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위드코로나] ①근절할 수 없다면 ‘함께’

바이러스,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진화 진행

영국 등은 국가에서 개인책임으로 방역 전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를 뒤흔든 지 1년 8개월이 지나 점점 더 많은 나라들이 코로나19 박멸보다는 공존을 택하는 정책으로 선회하고 있다. 우리 방역 당국도 지난달 코로나19와의 공존, 소위 ‘위드 코로나’가 가능한 기준으로 고령층 90%, 성인 80% 백신 접종완료라는 로드맵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우리는 ‘위드코로나'(with corona), 서구에서는 ‘리빙 위드 코비드19′(living with covid-19)로 부르는 이 공존 정책은 현재 빠르게 백신 접종을 완료한 국가들에서 제각각 다른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영국처럼 하루아침에 규제를 푼 나라가 있는가 하면 싱가포르처럼 수개월에 걸쳐 규제를 풀고 있는 나라도 있다. 우리 정부는 이들 나라들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아직 구체적인 청사진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 더 강해진 델타 변이에 충격…호주·태국도 위드코로나로

이전에 가졌던 ‘바이러스 박멸’이 불가능한 꿈이며 이제는 코로나19를 어쩔수 없이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공감대는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위드 코로나로 국면이 전환된 계기는 델타 변이의 출현이었다. 델타변이 창궐 전까지 세계는 백신을 착실히 맞아 전국민 70% 접종을 마치면 집단면역이 형성되어 코로나19가 사그라들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특히 호주나 뉴질랜드 등은 확진자가 늘어나는 기색이 보일 때마다 봉쇄로 맞서며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폈다.

하지만 델타변이가 기승을 부리면서 높은 백신 접종률을 자랑하는 나라들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졌고 국경 폐쇄 등 아무리 강력한 조치를 취해도 역부족인 것이 드러났다. 이에 싱가포르와 영국 등이 앞장서 코로나와의 공존을 선언했고 미국 등이 이 뒤를 따랐다. 현재는 아일랜드와 호주, 덴마크까지 위드코로나로 전환을 예고했다.

지난 3일 월드오미터 기준으로 일일 확진자가 1만5000명에 가깝고 사망자도 271명 기록한 태국조차 오는 10월부터 이 대열에 합류하려고 하고 있다. 태국은 2일 뉴욕타임스(NYT) 집계 기준 1차 백신접종률이 34%, 접종완료율이 11%에 불과하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관광에 의존하는 이 나라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총리는 최근 국민에게 “얼마간의 위험을 안고 살 준비를 하라”고 요청했다.

◇ 코로나19, 백신 접종 늘면서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과학자들은 또한 각국이 위드 코로나를 모색할 수 있는 것은 백신 접종 덕분에 ‘팬데믹'(세계적 대유행병)에서 ‘엔데믹'(지역 풍토병)으로 바이러스의 영향력이 줄 수 있게 된 게 한 이유라고 설명한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에 따르면 어떤 바이러스가 팬데믹을 일으키려면 반드시 이전에 없었던 ‘신종’ 바이러스여야 하고 최소한 전세계 인구의 30%가 감염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정도로 감염력을 가지려면 전파력도 좋으면서 치사율도 지나치게 높아서는 안된다. 전파시키기 전에 숙주가 사망해버리면 안되기 때문이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나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에볼라 출혈열와 달리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오랫동안 위력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영리하게도 이 중간 위치를 잘 점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이들을 사망시키는 위력을 발휘하면서도 일부 사람은 전혀 증상을 느끼지 못하게 해 널리 퍼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유행이 진행되고 백신 접종도 늘면서 항체를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다. 이들이 늘면서 감염시킬 상대가 점차 줄어들면 이때부터 유행은 감소하게 된다. 바이러스 확산은 한풀 꺾이면서 엔데믹인 계절 독감처럼 수준이 축소되고 마는데 이것이 팬데믹의 ‘종착역’이다.

◇ 치료제 아직 없는 코로나19…”인간도 강해져야”

그런데 다른 바이러스는 ‘바이러스와 공존하겠다’는 인간의 선언 없이 이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하지만 코로나19의 경우 각국이 자국 국민에게 이 결정을 알리고 있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시기를 다소 앞당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치료제가 나오지 않았다. 위드코로나 전환에 많은 국가들이 주저하는 이유기도 하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뉴스1에 위드코로나로 가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백신이 골고루 보급되고, 여전히 전파력이 높은 이 바이러스를 막을 마스크 쓰기 등의 수칙이 지속되어야 하며 현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치료제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천 교수는 “팬데믹 병이었던 신종플루도 결국 치료제 타미플루가 개발되어 엔데믹으로 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드코로나는 또한 서구에서는 코로나19 관한 한 건강의 책임이 국가에서 개인으로 넘어감을 의미한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지난 7월19일 모든 규제를 해제한다고 선언하면서 “(국가의) 법적인 결정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들이 들은 정보에 입각해 결정을 내리도록 됐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마스크 착용 강제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주들이 늘어나며 방역이 점차 개인의 선택과 책임의 문제로 바뀌고 있다.

치료제도 아직 없고, 개인의 결정에 많은 것을 맡겨야 하는 전인미답의 영역이기는 하지만 코로나19와의 공존은 피할 수 없는 길로 보인다. 국민들의 피로감과 막대한 경제적 피해 외에도 바이러스와 싸울 상대는 여전히 인간이기 때문이다.

천 교수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매우 영리하고 생존에 유리하게 진화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베타와 알파 변이 속의 돌연변이 유전자가 일부 합쳐져 뮤 변이가 만들어지듯 바이러스는 계속 진화한다. 결국 사람들도 강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