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기생충’ or ‘1917’?

샘 멘데스 감독 ‘1917’ 한국서 개봉

“경이로운 1인칭 전쟁 서사극” 평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의 막강한 경쟁작으로 꼽히고 있는 샘 멘데스 감독의 ‘1917’이 국내 언론배급시사회에서 베일을 벗었다. 영화 전체가 한 장면으로 이어지는 ‘원 컨티뉴어스 숏(컷된 장면이 없게끔 일련의 장면들을 이어 붙여 하나의 연속촬영 장면처럼 만든 촬영 기법)’으로 담긴 전쟁의 참상. 그 어느 보다 비극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이 작품은 영화 기술은 물론 미학의 정점도 달성, 전쟁 영화의 새로운 한 획을 그은 수작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 ‘1917’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독일군에 의해 모든 통신망이 파괴된 극한의 전쟁 상황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국군 8대대 소속 일병 스코필드(조지 맥케이 분)와 블레이크(딘-찰스 채프먼 분)는 친구 사이. 휴식을 취하고 있던 이들은 에린 무어(콜린퍼스 분) 장군의 부름을 받게 되고 엉겁결에 부대의 미션을 성공시켜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들의 미션은 영국군 2대대의 수장인 매켄지(베네딕트 컴버배치 분) 중령에게 에린 무어 장군의 공격 중지 명령을 전달하는 것이다. 에린 무어 장군은 독일군의 갑작스러운 퇴각이 습격을 위한 함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1600명 병사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공격 개시를 앞둔 메켄지 중령에게 이를 알려야 했다. 이에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는 적진을 넘어 목숨을 건 전진을 시작한다.

두 병사가 다른 곳으로 달려 하달받은 메시지를 전달하러 간다는 내용의 여정은 샘 멘데스 감독이 조부의 경험담에서 영감을 얻은 이야기다. 초소와 초소 사이를 오가며 메시지를 전하는 메신저로 선발돼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샘 멘데스 감독의 조부는 무인지대나 양쪽 모두의 공격 가능성이 있는 지역을 지나며 목숨을 걸어야 했다고 한다. 샘 멘데스 감독은 조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자료조사를 진행했고, 1917년 독일군이 힌덴부르크 전선까지 퇴각했을 당시, 영국군이 독일군의 동향을 파악하지 못했던 시기를 포착했다.

샘 멘데스 감독은 직접 그 무인지대를 찾아 참혹한 전쟁의 비극을 실감했다. 당시 전쟁은 땅을 파서 대치하는 참호전이었다. 감독은 참호전의 비극을 그대로 전달하려 했고,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묘사를 위해 선택한 것은 원 컨티뉴어스 숏 기법이었다. 깊은 구덩이를 따라 걷는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를 따라 카메라는 유려하게 움직이고, 두 사람이 걷는 질퍽 거리는 진흙 위, 곳곳에 온갖 시체가 널려있는 충격적이고 비참한 상황을 마주하게 한다. 관객들은 러닝타임 내내 두 사람과 함께 달리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되고, 1인칭 시점에서 메시지 전달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이들에게 더욱 몰입하게 된다.

그래서 ‘1917’은 영화의 기술적, 그리고 미학적 성취가 매우 분명하고 뚜렷한 작품이다. 이 모든 그림은 ‘블레이드 러너 2049’ ‘007 스카이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쇼생크 탈출’ 등 수많은 작품의 촬영을 맡은 명장 로저 디킨스 촬영감독의 도전정신과 혁신적인 원 컨티뉴어스 숏 촬영 기술이 있어 가능했다. 원 컨티뉴어스 숏 기법은 장면의 길이와 세트장의 길이, 그리고 배우들의 동작도 완벽하게 일치해야 한다. 이에 복잡한 동선들이 세세하게 기록되고 완벽하게 연기 합을 맞추는 과정이었던 4개월간의 리허설이 진행됐고, 철저히 계획된 디렉션 하에 모든 영화가 한 장면으로 이어지는 듯한 경이로운 결과가 담길 수 있엇다.

기존의 전쟁영화와 같이 드라마틱한 전쟁 상황이 담긴 것은 아니지만 독일군이 퇴각한 고요한 적진과 푸르른 평야에 들어서는 두 병사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에 압도된다. 폭격으로 불타오르는 마을의 전장에서 빗발치는 총알을 피하는 스코필드의 시퀀스는 매우 인상적이고 강렬한 비주얼이다. 매켄지 중령에게 달려 메시지를 전하러 가는 시퀀스 역시도 압권이다. 이 영화는 대부분의 장면이 경이로운 시퀀스를 마주하게 하는 경험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목숨을 건,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평범한 병사를 연기한 배우 조지 맥케이와 딘-찰스 채프먼의 연기도 훌륭하다. 대중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연기자들이지만 긴 호흡의 롱 테이크 촬영에서 본능에 가까운, 빈틈 없는 연기를 보여주며 경이로운 전쟁 서사극을 완성하는 데 한몫했다.

영화 1917 스틸 © 뉴스1