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의 역사칼럼] 19. Salem 마녀사냥

한국에서 최근 몇십 년 동안 가장 흔히 쓰이는 말 중에 ‘왕따’라는 말이 있다. 예전에는 그냥 ‘따돌림’이라는 말이 쓰였으나, 강조하는 뜻의 ‘왕’이라는 말을 앞에 붙여 ‘왕따’가 만들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엄밀하게 말하면, ‘왕따’라는 말은 집단 따돌림을 뜻한다고 보면 된다. 멀쩡한 사람을 왕따로 몰아 소외시키는 행위에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악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인간의 나쁜 밑바닥을 보여 주는 단면이 있어 안타깝다. 미국 역사에도 집단 따돌림이 수많이 있었다. 그중에 두드러진 사건이 지금의 매사추세츠에서 일어난 마녀 재판 사건이며, 이것도 일종의 대형 왕따인 셈이다.

원래 마녀사냥은 16세기에 유럽에서 극성을 부렸다. 그러던 것이 마침내 그 바람이 미국에도 건너와 몰아치게 된다. 때는 1692년, 미국이 독립하기 70여 년 전의 일이다. 보스턴 인근의 소도시 Salem에서 몇 명의 소녀들이 모여 모닥불을 피워놓고 놀고 있었다. 그냥 평범하게 놀고 있었지만, 도중에 소녀들이 조금 심하게 장난치며 놀고 있는 것을 어느 목사가 보게 되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그 목사의 딸이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져 깨어나지 못하는 일이 생겼다. 이것을 목사는 사탄이 일으킨 일이라고 결론 내리고 며칠 전 놀이를 하던 소녀들을 소집하여 심문하였다. 심문 과정에서 심문 받던 아이들은 아이티에서 온 흑인 아이와 걸인 행각을 하던 노파와 소녀를 사탄이 끼어든 마녀라고 지목했다. 이들을 체포하여 심문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다시 다른 사람들을 마녀로 지목하고 책임 전가하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져 마침내 100여 명이 마녀 혐의로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미국이 아직 독립하기 이전이라, 이 사건은 영국 본국에도 보고 되었으며, 영국 정부는 매사추세츠 총독에게 조사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하게 된다. 명령을 받은 총독은 재판부를 결성하여 심리를 열었다. 이들의 사건을 조사, 심리하는 과정이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심문을 받으면서 당사자 본인이 악마의 꼬임에 빠졌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살려 주었지만, 본인의 결백을 주장하면 사형시켜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판결이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판결로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교수형에 처했으며, 180명 넘는 사람이 투옥되었다. 심지어 어떤 노인은 본인이 결백하다고 주장하다가 말이 통하지 않자 그 후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돌에 눌려 죽었다고 한다. 다행히 일 년 남짓 후에는 재판의 불합리하다는 여론이 들끓게 되자 총독이 재판을 중지하라고 명령을 내리면서 이 사태는 막을 내리게 된다.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하여 몇 문학 작품이 탄생하였는데, 가장 두드러진 작품이 Arthur Miller의 ‘The Crucible’(도가니)이라는 희곡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아서 밀러가 의도했던 것은 1950년대에 휩쓸던 매카시즘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다. ‘McCarthyism’’이란 Joseph McCarthy라는 반공주의 정신에 투철한 미연방 상원의원이 부추겨서 많은 사람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잡아들이면서 발생한 사건을 말한다. 이때 많은 사람이 무고하게 투옥되었으며, 당사자들끼리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과정에서 더욱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기도 했다. 일종의 마녀 사냥이라고 할 수 있다. 아서 밀러는 본인의 친한 친구가 여기에 희생되는 것을 보고 The Crucible이라는 작품을 만들어 고발하고자 하였다. 그의 의도대로 The Crucible은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아 크게 영화로서 흥행하였다.

일상 속에서 일종의 왕따 사건(마녀사냥)은 수도 없이 자주 일어난다. 지금 이 시각에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극렬한 인종차별도 일종의 마녀 사냥이다. 마녀사냥의 희생자가 되어서도 안 되지만, 멀쩡한 사람을 왕따(마녀)로 몰아가는 일에 혹시나 동참하고 있지나 않나 자신을 둘러보는 것도 중요하다 하겠다. 대통령이라는 사람도 나서서 마녀사냥(인종차별)을 부추기는 것 같아 어쩐지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