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의 역사칼럼] 14. 영국의 첫 식민지는 사라졌다?

누구나 알다시피 미국은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나라이다. 미국 공용어가 영어라는 말은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였음을 의미한다. 미국의 영국 식민지 시대는 언제부터 시작했을까?

아메리카 대륙에서 영국의 식민지 개발은 로어노크(Roanoke)에서 시작한다. 물론 이보다 더 일찍 영국이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한 적은 있었다.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지오바니 카보토(Giovnni Caboto)라는 사람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새로운 항로를 발견한 직후에 자신도 신대륙에 탐험을 하겠다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의도를 밝혔으나,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하자 영국으로 갔다.

그곳에서 영국와 헨리 7세로부터 지원을 약속 받았다. 내친 김에 그는 영국사람으로 귀화를 하고 이름도 존 캐벗(John Cabot)으로 바꾸었다. 콜럼버스 신대륙을 발견하고 5년이 지난 1497년에 그는 드디어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항해하여 지금의 뉴펀들랜드 지역에 도착하여 탐험하고 영국으로 돌아가 영국에 커다란 자심감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이듬해 200명의 선원과 대선단을 꾸려 2차 항해를 떠났으나, 그 후로는 소식이 두절되고 행방불명되었다. 일설에는 스페인이 자기네와 경쟁이 될까봐 해적을 고용해 몰살시켰다는 말도 있다. 어쨌든 이렇게 하여 영국의 아메리카 대륙 진출은 여기서 잠시 연결이 끊기고 100년 가까이의 세월이 지난 후에나 다시 시작한다.

화려한 현재의 로어노크

1580년대에 영국은 북아메리카 지역에 대한 탐사에 열중했다. 좌충우돌 희생과 시련을 겪으면서 경험을 쌓아나갔다. 1587년경 드디어 화이트라는 영국 사람이 이끄는 115명의 최초의 이민자는 지금의 노스캐롤라이나 로어노크(Roanoke) 섬에 짐을 풀고 이민 살림을 차렸다. 이민 개척지가 아직 정착되지 않은 상태인지라 식량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생활용품은 영국 본국으로부터 날라 와야 하는 실정이었다. 보급품을 본국으로부터 가져오기 위해 화이트는 이민자를 로어노크에 그대로 놔두고 선단을 이끌고 영국으로 향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때 영국과 스페인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으로 인해 보급품을 가지러 갔던 화이트 일행은 3년동안이나 로어노크에 돌아 올 수가 없었다. 3년만에 화이트 일행이 로어노크에 돌아 와서 보니 로어노크 식민지에는 사람의 흔적 조차 없었다. 전쟁의 흔적도 없고, 파괴된 것도 없이 모든 것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냥 사람들만 어디로 증발해 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사라진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그후 영국인들은 사라진 이민자들을 찾아 백방으로 수색해 보았으나 쉽게 발견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자세하고 광범위하게 수색해 본다는 것도 불가능했다. 나중에는 로어노크 이민자들이 사라진 연유에 대해 여러가지 가설만 생겨났다.

그 가설 중 가장 유명한 것이 그 이민자들이 인디언들에게 동화되었다는 설이다. 그들이 인디언들에게 납치되어 갔는지, 아니면 자진해서 인디언들과 섞여서 살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간혹 발견되는 증거로 이 가설이 힘을 얻고 있다고 한다. 그 증거 중의 하나는 훗날 발견된 인디언 부족 중에는 서양인과의 혼혈도 발견되기도 하고, 또한 서양식 가옥이 발견된 점이라고 한다. 다른 한 설은 스페인 군인들이 납치해서 모두 살해했을 수도 있다고 한다. 이 설은 뚜렷한 증거가 없어 그냥 가설로만 존재한다.

그 옛날 만일 한국 사람이 아메리카 대륙에 개척자로서 도착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미국 땅에는 한국인 사회가 자리 잡았었을 것이다. 만일 그랬었더라면, 근래에 이민온 우리에게는 영어를 힘들여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점 하나는 좋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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