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미아, 위기 넘기고 ‘조건부 유지’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17일 태국 방콕 아바니 리버사이드 호텔에서 열린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 고노 다로 일본 방위상과 손을 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3년만에 막 내릴뻔 하다 극적인 종료 유예

 

일본의 한국 대상 수출규제 조치 이후 우리 정부의 결정으로 23일부터 종료가 유력했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이 극적으로 수명을 이어가게 됐다.

일본이 한국 대상 수출규제와 관련해 입장의 변화를 밝혔기 때문인데 2016년 11월23일 체결 이후 3년만에 종료될 뻔한 지소미아는 일단 한동안 그 효력을 이어가게 됐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인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은 22일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한일 양국 정부는 최근 양국 간 현안 해결을 위해 각각 자국이 취할 조치를 동시에 발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정부는 언제든지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의 효력을 종료시킬 수 있다는 전제 하에, 2019년 8월 23일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시키기로 하였으며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한 이해를 표했다”고 밝혔다.

김 차장은 또한 “한일 간 수출 관리 대화가 정상 진행되는 동안 일본측의 3대 품목 수출규제에 대해 WTO(세계무역기구) 제소 절차를 정지시키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당초 이날 밤 12시(23일 0시)로 종료될 예정이었던 지소미아는 계속 유지되게 됐다.

◇미국의 ‘강력한’ 요청으로 체결된 지소미아

지소미아의 시작은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대북 군사정보 필요성에 따라 일본에 지소미아 체결을 제안했다. 그러나 일본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아 진전 없이 유야무야됐다.

이후 2010년 6월 당시 일본 방위상이 우리 측에 제안하면서 다시 불거졌고 2011년 1월 양국이 한일 국방장관회담에서 협정을 추진할 것을 밝히면서 논의가 본격화됐다.

이에 2012년 6월29일, 일본 외무성에서 신각수 주일 대사와 겐바 고이치로 외무상의 서명으로 지소미아는 체결될 뻔 했다. 그러나 6월26일 충분한 여론 수렴과 국회와의 협의를 거치지 않은 채 정부가 협정안을 비공개로 의결했고 밀실 추진이라는 국민적 비판 여론에 직면하며 지소미아는 무산됐다.

이후 4년이 지난 2016년 11월1일, 한일 양국은 도쿄에서 2012년 잠정 합의된 협정문안을 바탕으로 협의를 재개했다. 이 때는 북한이 고강도 도발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였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협정 체결 논의를 재개하기로 했고, 11월23일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과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지소미아에 서명했다.

지소미아의 체결에는 미국의 개입이 컸다. 체결 전인 2016년 4월 한·미·일 3국 정상회의에서 연내에 지소미아를 체결할 것을 요청했고, 한국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가 결정된 직후인 그해 8월에는 빈센트 브룩스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 미사일 방어를 위한 다국적 정보공조 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지소미아는 미국이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지소미아는 체결 당시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으로 어수선했던 시절이어서 충분한 숙의 과정 없이 서둘러 체결이 추진됐다는 이유로 ‘졸속 협상’, ‘매국 협상’이라는 거센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당시 국방부는 협정 서명식을 비공개로 진행했고 국방부에 취재를 온 사진기자들이 협정이 밀약이 아닌 이상 비공개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국방부 청사 입구에서 카메라를 내려두고 일렬로 도열해 취재를 거부하는 나름의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 체결된 지소미아…3년 간 30건 군사 정보 공유

국방부에 따르면 지소미아를 매개로 한 군사정보 교환 건수는 지난 3년 동안 약 30건 정도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도발이 극에 달했던 2017년 양국의 군사정보 교환 회수가 19건으로 피크에 달했다. 이는 대부분 일본이 먼저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다.

지소미아는 단순히 정보 교환 외에도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상호 안보를 보호하기 위한 기본적인 도구로 인식되면서 한·미·일 3각 협력의 아이콘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 8월 일본이 ‘안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한국을 수출심사 우대대상인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취하자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해 일본 정부에 통보했다.

이에 미국은 이번 달 들어 잇따라 고위 인사를 한국에 파견해 직접 지소미아 연장 입장을 전달하며 압박의 수위를 한껏 높였다.

지난 5일 방한한 데이비드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6일 청와대와 외교부, 국방부를 잇따라 찾아 고위급 인사들과 면담, 지소미아 종료에 대한 미국의 반대 입장을 거듭 전달하면서 지소미아 연장을 압박했다.

조나단 호프먼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7일 브리핑에서 “우리는 이것(지소미아)이 해결되길 원한다”며 “그래야 우리 모두가 북한의 활동과 역내 불안정을 야기하는 중국의 노력과 같은 역내 가장 큰 위협들에 집중할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14일에는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한국 땅을 밟았다. 에스퍼 장관은 15일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제51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도 지소미아 연장 입장을 전달하며 지속적으로 압박했다.

정부는 미국의 거센 압박과는 별개로 수출 규제와 관련한 일본의 ‘입장 변화’가 없다면 지소미아를 종료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었으나 일본이 대화의 길을 열어두며 향후 협상 여지를 남기자 지소미아 종료의 유예를 발표했다.

지난 2016년 11월23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에 서명하기 위해 입장하는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 주위로 사진기자들이 카메라를 내려놓고 취재거부를 하고 있다. 이날 나승룡 국방부 공보과장은 한일정보보호협정 취재 공개를 요구하는 사진기자들에게 협정을 공개할 수 없으며, 국방부측이 촬영한 협정 서명식 사진도 제공하지 않겠다고 발언했다. 이에 사진기자들은 협정이 밀약이지않은 이상 비공개인것은 받아들일수 없다고 판단 취재를 거부했다.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