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어넌 음모론] ②트럼프가 구세주 된 이유는?

‘큐어넌’ 음모론, 기독교 분파와 ‘교배’해 신흥 종교화

5G 음모론, 코로나 음모론, 백신 음모론 등으로 진화

“문재인-중국 공산당 타도” 등 한인 맞춤형 이론 등장

지난해 3월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매주 교회에 출석하는 ‘백인 개신교도(White Protestant)’ 가운데 절반에 달하는 49%가 “트럼프는 하나님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은(anointed) 사람”이라고 응답했다.

정치학자인 폴 주페와 라이언 버지는 “이는 2019년 조사 당시의 29%에서 크게 증가한 것”이라며 “미국 교계 지도자들이 이러한 믿음을 일반 교인들에게 심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의회에 난입해 경찰과 대치하는 큐어넌 추종자들. 옷에 큐어넌의 상징 Q가 그려져 있다.  [AP=연합뉴스]

뉴욕 세인트 로렌스대 신학교수인 데이먼 베리는 “기독교 분파 가운데 하나인 신사도운동(New Apostolic Reformation)이 특히 트럼프를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전하는 사도나 예언자로 승격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 비밀결사, 딥스테이트, 신세계 질서

큐어넌 음모론은 이렇게 기독교적인 권위를 얻은 트럼프를 통해 그동안 세상을 지배해왔던 악의 세력인 딥스테이트(deep state)와 이를 이끄는 소규모 리더들인 비밀결사(cabal)가 심판을 받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평범한 정치적 음모론을 ‘신흥 종교’로 끌어 올리며 열렬한 신봉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

큐어넌 ‘신도’들은 2016년 딥스테이트의 수괴격인 힐러리 클린턴을 꺾고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가 비밀결사 핵심인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조지 소로스 등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만 2020년 재선에 성공하며 그동안 세계를 짓눌러왔던 신세계 질서(New world order)를 궤멸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2018년 8월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참석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큐어넌’을 상징하는 ‘Q’자를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폭풍’처럼 신세계 질서를 흩어버릴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는 것이 Q에 의해 예언돼 있었는데 선거 결과 패배한 것으로 나오자 “딥스테이트에 의한 선거사기가 원인”이라고 주장하며 트럼프가 이마저도 이겨내고 결국 4년 더 재임할 것이라고 믿어왔다.

이러한 믿음은 조지아 재검표와 숱한 선거 소송 패배를 겪으며 약해져 갔지만 트럼프는 1월 6일 의회의 선거결과 인증이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도움으로 좌절되면서 결국 자신이 선거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새로운 믿음을 주입해 왔다.

그런데 펜스 부통령이 6일 오전 “국민의 뜻대로 선거결과를 인증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자 트럼프와 큐어넌 신봉자들은 분노와 광기를 드러냈고, 결국 의회로 쳐들어가 무력으로 인증을 저지하려고 한 것이다.

◇ 내슈빌 폭발사건 관련 여부도 주목

큐어넌 음모론의 확장성은 코로나 바이러스 못지 않다는 사실이 지난달 25일 성탄절 아침 미국을 놀라게 했던 내슈빌 다운타운 RV 폭발사건에서도 증명됐다. 아직 최종 수사결과가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폭발테러범인 앤서니 퀸 워너가 5G 음모론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큐어넌과의 연계성 여부가 큰 관심을 모았다.

각국의 정부가 추진하는 5G 이동통신 정책이 사실은 딥스테이트가 국민들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5G 음모론은 큐어넌과 밀접하게 결합돼 있다. 일부 큐어넌 신봉자들은 5G 시스템이 각종 질병을 유발하고, 심지어 코로나19 팬데믹과도 관련이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다.

마피아 두목 프란체스코 칼리를 살해한 큐어넌 신봉자 앤서니 코멜로(왼쪽)가 지난 4월 로버트 고틀리프 변호사와 함께 법정에 선 모습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인터넷 매체 데일리비스트에 따르면 내슈빌 폭발사건이 일어난 직후 큐어넌 신봉자들은 워너의 이름(middle name) 퀸(Quinn)과 성(last name) 워너(Warner)를 조합해 “Q의 경고(Q Warn)”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반면 선거사기 주장으로 유명한 또다른 큐어넌 신봉자 린 우드 변호사는 이 폭발사건과 관련한 다양한 의혹을 제기하며 정부의 조작으로 몰고가기도 했다.

큐어넌은 5G 음모론 외에도 코로나19 팬데믹을 딥스테이트가 꾸며낸 것으로 보는 코로나 음모론도 주장하고 있다. 또한 코로나 백신을 트럼프가 주도해 개발했음에도 딥스테이트가 백신을 통해 인류의 몸에 마이크로칩을 넣어 통제를 극대화한다는 백신 음모론까지 만들어내 유포하고 있다.

◇ 극우 한인, 기독교인들 쉽게 넘어가

영국 가디언지는 큐어넌이 미국은 물론 유럽과 호주, 일본, 한국 등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미주 한인 가운데도 큐어넌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특히 우파 성향의 기독교인 가운데 큐어넌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 유독 많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인 큐어넌 추종자들은 일반적으로 “트럼프는 기독교 가치를 파괴하려는 세력들로부터 이를 지켜내는 수호자”로 인식하고 있는 반면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중국 공산당에 대해서는 극도의 혐오를 드러내고 있다.

일부에서는 문대통령과 빌 게이츠가 코로나 백신 개발에 협력하기로 한 사실을 들어 “문재인도 딥스테이트에 넘어갔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실제 지난해 광복절에 열린 문재인 정권 규탄집회에 큐어넌의 상징이 적힌 피켓이 등장했다.

이들은 또한 ‘중공’, ‘차이나 바이러스’ 등의 용어를 공공연하게 사용하며 중국 공산당에 대해 최악의 반감을 드러낸다. “미국 민주당이나 문재인 모두 중국 공산당의 하수인”으로 여기며 트럼프의 가장 큰 치적을 중국 공산당 견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경향을 보인다고 모두 큐어넌 추종자라고 볼 수는 없지만 이들 대부분은 알게 모르게 음모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들은 트럼프와 가장 친한 일본 아베 전 총리는 오히려 딥스테이트의 일원이라고 생각하며 배척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한국의 4.15 총선 부정투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묘하게 이를 미국 대통령 선거사기 주장과 연계시키며 스스로 큐어넌 음모론에 빠져 들기도 한다.

3편에 계속

지난 2018년 공화당 플로리다 주지사 유세에 등장한 Q./Fox News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