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구속영장 기각…사법 리스크는 지속

‘뉴 삼성’ 청사진 차질 없이 추진 기대, 안도의 ‘한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9일(한국시간) 기각되면서, 삼성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분위기다. 18개월 만의 총수 부재라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2시쯤 이 부회장에 대해 청구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전날(8일) 영장실질심사 시작 15시간30분 만이다.

법원은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했다고 보인다”며 “그러나 불구속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선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 사건의 중요성에 비춰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도 덧붙였다.

이 부회장이 구속을 면하면서 삼성 안팎에선 이 부회장이 지난 5월 ‘대국민 사과’를 통해 밝힌 ‘뉴 삼성’ 청사진이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관측되는 분위기다.

이 부회장은 ‘대국민 사과’에서 오너 경영 종식을 선언한 이후, 5월 한 달간 그야말로 광폭 행보를 보였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과의 단독 회동부터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조기 극복을 위한 중국 현지 공장 방문 등 현장경영뿐만 아니라, 경기도 평택캠퍼스 낸드플래시 생산라인 증설 발표 등 적극적인 투자 의지도 드러냈다.

이에 앞서 올 초에는 브라질 현지 법인을 찾아 “과감하게 도전하는 개척자 정신으로 100년 삼성의 역사를 함께 써 나가자”고 당부했으며, 지난 3월에는 충남 아산사업장 디스플레이 패널 생산라인을 직접 찾아 “흔들림 없이 도전을 이어가자”고 격려하기도 했다.

아울러 이 부회장이 직접 챙기는 장기 대형 프로젝트에도 가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4월 화성사업장에서, 2030년까지 파운드리·팹리스 등 시스템반도체 분야에 133조원을 투자하고 1만5000명을 고용해 명실상부한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이 되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한 바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충남 아산사업장에 오는 2025년까지 ‘QD(퀀텀닷) 디스플레이’ 생산시설 구축 및 연구개발에 13조원 투자를 발표했다. 공교롭게도 두 발표 모두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이뤄졌다.

이와 함께 경영권 승계·노동·시민사회소통 등 준법감시위원회 권고안에 대한 구체적인 이행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준법위 권고 이후 이 부회장의 ‘오너 경영 종식’ 등의 내용이 담긴 대국민 사과 및 서초사옥 앞 고공농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와 명예복직 합의, 사장단을 대상으로 한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의 ‘노사관계 특강’ 등을 진행해 왔다.

다만, 이 부회장이 예전처럼 광폭 행보를 보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언제든 재청구할 수 있는데다가, 불구속 기소가 될 경우에도 재판 출석에 따른 공백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 이후 경영 개선에 대한 약속을 하나하나 착실히 이행해 가는 과정”이라며 “코로나19 이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핵심 사업들의 업황이 좋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미래를 보면서 투자 드라이브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불법 경영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