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신경영’ 버금가는 파격…’5·6 선언’ 배경은?

재계 1위 총수의 ‘승계 중단’ 파격 선언…정면돌파 의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6일 대국민 사과 자리에서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파격적인 내용을 발표했다.

지난 2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 논란과 관련해 사과를 권고한 자리에서 이 부회장은 한발 더 나아가 승계 문제의 대물림을 자신을 마지막으로 끊겠다는 깜짝 선언을 한 것이다.

부친인 이건희 회장이 지난 1993년 “부인과 자식을 빼고 모조리 바꾸라”는 이른바 ‘신경영’을 발표한 지 27년만에 오너 3세인 이 부회장은 한국 재벌사회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된 승계 논란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이 부회장의 사과는 올해 출범한 독립기구인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에서 비롯됐다.

지난 3월 준법감시위원회는 내부 회의를 거쳐 그간 논란을 일으켰던 경영권 승계, 노사문제 등과 관련해 삼성 총수인 이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라고 권고했다.

앞서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지난해 10월 첫 공판기일에서 이 부회장을 향해 철저한 준법감시 제도를 마련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이 부회장과 삼성은 내부논의를 거쳐 사회 각계 인사로 구성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심했고, 지난 2월 위원회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날도 이 부회장은 준법위원회 권고에 따라 경영권 승계에 대해 본인의 입으로 직접 사과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 부회장은 “저와 삼성은 승계 문제와 관련해서 많은 질책을 받아왔다”면서 “더 이상 경영권 승계 문제로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준법위가 요구한 개선방안과 관련해서 이 부회장은 향후 이뤄질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불법적인 일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및 노동조합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후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러면서 “오래 전부터 마음속에 두고 있었다”면서 운을 뗀 이 부회장은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한국 대기업 집단에서 총수가 승계를 직접 언급한 것도 이례적인 것으로 꼽히는데 나아가 후계와 관련해 자녀에게 지분을 상속하지 않겠다는 점도 밝힌 것이다.

이는 이 부회장이 평소에도 가져온 경영지론인 알려져 있다. 앞서 지난 2016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이 부회장은 “저보다 훌륭한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 경영권을 넘겨주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날 이 부회장의 사과문에 담긴 선언은 부친인 이건희 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발표한 ‘신경영’에 버금갈 만큼 재계에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당시 이 회장은 프랑크푸르트로 계열사 사장단 등 임직원 200여명을 불러모은 자리에서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이라며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 다 바꾸라”고 혁신을 주문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품질을 바탕으로 오늘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자신의 국정농단 재판에서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에 빗대 총수로서 자신의 경영 철학과 의지에 대한 당부를 듣기도 했다.

정준영 부장판사는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당시 만 51세의 이 회장은 낡고 썩은 관행을 모두 버리고 사업을 질을 높이자는 이른바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위기를 과감한 혁신으로 극복했다”면서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삼성그룹 총수(이 부회장)의 선언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 (생각해보라)”고 과제를 남겼다.

이날 이 부회장의 파격적인 선언은 자신이 평소 자주 강조해온 경영철학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실제 실행 여부에도 많은 관심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2일 화성 반도체연구소를 찾은 자리에서도 “잘못된 관행과 사고는 과감히 폐기하고 미래를 개척해나가자”면서 과거와의 단절을 언급한 바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및 노동조합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