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의 역사칼럼] 9. 비버에게 미안해야 하나?

모피 제품 가죽 제품은 누구나 탐내는 물건이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성경에 따르면 인간이 최초로 입은 옷이 가죽옷이라는 말이 된다. 가죽에 털이 붙은 것을 모피라고 하는데, 모피는 주로 추위를 막기 위한 방한복이나 방한 모자에 많이 쓰인다. 지금에야 인조 모피가 있어 짐승들의 수난이 덜할지 모르지만, 예전에는 인조모피가 없었으므로 모든 모피는 털이 많은 짐승을 잡아 만들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모피의 수요가 많아지면 그만큼 짐승들이 큰 수난을 당해야만 했다.

북아메리카에서 수난을 당한 짐승 중 가장 대표적인 짐승이 비버이다. 16세기에 유럽 국가들이 비버 모피를 확보하기 위해 사냥터를 늘리다가 보니, 결과적으로 식민지 영역을 늘리는 셈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비버 모피가 북아메리카 역사를 바꾸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비버는 항상 물에 사는 짐승이다. 주로 흐르는 시냇물에 나무를 잘라 댐을 만들어 물을 가두어 놓고 사는 독특한 습관이 있다. 가두어 놓은 물 한가운데에 섬처럼 나무를 쌓아 놓고 그 속에 집을 짓고 사는 매우 영리한 짐승이다. 이들이 사시사철 물속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그들의 털은 거의 완벽한 방수 기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방한 기능도 있다. 따라서 비버의 가죽을 이용하면 매우 우수한 모피 제품을 만들 수 있다.

1609년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에서 파견된 헨리 허드슨이 맨해튼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의 허드슨 강을 따라 올라가면서 탐험하기 시작했다. 허드슨 강이라는 이름도 이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듬해 그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여러 가지 물품을 가지고 네덜란드로 돌아왔는데, 그 물품 중에 비버 모피 가죽이 사람들로부터 크게 환영받았다. 이 일로 인해 네덜란드 당국은 아메리카의 비버 모피 가죽에 눈독 들이게 되고, 맨해튼을 우선 식민지로 삼으면서 ‘뉴암스테르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게 바로 지금의 뉴욕이 생기게 된 기원이다. 처음에는 식민지 사람들이 인디언들의 습격을 많이 견뎌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인디언으로부터의 방어를 위해 통나무로 성벽을 쌓았는데, 그 성벽 옆으로 난 길을 Wall Street라고 불렀으며, 그것이 현재 유명한 Wall Street가 생긴 유래이기도 하다.

하여간 그 후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여러나라는 탐험이라는 이유로 북아메리카 동부에 도착하자마자 짐승 가죽 모피에 혈안이 되었다. 더구나 인디언들에게 사냥하라고 전해준 총으로 인디언 부족끼리 모피를 확보하기 위한 쟁탈전이 빈번하기도 했다. 이렇게 비버 가죽 모피에 대한 쟁탈전의 열기에 기름을 부은 사람이 영국의 찰스 1세이다. 그는 1630년경 상류사회 사람은 누구나 비버 모피 가죽 모자를 써야 한다는 포고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비버 모피 가죽 혹은 여타 짐승의 모피 가죽에 대한 수요는 엄청나게 늘어났고, 이것이 유럽 나라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식민지를 넓히는 데 주력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참고로 러시아도 모피 가죽을 제공하는 짐승을 쫓다가 보니 시베리아를 점령하기 시작했고, 그 후 계속 전진하여 알래스카와 북아메리카 동서부 해안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알래스카는 나중에 미국이 사들여 미국 영토가 되었는데, 지금도 그 생김새를 보면 해안 쪽에 남쪽으로 길게 뻗어 있다. 이것이 바로 러시아인들이 물개를 잡아 모피 가죽을 얻기 위해 해안 쪽으로 진출했던 흔적이다.

현재 북아메리카의 번영에 비버와 다른 짐승들의 희생이 일조하였다고 결론내리면 너무 염치없는 일일까? 과거는 이미 흘러갔으므로 돌이킬 수는 없는 일이지만, 옛날 비버와 기타 짐승들이 당한 수난이 헛되지 않도록 모두 올바르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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