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의 역사칼럼] 12. 인도는 동쪽에 있나, 서쪽에 있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질 나쁜 정치인들이 자기들의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앞잡이를 내세우는 예가 많다. 한국에서는 한때 정치인들이 깡패들을 동원해 각목을 휘두르며 난리를 피우며 위협을 가하기도 했었다. 세계열강들이 식민지 쟁탈에 몰두하느라 혈안이 되었던 시대에는 서양 각국이 식민지 개발 회사를 만들어 대리로 내세우며 식민지 확보와 수탈을 맡게끔 했다. 한 나라의 정부가 드러내 놓고 나서서 남의 땅을 빼앗기에는 체면과 양심을 조금 생각했던 것일까? 엎어치나 메치나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한국이 일본에 강점되고 난 다음에 한국 사람들의 재산과 물품을 수탈했던 것도 일본 제국이 만든 ‘동양척식주식회사’라는 식민지 관리 회사가 도맡았다. 동양의 각국을 개척하여 식민지로 만들겠다는 강한 포부를 보인 것이다. 사실 알고 보면, 일본이 이런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낼 리는 만무하고, 이것은 순전히 서양의 식민지 개척 관리 회사들을 보고 베낀 것이다.

동인도 회사 깃발

서양에서 식민지 개발회사를 최초로 설립한 나라는 영국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거의 동시에 네덜란드와 프랑스, 덴마크 등이 이를 본떠 개발회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회사 이름을 비슷하게 지었는데, 그것이 바로 동인도 회사와 서인도 회사이다. 이들은 왜 ‘동인도’와 ‘서인도’라는 말을 썼을까? 이들이 말했던 동인도는 진짜 인도 땅을 뜻하는 것이고, 서인도는 아메리카 대륙을 뜻한다. 동인도 회사라고 해서 인도를 식민지로 노리고 만든 것은 아니고, 동양 전체를 노렸다고 보면 된다. 서인도 회사는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노리고 만든 것이다. ‘동인도’를 그냥 ‘인도’라고 부르면 ‘서인도’를 뜻하는 것으로 혼동될까 봐 진짜 인도를 동인도라고 불렀다.

아메리카 대륙을 ‘서인도’로 부르는 이유는 콜럼버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여 아메리카에 도착하고는 이 땅이 바로 인도라고 믿었다. 사실 그는 아메리카 대륙이 새로운 땅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죽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아직도 우리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인디언’이라고 부른다. 그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모든 사람이 아메리카 대륙이 인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콜럼버스의 착각을 존중하여 주기 위해 아메리카 대륙을 ‘서인도’라고 불러 주었다는 주장이 있다. 지금에 와서는 아메리카 대륙을 서인도라고 부르는 예는 없지만, 콜럼버스가 도착했던 땅, 즉 카리브 해의 섬들을 우리는 아직도 ‘서인도 제도’라는 뜻으로 ‘West Indies’라고 부르며 콜럼버스의 착각을 존중하고 있다.

좌우간 아메리카 대륙에서 식민지 경영을 하는 데 있어서 초기에 식민지 개척 회사를 잘 활용한 나라가 네덜란드이다. 네덜란드의 동인도 및 서인도 회사는 처음부터 주식회사로 출발한 것이 성공의 한 요인이라고 한다. 소시민들이 모두 참여하는 덕분에 자금동원이 쉬웠기에 금세 엄청난 자금을 모을 수가 있었다. 심지어 하녀들까지 회사의 주주가 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정부도 대량으로 투자하여 동인도 및 서인도 회사는 정부 기업이 되다시피 했다. 네덜란드는 나중에 이 회사에 외교권과 군사 작전권도 주었으며, 회사의 수장이 식민지의 총독까지 겸하기도 했다. 한편, 일본도 이것을 본떠 따라하고자 했고, 영국도 나중에는 동인도 회사를 적극 활용했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만든 것도 동인도 회사를 통해서이고, 인도 식민지 경영도 동인도 회사가 맡기도 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이런 회사들은 국제무대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그 자리를 다국적 기업들이 대신하게 되었다. 오늘날에 와서는 공식적인 식민지 경영 회사는 없지만, 다국적 기업들이 국제 무역 무대에서 보이지 않는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동인도 회사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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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도회사 본사가 위치한 포트 윌리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