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 막은 한인회

한국학교 차용금 상환계약 연장서류 서명 안해 피소

손쉽고 합리적인 해결책 외면하고 다시 송사 휘말려

그동안 조직의 어깨를 짓눌러왔던 선거 무효소송에서 지난 7일 ‘해방’된 애틀랜타한인회가 1주일도 안돼 새로운 소송의 피고가 됐다. 13일 애틀랜타한국학교 이사회가 한인회를 상대로 11만3000달러의 차용금을 상환하라며 귀넷카운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한인단체끼리 차용금을 놓고 소송까지 벌이느냐는 비판도 있겠지만 속 사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지난 1월 본보가 최초로 보도(기사 링크)했듯이 한국학교 이사회 소속 이사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형법상 배임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2014년 한인회와 한국학교가 맺은 차용금 관련 계약. 이전 도라빌 한인회관에서 발생한 대형화재로 새로운 한인회관을 구입하기로 결정한 한인회가 한국학교에 25만달러의 채무를 지게 된 것이다.

지난 1997년 도라빌 한인회관을 구입할 때 한국학교는 회관을 함께 사용하기로 하고 회관 매입비용의 절반을 부담했다. 화재로 전소된 도라빌 한인회관은 2014년 6월 50만달러의 가격으로 한인 개발업체에 매각됐고 한인회는 이 가운데 25만달러를 한국학교에 상환해야 했지만 새 한인회관 구입에 예상보다 많은 자금이 필요하자 한국학교에 협조를 요청했다.

한국학교의 양해로 처음에는 새 한인회관 부지 가운데 일부를 한국학교에 양도하기로 했지만 1년 뒤 새로운 차용 계약을 맺어 이를 부채로 전환했다. 오영록 전 회장 등이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을 상환했지만 여전히 11만3000달러가 빚으로 남아 있다.

조지아 주법상 차용금 상환계약의 기한은 6년. 만약 2020년 8월14일까지 상환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양측이 합의해 차용 계약을 다시 6년간 연장하거나 돈을 빌려준 측이 법적 조치를 통해 강제적인 징수에 나서야 한다.

개인의 빚이라면 임의대로 탕감해줄 수도 있겠지만 한국학교 이사회라는 공조직이 부채 문제를 방조해 한국학교에 피해를 끼친다면 이사 전원이 배임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이 한국학교 법률 자문들의 조언이었다.

그래서 지난 1월부터 한국학교 이사들은 대책 마련에 나섰고 새로 한인회를 이끌게 된 김윤철 회장에게 계약 연장을 제안해왔다. 하지만 7개월간 이뤄진 물밑 접촉과 설득작업은 한인회장과 한인회 이사장의 차용증(promise note) 연장계약 서명 거부로 무산됐고, 결국 최후의 방법인 소송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한국학교 이사회의 설명이다.

한인회장과 한인회 이사장이 왜 ‘쉬운 길’인 계약 연장을 거부했는지 정확한 속내는 공개되지 않았다. 전임 회장들에게 인수인계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해하기 힘든 설명이다. 한 한인 변호사는 “단체장이 계약 연장서류에 서명하더라도 부채 상환책임은 단체가 지게 된다”면서 “계약서에 ‘서명한 단체장에게는 책임(liability)이 없다’는 조항까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이를 거부했는지 의아하다”고 말했다.

이국자 한국학교 이사장은 “한인회에 돈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계약을 연장하고 한달에 100달러씩만 상환해도 된다고 제의했다”면서 “그 100달러씩도 김윤철 회장 재임기간까지는 내가 개인적으로 한인회에 도네이션 한다고까지 말했다”며 아쉬워했다.

여하튼 소송이 시작됐으니 이제부터는 ‘변호사들의 시간’이다.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 계약 연장서류에 서명만 했으면 손쉽게 해결됐을 일이 한인단체간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고, 소송 비용과 변호사 수임료 등 손실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전 한인회장 선거 무효소송에서도 지적했지만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한인 인사들의 고집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상연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