사결정방식)에 의존하는 북미 핵협상의 경우 불확실성이 더 커질 수 있어 보인다.

미 외교안보전문매체 ‘더 디플로맷’ 안킷 팬더 선임에디터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이런(트럼프 대통령이 탄핵 조사를 받는) 환경에서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과 마지막 도박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반면 권력 기반이 취약하고 절박한 트럼프 대통령은 어느 때보다도 북측에 공짜를 나눠줄 의지가 강할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둘러 외교 성과를 내기 위해 부분적 제재 완화나 단계적 비핵화를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클린턴 전 대통령 때 경험했듯 상원에서 탄핵안을 기각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힘이 더 세지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로이터통신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 조사 결과 로버트 뮬러 특검 보고서 공개 직후와 이달 초를 비교했을 때 대통령 탄핵을 지지하는 국민 의견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되면 탄핵 조사가 오히려 면죄부가 돼 내년 대선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흘러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장 “민주당의 탄핵 추진은 마녀사냥 쓰레기(Witch Hunt garbage). 유엔 외교 성과를 고의로 망쳤다”며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또 밤 늦은 시간까지 민주당을 비난하는 공화당 의원이나 방송인들의 글을 리트윗하는 등 여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