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연의 미국정치 이야기 14] 조지아주 공화당 ‘폭풍 속으로’

네이선 딜 전 주지사, 더그 콜린스 후보 지지모임 참석해

켐프 주지사와 다시 대립각…11월 선거서 당 내분 우려

트럼프에 켐프 지원 부탁했던 퍼듀 전 주지사 ‘진퇴양난’

11월 선거를 앞두고 조지아주 공화당이 내분의 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남부의 ‘철천지 원수’ 에이브러험 링컨 대통령의 정당이었던 공화당은 남북전쟁이 끝난 뒤에도 130여년간 조지아주에서는 철저히 비주류 정치세력이었다. 하지만 2002년, 농부의 가정에서 태어나 공군 복무를 거쳐 수의사가 된 입지전적 인물인 소니 퍼듀가 꿈에도 그리던 주지사 자리를 되찾아온 이후 20년 가까이 정권을 독차지하고 있다.

더그 콜린스 지지모임에 참석한 딜 전 주지사 내외/Greg Bluestein (AJC) twitter

 

하지만 최근 소수계 인구의 증가로 정치 지형이 변화하면서 다시 민주당의 위협을 받게 된 공화당이 당내 계파 싸움까지 노출하고 있어 향후 행로가 주목받고 있다.

◇ ‘물고 물리는 ‘3명의 공화당 주지사

지난 28일 게인스빌에서 열린 더그 콜린스 연방상원의원 후보 후원모임에는 네이선 딜 전 주지사와 부인 샌드라 여사가 참석했다. 딜 전 주지사는 가슴에 “콜린스를 상원의원으로”라는 스티커까지 붙이고 콜린스 후보의 연설을 경청했다.

부인 샌드라 여사는 아예 연단에 서서 콜린스 후보에 대한 지지 연설을 했다. 그녀는 “내가 학교 대체 교사일 때 콜린스 후보는 내 학생이었다”면서 “언제나 깎듯했고, 누구에게나 도움을 주었던 소년이었고 지금은 우리 모두가 보기 원하는 올바른 시민이 됐다”고 콜린스 후보를 치켜세웠다.

샌드라 여사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콜린스 후보는 “켐프 주지사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서 “그는 11월에 1명의 표를 받겠지만 우리는 500만표를 얻을 것”이라고 자신을 제치고 여성 정치신인인 켈리 뢰플러를 연방상원의원으로 지명한 주지사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딜 전 주지사는 뢰플러와 콜린스 후보가 맞붙는 11월 선거에서 공식적으로는 중립을 지키고 있지만 이날 지지모임 참석으로 조지아 공화당원들에게 켐프 주지사와의 악연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지난 2018년 선거에서 당시 딜 주지사는 차기 주지사 선거에서 관례대로 중립을 지키는 대신 켐프 후보의 상대편인 케이시 케이글 후보를 공식 지지했다. 케이글 후보는 현역 주지사의 지원에 힘입어 프라이머리에서 켐프 후보를 10% 이상의 차이로 제쳤지만 런오프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를 받은 켐프 후보에게 69% 대 31%로 참패했다.

내무장관 시절 딜 주지사에게 귓속말을 건네는 켐프/CREDIT JOHN AMIS / ASSOCIATED PRESS

 

◇ 트럼프가 바꾼 조지아주의 정치 공학

금융위기가 끝난 2010년부터 8년간 경제성장과 함께 황금기를 누리며 조지아 공화당의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던 딜 주지사의 위상이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켐프 후보를 지지한 이유가 소니 퍼듀 연방 농무장관의 부탁 때문이었다는 사실이다.

딜 주지사 이전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조지아 주지사를 지냈던 퍼듀 장관은 자신의 후임으로 딜 후보와 캐런 핸델 후보가 맞붙자 공식적으로는 중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퍼듀 주지사가 자신이 내무장관으로 발탁했던 핸델 후보의 당선을 암묵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것은 공화당 내부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하지만 선거 결과 핸델 후보는 인구가 가장 많은 풀턴카운티에서 71%의 득표를 차지했는데도 결국 50.5% 대 49.5%, 단 2500표 차이로 딜 후보에게 패배했다. 2002년 현직인 로이 반스 주지사를 꺾고 공화당 소속으로는 130년만에 조지아 주지사에 당선됐던 퍼듀의 공화당 장악이 끝나는 것으로 보였다.

퍼듀 전 주지사는 그래도 조지아주 공화당에서 무시하지 못할 영향력을 과시했다. 2014년 선거에서는 퍼듀의 사촌인 달러제너럴 CEO 데이비드 퍼듀가 연방상원의원에 당선됐고 2017년 새 내각을 꾸미게 된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농무장관으로 발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잘 알지도 못하는 2위 후보 켐프를 갑자기 지지한 것을 놓고 여러가지 억측이 나왔지만 트럼프는 2019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켐프 주지사 당선자의 이름은 기억하지도 못한채 불쑥 “10% 차이로 지던 후보 한명을 내가 지지해서 70 대 30으로 이기게 만들었다”면서 “사실 소니 퍼듀 장관을 위해서 그런 것”이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소니 퍼듀 장관과 트럼프 대통령/AP Photo/Alex Brandon

◇ 11월, 조지아 공화당의 미래가 결정된다

결국 2명의 전직 조지아 주지사가 파워 게임을 벌였고 그 중심에 트럼프라는 ‘조커’가 있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당시 AJC 등 조지아주 언론에 따르면 켐프 주지사 당선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깜짝 발언에 더 깜짝 놀랐다는 전언이다. 정작 논란의 당사자인 퍼듀 장관은 대통령의 발언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지만 딜 전 주지사의 가슴에는 이미 비수가 꽂힌 뒤였다.

2년전 이같은 퍼듀-트럼프의 합동작전에 속절없이 당했던 딜 전 주지사가 이번에는 트럼프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더그 콜린스 후보와 밀착관계를 보이고 있으니 정치판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로 당선됐던 켐프 주지사는 ‘마이 웨이’를 외치며 독자세력 구축에 나섰다. 이같은 노선변화는 지난 주지사 선거 과정에서 낙승하리라는 예상을 뒤엎고 스테이시 에이브럼스 후보에게 턱밑까지 추격당하며 느낀 바가 많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친 트럼프 성향만으로는 변화하는 조지아주의 정치 지형에서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트럼프 지지 성향을 보이다 완전히 돌아선 교외지역의 여성 표를 잡지 않고서는 민주당에 ‘필패’하리라는 불안감에 켈리 뢰플러라는 정치신인에 자신의 정치 운명까지 걸고 있는 모습이다. 11월 선거에서 콜린스와 뢰플러라는 후보의 승패보다는 조지아주 공화당의 미래가 어떻게 그려질지가 더 관심을 모으는 이유다.

한편 트럼프에게 브라이언 켐프를 추천했던 퍼듀 장관은 요즘 가장 ‘좌불안석’인 정치인 가운데 한명이 됐다. 사장에게 추천해 채용한 고향 후배가 회삿돈을 횡령해 달아난 상황이라고 하면 너무 과장된 비유일까?. 그래서인지 요즘 퍼듀 장관이 가장 자주 동행하는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이 가장 사랑하는 딸인 이방카 트럼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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