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목사 공격, 미투 or 정치적 의도?

최근 출간 성추문 폭로 책자로 논란 가열

AJC, 관련 인물-전문가 인터뷰 통해 조명

지난달 30일 퓰리처상을 받은 저명한 역사학자인 데이비드 J. 가로우(David J. Garrow)가 애틀랜타 출신의 시민운동 아이콘 마턴 루터 킹(MLK) 목사의 성추문을 폭로하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의 내용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것은 한 호텔방에서 동료 목사가 한 여성을 강간할 때 킹 목사를 이를 묵인하고, 심지어 웃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마틴 루터 킹재단과 킹목사의 가족들은 아직 이에 대한 반응을 자제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킹 목사를 제거하기 위해 총력을 다했던 FBI의 도청 내용을 바탕으로 나온 이같은 주장과 출판 시점에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당시의 FBI 국장은 악명높은 에드가 후버로 킹 목사를 ‘공공의 적’으로 몰아 음해하기 위해 갖가지 공작을 펼쳤던 인물이다.

AJC는 “가로우가 AJC를 포함한 미국내 주요신문들에 출판전 이같은 내용을 기사화해줄 수 있느냐고 문의했지만 모두 거절했다”면서 “그가 증거라고 말한 FBI의 도청 내용 대본(Script) 외에 오디오 테이프 등 어떠한 기초 증거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AJC는 지난 7일 책이 출판된 후 벌어진 파문에 대해 기사화를 결정하고 여러 관련 인물들을 인터뷰해 특집기사를 보도했다.


우선 지난 1961년부터 킹 목사가 암살당한 1968년 4월4일까지 그의 곁을 지켰던 앤드류 영 전 애틀랜타 시장은 “킹 목사가 서거한지 50년이 더 지났는데 지금 이러한 이야기를 출판한 이유를 알고 싶다”면서 “킹 목사 생전에도 이와 비슷한 루머가 돌았지만 나는 어떠한 성추문도 목격하지 못했다. 이런 사실을 직접 봤거나, 심지어 전해 들었다고 내가 말한 사람도 전혀 없었다”고 잘라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가로우의 주장이 오직 FBI가 내부적으로 만든 도청 테이프의 대본에 근거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럿거스대의 도나 머치 역사학과 교수는 “당시에는 흑인 인권운동 지도자들의 평판을 훼손하기 위해 성적인 문제를 조작해 선전하는 일이 일반화돼있었다”면서 “관련 인물들에 대한 인터뷰는 전혀 없이 이러한 조작의 중심에 서있었던 FBI의 내부 문건만을 인용한 것 자체가 신뢰성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머치 교수는 이어 “현재 가로우의 주장은 흑인 지도자들의 합리적인 주장을 훼손하기 위해 이들의 도덕성을 공격했던 오래된 백인 인종주의자들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실제 가로우가 인용한 1964년 1월5일 워싱턴 DC의 한 호텔방 강간사건 녹음 대본에서 “킹목사가 이를 방조하며 오히려 웃었다”는 주장은 정식으로 타이핑된 글이 아니라 누군가가 서류 구석에 펜으로 적어놓은 문구다.

강간사건 도청대본. 왼쪽 여백의 필기 문구가 문제의 내용이다.

가로우는 이 문제의 문장이 당시 FBI 정보담당 부국장이었던 윌리엄 설리번이 쓴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런데 이 설리번 역시 후버 못지 않게 킹목사를 싫어했던 인물이다. 가로우는 또한 이 문건들을 바탕으로 킹목사가 1960년대에 최소한 40명의 여성과 불륜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FBI의 역사에 대해 여러 권의 책을 낸 작가 케네스 오라일리는 “당시에는 한 요원이 타이핑한 글에 상사 등 다른 요원이 나중에 자의적으로 도청 기록에도 없는 문구를 추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서 “이 문건만을 바탕으로 킹목사가 강간을 방조하며 웃었다고 믿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라일리는 특히 “후버와 설리번의 킹목사에 대한 집착을 고려했을 때, 킹목사가 강간 장면을 즐겼다는 내용을 이용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 이상하다”면서 “아마 후버와 설리번도 자신들이 만들어 삽입한 이 문구가 후대에 전해진다는 것외에는 어떤 의미도 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 책이 출간되자 보수주의 라디오 방송진행자인 러시 림보(Rush Limbaugh)는 “워싱턴 DC 내셔널몰의 킹 메모리얼을 허물고, 킹의 이름을 딴 도로와 학교 명칭을 바꿔야 한다”고 선동하기도 했다.

컨터키대의 제럴드 스미스 역사학과 교수는 “당시 후버 국장은 진짜로 킹목사를 미워했다”면서 “킹 목사는 FBI가 국가가 아닌 정파와 개인을 위해 일한다며 비판했으며, 후버는 그를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흑인으로 지목해 갖가지 방법으로 괴롭혔다”고 말했다.

물론 미투 운동과 관련해 이 책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의 제이슨 밀러 영문학과 교수는 “책의 내용에 충격을 받았고 우리는 킹목사가 여성을 학대하던 사람이었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면서 “사랑받고 있는 역사적 인물이라고 해도 이 문제에 대해 새로운 평가가 내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AJC가 마지막으로 인터뷰한 흑인시민운동단체 블랙 팬서 파티의 엘레인 브라운 전 회장은 “두뇌가 반만 있는 사람이라도 후버가 킹목사를 끊임없이 악의적으로 공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흑인운동을 두려워해 성문제와 관련해 남성지도자들을 공격하는 세력이 사후의 킹 목사까지 타겟으로 삼고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킹목사와 앤드류 영. /Bob Dendy, Photographer) Printed on negative envelope: “King, Martin Luther. April 25, 1967. 30258. Den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